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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고쿠 산인 열차여행-돗토리와 시마네에서 만난 풍경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12.05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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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에 턱을 괸다. 몇 번인가 작은 간이역이 스쳐갔고, 한적한 마을 뒤로 파란 바다가 펼쳐지곤 했다.
산인山陰, 일본 주고쿠中國 지방의 북쪽 해안가에 자리한 돗토리와 시마네 두 현은 그렇게
여행자의 눈길을 심드렁한 듯 빨아들였다.
 
구라요시역으로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사막과 바다의 경계에 서다
돗토리역+구라요시역

돗토리역에서 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은 돗토리사구. 장화로 갈아 신고 야트막한 언덕바지를 오르자 광활한 풍경이 가없이 펼쳐진다. 길이 16km, 폭 2km에 달하는 드넓은 해안사구다. 10만년이라는 장구한 세월과 거센 바람은 모래언덕을 만들고, 바닥에 물결 무늬를 그려내며 무시로 그 모습을 뒤바꾼다.

그날도 바람은 모래를 날려 육지 깊숙한 곳까지 실어 나르고 있었다. 톡톡, 얼굴을 건드리던 모래 알갱이들은 바다 쪽으로 다가갈수록 제법 따갑게 달려든다. 유난스레 바람이 강한 날이었건만 사람들은 바닷가 언덕에 오르길 마다하지 않는다. 깊게 남겨진 발자국은 바람에 날려 어느새 희미해지고 언덕을 넘어오는 바람엔 모래가 가득 실렸다. 사람들은 급기야 바람을 등지고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기어코 사구 너머 푸른 바다를 눈에 담고야 만다. 사막을 횡단(?)하고 돌아오니 장화와 주머니엔 모래가 가득하고, 입 안은 서걱거린다. 하지만 탐스런 모래언덕을 바라보는 순간 걷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매력이 그곳에 있었다.

돗토리사구 옆엔 모래미술관이 자리한다. 스케일이 다른 모래조각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2006년 개관해 천막을 치고 야외에서 작품을 전시하던 모래미술관은 지난해 전시관을 짓고 보다 웅장한 모래조각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여행을 테마로 매년 전시가 바뀌는데 2014년 1월5일까지는 동남아시아 편.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니 눈에 익은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왓시엥통 사원, 미얀마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등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내년에는 소치동계올림픽을 기념해 러시아를 테마로 삼을 예정이다.

매년 허물어지고 다시 조각되는 ‘시한부’ 작품들이지만 여기에 들어간 정성이 만만찮다. 틀을 만들어 모래와 물을 부으며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만 2개월이 걸리고, 위쪽부터 그 틀을 떼어내 조각하는 기간은 2~3주에 걸쳐 이뤄지며 투입되는 모래의 양만 2,500t이 훌쩍 넘는다. 이번 동남아시아 편에 참여한 작가들의 수도 9개국 17명에 이른다. 그런데 조각에 사용되는 도구들이 재밌다. 모래조각만을 위한 도구 따위는 없다. 시멘트를 바르는 미장도구부터 밥 숟가락까지, 작가의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이 이토록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돗토리역에서 30분 거리의 구라요시역에서 내리면 아카가와라 거리가 가깝다. 아카가와라는 ‘빨간 지붕’이란 뜻으로, 붉은 빛깔의 도자기처럼 반질반질한 지붕을 얹은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된 곳이다. 모두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에 걸쳐 지어진 것들이다. 마을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개울과 세월이 묻어나는 목조 건물들은 고즈넉한 산책으로 이끌어 준다. 골목을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상점을 비롯해 양조장, 카페 등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돗토리사구에 모래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여행자들은 사막 횡단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카가와라 거리에서의 산책은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과 같다
아카가와라 거리에 자리한 양조장에서 판매하는 술
빨간 지붕의 처마 밑에 매달린 감이 탐스럽다
모래미술관에 전시된 동남아시아의 유명 건축물들
지난해 새롭게 지어진 실내 모래미술관
 
 
명탐정 코난과 요괴들을 만나다
유라역+사카이미나토역
 

구라요시역에서 10분 만에 도착한 유라역은 신칸센 정도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작은 역이다. 하지만 유라역은 플랫폼에 내려서는 순간 만화의 책갈피 속으로 여행자를 인도한다. 일본은 물론 세계 20여 개 국가에서 인기리에 읽히는 <명탐정 코난>의 작가 아오야마 고쇼의 고향이 바로 이곳 호쿠에이초이기 때문이다.

만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유라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의 간판을 비롯해 내부의 벽과 천장, 플랫폼의 대기실까지 온통 코난의 얼굴로 가득하다. 역사를 나와 국도 9호선 도로변에 자리한 휴게소까지 약 1.4km 구간(코난 도로)에 코난의 동상 10여 개가 곳곳에서 발길을 붙든다. 코난은 의젓한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도서관 앞에서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기도 하고, 어린아이로 변해 여자 친구인 미란이의 손을 잡고 즐거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가로등에는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있는 코난이 매달려 있고, 심지어 맨홀 뚜껑에도 코난이 새겨져 있을 정도다.

코난 도로가 끝날 즈음엔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관이 나온다. 이전에는 찾는 이가 드문드문했던 역사문화학습관이 <명탐정 코난>의 작가 아오야마 고쇼의 체취가 듬뿍 담긴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지금까지 그가 출간한 만화책을 비롯해 스케치, 포스터 등이 잘 전시돼 있으며 재현된 그의 작업실은 코난의 탄생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만화라면 사카이미나토역도 빠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 <요괴인간 타요마>로 소개된 <게게게노 키타로>에 등장하는 수많은 요괴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이다. 요나고역에서 사카이미나토역으로 향하는 열차부터 남다르다. 승강장 번호는 0번, 마치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떠나는 비밀 승강장인 것만 같다. 서서히 다가오는 열차에는 무서우면서도 귀여운 요괴들이 가득 그려져 있고, 내부도 마찬가지다. 인간 세계를 떠나 요괴들의 세상으로 떠나는 열차인 셈이다.

사카이미나토역에서부터 이어져 약 800m에 이르는 ‘미즈키시게루로드’는 과연 요괴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타요마, 눈알 아저씨, 고양이 소녀, 쥐 남자 등 수많은 요괴 동상들이 온갖 해괴한 모양과 표정으로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이뿐이 아니다. 택시 위에는 눈알이 달려 있고, 화장실의 남녀 캐릭터까지 요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파는 간식조차도 눈알 아저씨의 안구를 꼭 닮았으니 입에 넣기가 꺼려질 정도!
 
사카이미나토역 0번 승강장은 요괴들의 세상으로 떠나는 관문이다
코난 도로에서는 <명탐정 코난>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동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관은 <명탐정 코난> 작가의 체취로 가득하다
 
 
예술과 인연의 땅, 시마네
야스기역+이즈모시역

다시 요나고역으로 돌아와 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 시마네현의 야스기역이다. 이곳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일본 최고의 정원’으로 꼽히는 아다치 미술관이다. 건물 내부의 창문을 마치 액자처럼 활용해 밖의 정원을 바라보게 만든 것이 특징. 엄연한 미술관임에도 정원으로 더욱 유명한 까닭이다. 약 4만3,000평방미터에 달하는 일본식 정원은 뒤편의 산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빼앗는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그 색깔과 모양을 달리하니 몇 번을 찾아와도 지루할 리 없다. 정원도 하나의 ‘작품’이기에 직접 걸어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

2층으로 발길을 옮기면 근대 일본화단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요코야마 다이칸, 다케우치 세이호 등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일본에선 저명한 근대 화가들의 작품이 그윽한 화풍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특히 아다치 미술관은 근대 일본화단의 초석을 세운 요코야마 다이칸의 작품 약 120점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0년에는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새로이 신관의 문을 열었다. 우리와 비슷한 듯 다른 일본 현대 화가들의 화풍을 엿볼 수 있어 문득 그림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야스기역에서 다시 열차에 올라 이즈모시역에서 내린 것은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신사 이즈모타이샤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이즈모시역에서 작고 앙증맞은 이치바타 전차로 갈아타면 이즈모타이샤앞역에서 내릴 수 있다. 마침 주말이어서 이즈모타이샤로 향하는 참배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이즈모 소바 음식점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진풍경을 연출한다. 짙은 녹음을 드리운 소나무 참배길을 지나면 신사의 배전과 국보로 지정된 본전이 나온다. 배전의 거대한 금줄은 길이가 13m, 무게는 5t에 달해 일본 최대 크기로 꼽힌단다.

이즈모타이샤는 남녀 사이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인연을 관장하는 신인 오쿠니누시노미코토를 모시는 신사로 본전과 배전 앞에는 사람들이 몇 줄로 줄을 서 있고, 나무에는 새하얀 소원지가 가득 매달려 있다. 모두가 ‘좋은 인연’을 빌기 위해서란다. 두 번 절하고 네 번 손뼉을 친 후 다시 한 번 절을 하는 참배 방법을 따르고, 정성(?)을 표시하면 좋은 인연이 찾아온다니 꼭 한 번 시도해 볼 것.
 
1아다치 미술관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일본식 정원
근대 일본화단의 초석을 세운 요코야마 다이칸의 작품
이즈모 타이샤에서 ‘좋은 인연’을 기원하는 사람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취재협조  주고쿠운수국, 오카야마현, 돗토리현, 시마네현
 
▶travie info     
산인 지방 열차여행 일본 여행에서 교통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만만치 않다. 산인 지방을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한다면 JR웨스트의 ‘산인 & 오카야마 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훌륭한 선택이다. 일본인들이 부러워 마지않는다는 외국인 전용 패스다. 사용을 개시한 당일부터 3일 동안 이용할 수 있으며, 가격은 4,000엔(6~11세 50% 할인)으로 무척 저렴하다. 해당 구간의 JR 특급, 쾌속, 보통 열차의 자유석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으며, 패스를 제시하면 입장료를 할인해 주는 관광지도 있다. 돗토리현의 요나고와 사카이미나토, 시마네현의 마쓰에와 이즈모 그리고 오카야마현까지 두루 둘러볼 수 있다. 패스 구입은 사카이미나토, 마쓰에, 요나고, 오카야마 등 현지 역에서 가능하며, 국내 여행사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2014년 2월26일까지 판매한다.www.westjr.co.jp/glob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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