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고을 광주
맛고을 광주
  • 천소현
  • 승인 2014.01.0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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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 광주의 또 다른 이면은 맛고을이다.
광주 사람들의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한 대표 맛집들.
소문난 집엔 이유가 있었다.
 
의재미술관 맞은편 춘설헌 아래 찻집.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은 직접 차나무를 키울 만큼 차를 즐겼다
 
광주에는 오미五味가 있다

질문은 간단했다. 광주 전통 음식은 무엇인가요? 하지만 대답을 듣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예로부터 식재료가 풍부해서 특정 음식에 기호가 실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 대신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전통은 모르겄고, 광주에는 오미가 있지요잉.” 140만 광주 사람들을 포함하여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나만 몰랐던 광주 오미光州五味는 광주한정식, 오리탕, 광주김치, 무등산 보리밥, 송정 떡갈비였다.

예습이 필요하다. 우선 한정식부터. 들과 육지, 바다에서 온 온갖 먹거리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 남도의 한정식이다. 그중 핵심은 보통 10가지가 넘는 젓갈. 7,000원대 백반집부터, ‘넓으실(062-972-8201)’처럼 아예 상을 통째로 내오는 남도한정식까지 다양하니 각자 ‘위대함’의 정도와 예산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그 한정식의 가장 기본이 바로 김치가 아니겠는가. 딱히 소문난 김치 맛집이 없는 이유는 광주의 어느 맛집에 가도 김치는 기본이기 때문. 김치가 맛있다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이방인과 김치 맛은 원래 이런 거 아니냐는 광주 사람들은 이미 다른 잣대의 혀를 가진 셈이다. 그 엄격한 미각으로 광주시는 1994년부터 광주세계김치문화축제를 시작했고 2010년에는 광주김치타운을 오픈했다. 기름진 호남평야에서 자란 질 좋은 배추와 신안군에서 난 천일염, 새우젓, 멸치젓을 넉넉히 사용한 광주 김치는 걸쭉하면서 간도 세고, 감칠맛도 강하다. ‘감칠배기’라는 광주 지역 김치 브랜드도 있다. 콤콤한 젓갈 냄새에도 불구하고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김치만으로도 밥 한 공기가 뚝딱 비워진다.

광주 오미 중 가장 소박한 메뉴는 무등산 보리밥이다. 하지만 그 맛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5~6월에 수확한 통통한 보리밥에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신선한 채소와 나물을 듬뿍 넣고 고추장, 참기름을 섞어 슥슥 비벼먹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흙에서부터 결정된 재료 자체의 맛이다. 광주 오미 중 다른 지역에서 가장 대중적이지 않은 요리는 오리탕인데, 그래서 광주에 가면 더욱 더 찾아 먹게 되는 것이 바로 또 이 오리탕이다. 걸쭉하고 담백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아  광주 서구 유동에 오리탕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광주 송정역에서 멀지 않은 송정리에는 송정장터에서 유명해진 떡갈비집들이 30여 년 전부터 모이기 시작해 지금은 14개가 밀집한 떡갈비 거리를 일구었다.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1대1 비율로 섞어서 만들기 때문에 가격도 1만원 미만으로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떡갈비를 진짜 유명하게 만든 것은 함께 나오는 국물이다. 돼지뼈가 듬뿍 들어있는 뼈국물을 위해 일부터 떡갈비집을 찾는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 참고로 송정장에는 내공 있는 국밥집들이 있으니 놓치지 말 것. 새끼보국밥, 암뽕국밥, 머리국밥, 선지국밥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아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오직 체험뿐. 그렇게 시작된 광주 맛집 투어에서 깨달은 것은 두 가지. 배불러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과, 배불러도 맛있는 것은 여전히 맛있다는 것. 예정대로 올해 말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이동시간이 1시간 반 정도로 단축된다. 맛고을 광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니 벌써부터 회가 동한다.
 
 
1 오가헌의 툇마루에서 감이 익어 가고 있다 2 연화네의 신선한 쌈야채 3, 6 송정역 인근 감과수원 ‘감나무뜰’의 안주인은 국화꽃, 고구마 등 자연으로 다과상을 차린다 4 과수원에 남겨 놓은 까치밥 5 의재미술관에 전시된 골동품 주전자와 잔받침
 
 
환장할 육전

어머니가 딸에게 물려 준 것은 솜씨였다. 홍아네 홍경림씨의 딸이 운영하는 연화네는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야구선수 이종범의 맛집으로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누리게 된 ‘육전’ 때문이다. 이름 그대로 고기전. 얇게 포를 뜬 국내산 암소 한우에 찹쌀가루와 계란 옷을 입혀 즉석에서 부쳐 주는 것인데,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육전을 표현하는 공식 언어다. 육전이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전의 재료는 새우, 키조개, 낙지, 전복, 더덕 등 다양하다. 상마다 전기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종업원이 즉석에서 구워 주는 이유는 그만큼 뜨거울 때 바로 먹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 물론 달인의 경지에 오른 이분들의 전 붙이는 솜씨도 대단한 구경거리다. 사진을 찍느라 음식을 식히는 것이 안타까워 연화씨가 몇 번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했었다. 식어도 맛있다는 말에 눈 한번 흘깃.

종류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시작은 콩가루에 전을 찍는 것이다. 그 다음 간편한 방법은 묵은지와 함께 먹는 것. 기름기가 백리 밖으로 달아난다. 상추쌈에 파채를 깔고 그 위에 육전 한 점을 얹은 후에 멸치젓쌈장을 더하는 방법도 있다. 육전 한 접시에 2만3,000원이니 이렇게 격식을 차릴 만도 하다. 운천저수지 옆, 그닥 멋이 없는 건물에 자리 잡았지만 반전이라고 할 만큼 내부는 한옥풍의 방 위주로 아늑하게 인테리어를 했다. 옆방에 있다는 모 국회의원을 포함해 광주 명사들의 단골집이라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내 밥상이 중요하다. 후식으로 나온 누룽지 한 사발로 입을 헹구니 온 세상이 내 것이다. 과식의 솔루션은 바로 앞 운천저수지 산책이다.
연화네 | 주소 광주 서구 치평동 241-4  전화 062-384-1142  메뉴 육전 2만3,000원, 낙지전 2만5,000원
 
1 육전에 사용되는 1등급 한우 2, 3 즉석에서 얇고 노릇하게 부쳐 금방 먹어야 제 맛이다 4 묵은지나 젓갈과 함께 먹으면 질리지 않는다
 
5 시원한 녹차물은 밥을 말아 먹는 용도다 6 영광에서 가공한 보리굴비
 
 
해풍에 말아 먹다

녹차 보리굴비 정식. 이름의 조화가 부조화 그 자체다. 녹차와 보리에 굴비까지 붙으니 독해 불가. 우선 보리굴비부터 해결하자. 해풍에 말려서 통보리 속에 넣어 보관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보리굴비는 꾸덕꾸덕한 것이, 젓가락보다는 손을 사용해야 잘 찢어질 정도로 질긴데다가 간도 일반 굴비보다 더 짭짤하다. 살뜨물에 불렸다가 갈색이 돌게 구워내도 약간은 질긴 듯한 식감이 남아야 정석이라는 보리굴비. 그 비릿함과 소금기를 상쇄시켜 주는 것이 바로 녹차물이다. 녹차물에 콩밥을 말아서 한 숟가락을 뜬 뒤 고추장을 살짝 찍은 보리굴비 한 점을 얹어 입으로 가져가면 녹차물에 녹은 비릿한 굴비향이 입 안을 꽉 채운다. 특유의 향으로 입 속을 마저 닦아 주는 것은 손바닥만한 크기로 잘라 나온 파릇파릇한 김. 주로 우메보시를 얹어 먹는 일본의 오차즈케와 비슷하지만 매실과 보리굴비를 어찌 비교할까. 여름에는 시원한 녹차물에, 겨울에는 따뜻한 국을 선택할 수 있지만, 시원하고 개운하게 뒷맛을 처리해 주는 녹차물이 보리굴비에는 아무래도 제격이다. 물에 말아 더 비리다는 사람들이 남긴 녹차물은 모두 내 차지. 굴비는 중국산이지만 가공은 영광에서 했단다. 해풍 한 사발 잘 말아 먹은 오후였다.
 
▶travie info     
멸치 젓갈이나 풀치(어린 갈치)볶음을 내놓는 것까지 홍아네와 연화네의 상차림이 똑같다는 소리에 시식은 연아네서 했지만 보리굴비정식으로 더 유명한 것은 어머니가 운영하는 홍아네다. 한옥을 개조한 공간이라 분위기가 더 정겹다.
홍아네 | 주소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245-4  전화 062-384-9400  메뉴 굴비백반 2만5,000원, 매생이탕 1만6,000원, 조기탕 1만6,000원
 
1 들깨육수에 된장,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오리탕은 애벌구이하는 시간이 길다 2, 4 오리보다 인기가 높은 미나리 3 오리고기는 육수와 함께 먹어야 덜 퍽퍽하다
 
오리보다 미나리

오리탕은 꽤 논란의 음식이었다. 이제 막 오리구이에 맛을 들이긴 했지만 오리탕은 어쩐지 낯선 음식. 썩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식에 나선 이유는 이 메뉴가 도대체 왜 광주 오미에 속하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작정은 했는데 광주 북구 유동에 있는 오리탕 골목은 때마침 한 달에 한 번 있다는 전체 휴무일. 대신 향한 상무지구의 오리탕집은 손님들이 더더욱 몰린 듯 분주했다. 일찍이 공중파 3사의 웬만한 음식프로그램과 일간지를 통해 두루 알려진 덕에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커다란 뚝배기에서 부글부글 끊어 오르기 시작한 것은 들깨육수에 된장과 비법이 담긴 양념장을 듬뿍 넣어 걸쭉한 국물. 시작부터 잠수 중이던 오리들은 끝까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미나리에 있다. 끓일수록 살코기가 퍽퍽해지는 오리 대신 자꾸 젓가락이 가는 쪽은 들큰한 국물에 부드러워진 미나리. 들깨가루를 듬뿍 섞은 고추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별미다. 테이블 여기저기서 미나리 추가를 외치는 이유가 있었다. 하도 미나리 추가가 많아서 추가 요금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고. 광주의 어느 양반가에서 전해지던 레시피가 펴져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오리탕은 70년대부터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주방을 흘낏 넘보니 가스레인지 위에 10여 개 넘는 뚝배기가 대기 중이었다. 애벌구이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고온으로 보글보글 끊여내는 기세가 대단하다.

오리 고기는 미나리에게만 밀리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서도 마무리는 반드시 공기밥으로. 오리의 영양이 모두 녹아있는 국물에 말아 먹는 밥은 밥심으로 사는 이들에게는 보양식의 완성. 오리가 다이어트 식품인지 몰라도 오리탕은 과식을 부르는 메뉴가 분명하다. 하지만 오리탕의 친구는 단연 전라도 출신 소주 잎새주라 하니, 이 또한 어찌 물리치랴.

영미오리탕 | 주소 본점 광주 북구 유동 102-31  전화 062-527-024  오리탕 골목 휴무일 매월 첫째 주 월요일  분점 광주 서구 치평동 1211-11  전화 062-362-5252  메뉴 오리탕 한 마리 3만8,000원, 반마리 2만5,000원
 
여기는 전라도땅!

상다리 부러진다는 값비싼 한정식집을 마다하고 ‘여행자급’ 한정식집을 추천 받았다. 두서넛이 허리띠 풀고 먹어 봤자 다 비우질 못할 산해진미가 아까우니 말이다. 남도의 어느 집에 가도 기본은 한다는 것이 한정식이니, 이 종목에서 맛집으로 이름을 날리기는 또 얼마나 어렵겠는가. 이름도 장대한 ‘전라도땅’은 그 치열한 경쟁에서 상당한 입지를 확보한 곳이다.

기본 세팅만으로 이미 서울의 여느 백반집과 비교해 반찬수가 배는 많은데, 몇천원을 더 얹으니 그때부터 보쌈고기, 회, 문어, 매운탕에 급기야 육회까지 쏟아진다. ‘신이시여 이것이 정녕 1만2,000원짜리 밥상이란 말입니까’를 절로 외치고 싶은데, 까다로운 광주식객들의 입맛에는 썩 높은 점수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요샛말로 가성비(가격대비성능) 최고의 이 밥상을 어찌 칭송하지 않으리오.
 
하지만 그 진수성찬을 앞에 늘어놓고도 광주토박이 K선생은 김장 김치 겉절이 접시를 비우느라 바쁜 걸 보니, 어떤 산해진미도 신선한 별미에는 이길 수 없나 보다. 메뉴는 계절마다, 주방 사정마다, 주인 기분마다 달라지고 많이 못 먹을 것 같은 사람에게는 알아서 가짓수를 줄여 내놓는 희한한 서비스를 하기도 하지만, 그런 투박함이 또 전라도땅의 맛 아니겠는가. 옛날 금오식당으로 영업하던 시절부터 묵은지 수준의 단골 포스를 내뿜는 어르신들이 쓰다 달다 말도 없이 낮부터 소주잔을 기울이시는 것만 봐도, 주인장 황영자 여사의 쌓아 온 정과 인심이 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전라도땅(구 금오식당) | 주소 동구 금남로 5가 16번지  전화 062-226-7986  메뉴 백반 7,000원부터
 
1 광주 백반집들은 기본 상차림만으로 충분하지만 몇천원을 더 내면 육해공 특별메뉴가 쏟아진다 2 쉴 틈이 없는 생선석쇠
 
위로의 수제비

수제비를 기다리는 동안 무등산 쌀막걸리를 하나 시켰더니 콩물과 두부김치, 깍두기, 그리고 특이하게도 된장을 넣어 무친 겉절이가 기본으로 나왔다. 여름과 함께 이별한 콩물도 반갑고, 감칠맛 도는 겉절이도 맛있어 메인코스를 아예 망각한 찰나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수제비가 ‘나야 나’ 하며 등장했다. 한 숟가락을 뜨려는 찰나 옆 테이블의 중년 아주머니가 급하게 외치는 소리. ‘여기 좀더 주세요!’ 그쪽도 이제 막 나온 수제비의 첫술을 뜨고 있었다.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양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진다는 이 집의 수제비에는 뭐가 들어간 것일까. 바로 미역과 바지락이다. 상호는 박순자 녹두집이지만 그 어깨에 붙은 수식어는 전통수제비 전문점인 이유가 있었다. 걸쭉한 국물에 한가득 담겨 나온 손수제비 특유의 묵직함은 부들부들한 미역에 상쇄되고 쫄깃한 바지락이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대인시장 상인들의 헛헛한 속을 달래 준 바로 그 음식이다.

또 다른 대표 선수는 녹두전이다. 두툼하게 지져 나온 녹두전에는 화룡정점이 있으니, 바로 한가운데 보석처럼 박아 놓은 돼지비계다. 기름과 만나는 겉만 잘 구워지는 것이 아니라 중앙부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속까지 골고루 잘 익혀지는 것이 이 집의 비결일 터. 그럼에도 아삭한 김치 결이 살아 있다. 이러니 입구의 황금돼지 저금통이 싱긋 웃고 있을 수밖에. 족발, 빈대떡, 굴전, 간재미회, 병치회 등은 포장이 가능하다.

박순자 녹두집 | 위치 광주 충장로 대인시장  전화 062-223-8694  메뉴 원조수제비 3,500원, 빈대떡 8,000원, 간재미회 9,000원
 
3 미역과 바지락을 넣어 끓인 수제비는 상인들의 헛헛한 속을 꽉 채울 만큼 푸짐하다 4 돼지비계를 넣어 속까지 잘 구워낸 빈대떡 5 막걸리는 시키면 두부김치, 수제비, 콩물을 기본을 내놓는 인심은 돼지저금통에서 나오는 걸까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광주광역시 관광컨벤션뷰로 062-611-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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