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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인터뷰] 실험실에 간 막걸리 대니얼과 레베카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1.03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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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인터뷰

수수보리 전은경이 만난 술쟁이들, 그리고 그들의 술 이야기

무언가에 빠지게 되면,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진다.
‘나만의 막걸리’를 빚어 마시는
대니얼과 레베카처럼.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막걸리에 푹 빠진 이 괴짜들은 이제
막걸리를 실험실로 가져가려 한다.

 

매일 맛이 달라지는 막걸리를 틈틈히 맛보려면 테이스팅 노트가 두꺼울 수밖에 없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외국인은 많지만, 막걸리에 통달한 외국인은 흔치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신 대니얼 레너건Daniel Lenaghan과 오리건주 출신 레베카 볼드윈Rebecca Baldwin은 3년째 막걸리를 마시고, 만들고, 공부하는 커플이다. 본업은 영어 선생님이지만 틈날 때마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오는 전통주를 재현해 보고, 전국 각지에 흩어진 양조장을 찾아가 막걸리 맛을 본다. 이들이 막걸리에 빠지게 된 이유는 뭘까?

 

사케보다 맛없는 막걸리?


첫인상은 참담했다. 막걸리 말이다. 7년 전 한국에 온 대니얼과 레베카는 당시 처음으로 마신 막걸리에 대해 ‘질 나쁜 사케 같았다’고 회고했다. 맛과 향이 단조로워 그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고. 한국의 전통주는 개성이 없다고 단정하고 다시는 마실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색 페트병에 담긴 막걸리, 그러니까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그 막걸리였다.


이들이 다시 막걸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 우연히 한 강좌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전통주 교육기관인 수수보리아카데미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막걸리 만들기 일일 클래스가 열린 것이다.


“그리웠어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자주 집에서 술을 담가 먹었었거든요. 미국에서는 집에서 술을 담그는 홈브로잉이 일반적이에요. 우리는 DIY 문화를 존중해요. 무엇이 됐든 직접 만드는 걸 좋아하죠. 게다가 와이너리에서 일한 적도 있어서 술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죠.”


그리하여 처음으로 막걸리를 만들게 됐다. 쌀과 누룩만으로 빚어 일주일 후에 걸러 마시는 가장 만들기 쉬운 단양주였다. 이 막걸리가 어떻게 두 사람의 마음을 바꿔 놓았을까. 대니얼은 한마디로 ‘fresh’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공 감미료를 첨가하거나 살균 처리를 하지 않고 막 걸러 마시는 막걸리에는 곡물의 풍미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와인이나 맥주에는 없는 막걸리만의 매력을 발견한 것도 결정적이다. 쌀을 술로 만들어 주는 효소제이자 효모, 오로지 막걸리에만 있는 술의 씨앗 ‘누룩’에 매료된 것이다.


“누룩 안에는 수백 가지 이상의 다양한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 미생물들은 술의 맛을 아주 복잡하고 오묘하게 만듭니다. 잘 만든 막걸리에서는 멜론이나 자두 같은 과일향, 요거트, 버섯과 같은 향을 느낄 수 있어요. 누구든 한 번이라도 직접 막걸리를 빚어 보면 그 맛의 차이에 놀라게 될 겁니다.”

 

 

아스파탐을 보이콧하다


그들이 대량 유통되는 대부분의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누룩의 오묘한 맛은 온데간데없고, 아스파탐이라는 인공 감미료로 단맛을 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스파탐 같은 인공 감미료를 넣은 막걸리나 살균한 막걸리는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가수불의 이상헌 탁주나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 최행숙 도가의 미인 막걸리, 자희향, 가을국화주 등을 몹시 좋아하죠. 서울 시내에 전통술을 취급하는 막걸리 바에 가면 맛볼 수 있답니다. 좀더 대중적인 술로는 배상면주가의 산사춘도 매우 좋은 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전국의 수많은 양조장을 돌며 직접 막걸리 맛을 본 레베카는 대량 유통되는 막걸리뿐만 아니라 오래되고 조그만 양조장의 막걸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개성이 없었어요. 쉽고 싸게 단맛을 내기 위해 아스파탐을 넣은 막걸리가 대부분이었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려는 노력보다는 기존의 방법을 고수할 뿐이었어요. 이런 방식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맛없는 막걸리를 만드는 옛날 방식을 개선하지 않는 것이 문제죠. 막걸리 맛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대 양조를 배우는 것도 중요해요. 자체적으로 누룩을 개발한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처럼 말예요. 전통 방식을 따르면서도 나만의 레시피로 독특한 맛을 내는 ‘이상헌 탁주’ 등도 좋은 예입니다. 저희가 고문헌을 공부하면서도 끊임없이 막걸리에 대해 연구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이유입니다.”

1 달지 않은, 그러면서도 맛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게 대니얼의 목표 2 지난 10월31일 막걸리의 날을 맞아 또 한번 막걸리 강사로 나선 대니얼과 레베카 ©김경희 3 레베카가 보여 주는 누룩. 그 종류에 따라 막걸리의 맛도 달라진다

 

우리 술 아닌 한국 전통술


대니얼과 레베카를 만나기로 한 날, 마침 그날은 최근 실험한 막걸리 5종을 시음하는 날이었다. 찹쌀과 멥쌀의 비율을 달리해 쌀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막걸리의 풍미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레베카의 테이스팅 노트에는 그날의 시음에 대한 기록이 한 줄 한 줄 더해졌다. 다음 주에 열릴 막걸리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맛을 보여 줄 예정이란다. 레베카와 대니얼은 수수보리아카데미에서 막걸리를 배우고 난 후 줄곧 ‘막걸리 마마스 & 파파스(막걸리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의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막걸리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 내용을 토대로 막걸리 만들기에 대한 영어 교재 출간, 전통주 레시피가 담긴 조선시대 고문헌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계획 중이다. 외국인들에게 막걸리를 제대로 알게 하고, 자신들처럼 막걸리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하는 것이 목표다.


“사람들은 막걸리를 ‘우리 술’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막걸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시중에 판매하는 막걸리의 대다수가 일본 사케 원료로 빚는다는 것을 아시나요? 저는 한국에서 처음 마셨던 그 맛없는 막걸리를 한국 음식, 한국 문화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아요. 제 친구들에게 그리고 외국 사람들에게 정말 맛있는 막걸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막걸리를 ‘우리 술’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그 말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아요.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한국인들만 똘똘 뭉쳐 있는 것 같아서요. 막걸리는 한국인들만 즐기는 술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다 즐길 수 있는 ‘한국 전통술’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요.”


희소식이 있다면, 우리 술이 아닌 한국 전통술로서의 막걸리를 머지않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만의 레시피로 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을 차릴 계획이라고 하니 말이다. 우선은 날이 풀리면 전국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양조장을 방문하는 게 일 순위란다. “지난 추석 월악산 인근에서 캠핑을 하면서 매일 그 지방의 새로운 막걸리를 마셨었죠.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자전거도로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양조장과도 가까워서 이번에도 여행 내내 각 지방의 막걸리를 마실 수 있을 거예요. 혹시 아나요, 자전거로 떠나는 양조장 투어가 생길지도요.”
막걸리 마마스 & 파파스 mmpkorea.wordpress.com
전통주 교육기관 수수보리아카데미 www.susubori.ac.kr 02-364-2400

 

글·사진  Travie writer 전은경


interviewer 수수보리 전은경
여행작가. 책 <히말라야의 선물> 사진가. 여행하며 마신 한두 잔이 발단이 되어 술과 연이 됐다. 술꾼은 못 되지만 술 이야기꾼의 자질이 있다. 수수보리는 와인 소믈리에처럼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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