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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guide-승기야 몰라도 괜찮아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4.01.02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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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꽃보다 누나>를 보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건 짐꾼 겸 가이드, 이승기에 대한 누나들의 태도, 혹은 승기 스스로의 자승자박 때문이었다. 전편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이 해낸 ‘자발적 봉사’는 이편으로 넘어오면서 아예 ‘당연한 의무’로 고정되어 버렸다. 압박에 헤매는 승기는 싸움이 고독할수록 누나들의 역할은 관찰자, 평가자 수준이고 급기야 승기는 ‘짐꾼’에서 ‘짐’으로 전락했다.
 
어쨌든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아직 초반일 뿐인 이 ‘드라마적 다큐’는
결국은 한 청년의 아름다운 성장기와
화해로 끝날 것이 뻔하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리뷰 게시판에는
승기편, 누나편으로 나뉘어
비난과 응원이 분분하다.
 
불편한 감정의 끝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만났던 숱한 가이드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식견이 학자 수준이라 저절로 선생님 호칭이 나오던 베테랑 가이드들도 있었지만 수영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납치당하다시피(본인들은 가이드를 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팔라우에 와서 몇달간 매일 삼각수영팬티만 입고 살던 체육대 학생들도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연락을 이어가는 터키의 한국인 아저씨에서 인연은 끊겼지만 생각할 때마다 훈훈해지는 재중동포 아가씨까지, 새삼 스쳐가는 얼굴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가이드에게 요구하고 싶은 최소한의 덕목도 생겼다.

우선, 거짓말이나 추측은 안 된다. 여행에서 엉뚱한 설명을 듣고 와서 평생 그것이 사실인 줄 철석같이 믿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또 맥가이버나 심부름센터 직원일 필요는 없으나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팁 앞에 공손하고, 자신을 가느님(가이드+하느님)으로 섬기는 여행 노약자(특히 생애 첫 여행 어르신들) 앞에 군림하는 가이드는 틀려먹었다. 하지만 그 외에 여행에서 벌어지는 예측불가의 변수들, 예를 들어 항공연착이나 숙소의 바퀴벌레에 대한 원망은 가이드에게만 돌릴 일이 아니다. 함께 수습해야 하는 비상사태일 뿐이다.

이쯤에서 나는 가이드들에게 얼마나 협조적인 여행자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모닝콜을 예약하지 않았다면서 화를 내거나, 반창고를 사 달라고 주문하거나, 설명을 할 때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손님’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쉬운 손님도 아니었을 것이다. 가이드 멘트를 꼼꼼히 받아 적고, 때로는 녹음도 하니 여행 기자란 얼마나 부담스러운 염탐자이겠는가. 또, 사진을 찍는다면서 버스에 가장 늦게 탑승하는 족속들이니 여간 거슬리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이게 일이라서 그래요’라고 고백하면 동행자들은 너그러워진다. 손님들은 사진 찍기 좋은 자리를 양보해 주고, 가이드는 내가 놓친 중요한 멘트를 다시 요약해 준다. 그것이 인지상정.
 
낯선 사람들이 낯선 곳을 함께 여행할 때
일어나는 감정의 요동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 모든 꼬임을 술술 풀어 주는 병법은,
내 경험상, 솔직함이다.
왜냐하면, 여행의 기쁨은 ‘난생 처음
접하는 것들을 알아가는 환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환희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여럿의 공동결실이 될 때, 그전까지의 온갖 좌충우돌과 고생담은 추억과 미담의 자리에 안착하게 된다. 그 어떤 엉망진창 여행도, 솔직함이라는 토양을 깔면 ‘꽃’을 피우게 마련이다. 그러니 승기야, 몰라도 괜찮아. 그냥 함께하자고 하렴.
 
글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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