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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근교로 의정부 소풍날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3.12.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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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변방으로만 느껴지는 의정부를 ‘근교’로 다시 보게 한 것은 어느 늦은 가을날의 소풍이었다.
그 소풍에서 빠진 것은 김밥, 더해진 것은 의정부의 대표 맛집이었다.

 

가능동 주택가의 장승


경전철 타고 소풍 가는 길


소풍의 기분은 이미 의정부시청 경전철 역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타 본 의정부 경전철은 앙증맞기도 하고 한산하기도 해서 마치 꼬마열차를 전세 낸 기분이었다. 2번 출구를 통과해 지상으로 내려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소풍길 안내판이 다가왔다.


이쯤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 하나는 ‘의정부 어디까지 가봤니?’다. 외지인들에게 의정부 여행은 등산과 동의어였을 가능성이 크다. 원도봉산(739.5m), 수락산(637.7m), 사패산(552m)까지는 익숙한 이름이고, 부용산(210.6m), 흥복산(463.3m), 천보산(336.8m), 용암산(475m)은 생소할 것이다. 이렇게 의정부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연결하는 등산로와 샛길을 정비하고 새로운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소풍길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분명 소풍길 안내판을 보고 들어선 길에 갑자기 북한산 둘레길 안내판이 나타난 이유 말이다. 나무를 자르고 땅을 덮어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대신 기존의 길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길의 재활용은 성공적인 것 같았다.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여기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구나!’ 하고요.”
안내자의 너스레는 광장, 연못분수대, 인공암벽 등 인공적인 시설이 가득한 직동공원을 벗어나면서 차츰 현실이 되어 갔다. 도시는 금세 자취를 감추고 우거진 숲길이 나타났다. 쉬어 갈 만한 나무 벤치를 지나면 비상 방공호와 초소 등의 군사시설이 번갈아 등장하는 풍경은, 수도 서울의 북쪽을 책임지는 의정부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걷는 기쁨만큼이나 큰 것은 멈추는 기쁨이다. 출발 무렵 시청 뒤 직동공원 한 켠에 설치된 열린문고에서 집어 온 책 한권을 펼쳐 들고 독서삼매경을 펼치는 일이 겨울에는 좀 어렵겠지만 벤치에 새겨진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감상할 시간만큼은 마련해야 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로 끝맺는 그의 시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소풍길은 낙엽이 떨어진 흔적을 따라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었다. 의정부시 외곽으로 도는 소풍길을 단숨에 완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적절한 허기만큼 효과 좋은 전채요리가 있을까. 이제 의정부의 맛집으로 소풍 뒤풀이를 떠날 차례다.

 
소풍길에는 총 14곳의 열린문고가 있어 무료로 책을 볼 수 있다
소풍길은 시민들의 일상적인 산책로를 재활용한 것이다
소풍길 2코스에서 만난 백석천 계곡
 

 

의정부 소풍길

1993년 의정부에서 생을 마감한 고故 천상병 시인의 대표작인 <귀천>의 한 소절에서 영감을 얻은 소풍길은 의정부시 외곽을 둘러싸는 6개 대구간과 시 중심부를 관통하는 3개의 소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대구간은 ❶명상의 길(망월사역~의정부시청길, 7.6km, 3시간), ❷하늘전망대길(의정부시청~녹양역, 9.8km, 미개통), ❸불로장생길(녹양역~현충탑 입구, 10.5km, 5시간), ❹산림욕길(현충탑 입구~부용산 입구, 7.5km, 3.5시간), ❺부용길(부용산 입구~306보충대 입구, 6.5km, 3시간), ❻장재울길(306보충대 입구~망월사역, 8km, 미개통)이며, 소구간은 ❶행복길(의정부시청~306보충대), ❷쌍둥이길(망월사역~녹양역), ❸맑은물길(탑석역~중랑천 합류부)이다. 총 71.7km, 9개 코스.

 


●의정부 맛집, 맛골목

부대찌개는 잊어라. 냉면 신도들이 순례를 마다하지 않는 냉면집, 옛날식 통닭집들이 즐비한 시장골목, 인내한 만큼 보상해 주는 찰진 떡갈비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의정부 제일시장
요것 저것의 재미

군것질거리의 본거지는 시장이다. 쇼핑삼매경에 빠지다 보면 끼니때를 넘기기 십상. 국수나 떡볶이 같은 요깃거리를 찾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선쇼핑, 후요기’의 순서가 뒤집히는 시장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광장시장이 그러하고 의정부에는 1950년대부터 역사를 이어온 제일시장이 그러하다. 시장 정비 이후 한 구획을 온전히 차지한 떡볶이와 잔치국수포차들은 노란 불빛을 멀리까지 내뿜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점포 중에서도 각자의 단골집이 정해지는 걸 보면 신기한 일. 매운 고추장 양념 대신 짜장 떡볶이를 개발해 꼬마손님들을 끄는 집도 있다. 튀김, 순대, 깁밥, 팥칼국수 등등 시장 분식의 모든 것이 모여 있으니 골라 먹는 재미란 이럴 때 쓰는 말이 분명하다.


시장 옆 작은 길에는 통닭골목도 있는데 통닭을 시키면 목과 염통까지 서비스로 나오는 것이 특색이다. 진정한 통닭고수들이 즐긴다는 그 목과 염통 말이다. 뭐니뭐니 해도 이 자투리 메뉴의 큰 미덕은 저렴한 가격이니 맥주 한잔으로 시장의 밤을 이어가도 좋다.


제일시장은 허기뿐 아니라 에너지도 충전해 준다. 400개의 일반상점과 200여 개의 좌판상점들은 활기가 여전하다. 그 바로미터는 좁은 시장 골목 사이에 자리한 믹스커피코너와 옷수선집들이다. 시장에 상인과 손님들이 많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2차 상인들까지 건재할 만큼 시장은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제일시장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는 의정부 로데오거리로 불릴 만큼 쇼핑점들이 즐비한 ‘행복로’가 있고 거기서 다시 북쪽으로 향하면 원조집으로 꼽히는 ‘오뎅식당’을 포함해 15개 정도의 부대찌개집들이 밀집해 있는 의정부 부대찌개거리도 멀지 않다.
주소 의정부 태평로 73-20  문의 031-846-2617


의정부 평양면옥
평양냉면의 성지

냉면집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냉면집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의 원조라는 설명 때문이었다. 1·4 후퇴 때 남한으로 넘어 온 김경필 할머니는 평양 선교리 출신으로 1969년 연천 전곡에 평양냉면집을 개업했고 1987년 의정부로 자리를 옮겼다. 쟁쟁한 평양냉면 대가들을 모두 제치고 ‘애면가’들로부터 ‘평양식 시골맛을 잘 살린 맛의 원조집’으로 평가받는 평양면옥의 시작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1남 4녀의 자녀들 중에서 장남은 평양면옥을 이어가고 있고 서울로 진출한 두 딸은 을지면옥, 필동면옥의 주인이 됐다.


배가 부르니 정말 맛만 보자며 둘이서 한 그릇만 시킨 일을 후회하게 된 것은 첫 젓가락질이 막 끝난 후였다. 옆자리의 연세 지긋한 노부부가 그릇에 코를 박고 냉면발만 들이키는 것은 결코 부부싸움을 해서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허기 때문도 아니었던 것이다. 평양냉면답게 메밀 성분이 많은 면발은 질기지 않아 부드럽게 넘어간다. 무절임, 채 썬 배 쪽, 돼지편육 위에 무심하게 뿌려진 고춧가루와 파 채의 칼칼한 맛은 육수의 느끼함을 봉인하는 화룡점정. 평소 냉면 한 그릇을 다 비워 본 적 없는 내 식도락 이력에 이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국물까지 말끔히 비우고 말았으니 말이다. <동국세시기>에도 나와 있듯이 냉면은 원래 11월 동짓날에 먹는 음식이라 했다. 의정부에 눈 내리면 얼음 동동 뜬 냉면 한 그릇을 찾아 다시 소풍을 가게 될 것 같다.
주소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3동 385  휴무 매월 둘째·넷째 화요일  메뉴 메밀(물,비빔)냉면 9,000원, 메밀온면 9,000원, 만둣국 8,000원, 갈비탕 8,000원, 제육 1만2,000원, 수육 1만6,000원 생불고기, 2만6,000원  문의 031-877-2282

 

고산 떡갈비
의정부의 슬로푸드

아버지 고중훈씨의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 고동원씨의 하소연은 이러하다. “주말에 80~90명씩 찾아오면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될 수밖에 없거든요. 석쇠가 6개인데 한 석쇠에 떡갈비 5개밖에 올릴 수 없으니 대기시간을 줄이기가 어려워요. 그것 때문에 불친절하다, 콧대가 세다는 악성댓글이 올라오니 정말 속이 상합니다.” 고산떡갈비는 진작 소문난 의정부 맛집이지만, 최근에 한 일간지에 소개된 후 다시 손님들이 몰리면서 고초를 겪은 모양이다.


2004년에 100석 규모의 식당으로 새 건물을 올렸으니 1979년 창업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 시간이 긴 데는 이유가 있다. 미리 초벌구이를 해 두었다가 다시 구워내는 다른 떡갈비 집들과 달리 주문 즉시 바로 구워낸다는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  300g의 갈비를 쪼개면 허연 김과 함께 구수한 냄새가 올라오고 한 입 베물면 풍부한 육즙이 쭉 빠진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떡갈비의 품질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고동원씨가 직원들에게 거듭 강조하는 것이 있다. “식당을 경영하다 보니 저도 미식블로거들이 꼽는 맛집을 찾아서 거제도, 반구대 등 안 가본 곳이 없어요.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재료와 정성이더군요.” 원산지를 두루뭉술하게 표시하는 음식점들과 달리 갈비, 쌀, 야채, 고춧가루, 마늘, 심지어 조미료까지 어느 상회,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를 명기해 놓았다. 국내산 한우, 생 돼지고기, 생강 한 쪽까지 모든 재료가 국내산이지만 참깨만은 중국산이라는 솔직함에 신뢰가 쌓인다. 직접 짠 참기름으로 버무린 나물들, 한 통씩 숙성시킨 장아찌에 손이 고루 갈 수밖에 없었다. 의정부 사람들이 꼽는 또 하나의 떡갈비 맛집은 제일시장 근처의 백고식당이다. 재료가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더 강하다는 평이니 참고하시라. 
주소 의정부시 의정부 1동 202-15  메뉴 떡갈비 2만1,000원 돼지떡갈비 1만3,000원 갈비탕 1만원, 열무냉국수 3,000원  문의 031-842-3006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의정부시 www.ui4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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