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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물길 따라 곡성 식후경食後景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2.06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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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자욱한 섬진강 풍경
 
 
섬진강 물길 따라  곡성 식후경食後景

코끝을 스치는 풋내, 맛인지 향인지 모를 싫지 않은 비릿함.
그 종잡을 수 없는 맛의 정체는 도도한 강줄기에서 찾아야 했다.
전남 곡성을 감싸며 흐르는 섬진강으로의 맛 기행.

 

물안개 자욱한 강가를 걷다


지난밤, 일찍 잠자리에 든 것이 ‘화근’이었다. 번쩍 눈이 떠진 시각은 한밤중이라 해도 좋을 새벽녘. 달아나 버린 잠을 다시 청하기보다는 먼 여정을 서두르기로 했다. 깜깜한 밤길을 달려 전남 곡성 부근에 이르렀을 때, 처음 여행자를 반긴 것은 공교롭게도 안개였다. 자욱한 물안개는 어둠과 뒤섞여 있었고, 강으로 다가갈수록 더욱 짙어져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물소리만이 저 아래 강이 흐르고 있음을 넌지시 일러줄 뿐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골짜기 너머로 해가 떠오르면서 안개가 물러나기 시작한다. 농밀하던 물안개는 느슨하게 풀어헤쳐지면서 하구 쪽으로 흘러가고, 산등성이를 올라타더니 더 깊은 골짜기로 달아나기도 한다. 그렇게 드러난 물줄기는 아름다웠다. 강은 자디잔 물결을 일으키며 황금빛 햇살을 반짝반짝 튕겨내고, 검푸른 물빛은 무슨 보물이라도 감추고 있는 듯 신비롭다. 곡성의 자랑, 섬진강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섬진강은 진안과 장수 사이의 팔공산 자락에서 머나먼 여정을 시작한다. 전북 산기슭의 깊은 골을 이리저리 휘돌던 물길은 임실과 순창 땅을 고루 적시며 곡성에 다다른다. 그 사이 크고 작은 물줄기를 받아 안은 강은 제법 세를 불려 도도한 흐름을 이어가고, 구례를 지나 지리산을 끼고 돌며 하동과 광양을 거쳐 마침내 남해로 스며든다. 그 길이가 장장 212.3km에 이른다.


우리네 너른 강들이 모두 그러하듯, 섬진강도 많은 것들을 품어낸다. 골짜기를 따라 꺾이고 휘어지며 기름진 땅을 품고, 그것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을 품는다. 사람의 길은 강이 먼저 낸 물길을 따라 이어지기 마련이고, 그 모두가 어우러지며 기막힌 풍경을 연출한다. 먹을거리 또한 마찬가지다. 은어, 참게, 다슬기 등 ‘곡성의 맛’을 이루는 재료들은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것이 대부분이다. 곡성의 음식마다에 민물의 풋풋한 향이 서려 있는 까닭이다.

 

‘서울 아가씨’  은어를  찾아서

 

강줄기와 나란히 달려가는 17번 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갑작스레 유속이 잦아들면서 물길이 널찍해지는데, 섬진강에 보성강이 더해지는 압록면 부근이다. 이곳 압록유원지 일대는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몰려드는 지역으로 유명하지만, 강에서 살아가는 녀석들도 철따라 제 삶의 터전으로 삼는 곳이다. 참게 매운탕, 은어회 등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이곳에 즐비한 것도 같은 이치다.


곡성에서 가장 유명한 먹을거리로는 1, 2급수의 청정한 물에서만 사는 은어가 꼽힌다. 은어는 예나 지금이나 ‘민물고기의 왕’으로 대접받는다. 조선시대에는 유두날(음력 6월15일) 임금님께 먼저 진상하고서야 백성들이 잡아먹을 수 있었을 정도란다. 바닷가에 살던 은어는 3월부터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오는데, 여름철이면 압록까지 다다른 녀석들은 씨알이 굵어져 회나 구이로 먹기에 제격이다. 바다에서 플랑크톤을 먹던 은어 새끼들은 강을 오르며 돌에 붙어 있는 이끼를 주식으로 삼는다. 이때부터 은어 살에 은은한 ‘수박향’이 배어든다고 한다.


섬진강에서 살아가는 아낙들은 은어를 가리켜 ‘서울 아가씨’라고도 불렀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매끈한 몸매며 붉은색을 띤 주둥이, 그리고 향긋한 냄새 때문이다. 게다가 여름철이면 남정네들이 강으로 몰려가 은어 잡이에 흠뻑 빠져 있었으니, 은어는 남자들을 꾀어내는 예쁘장한 도시 아가씨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압록교를 건너 찾아간 곳은 하한산장. 간판이 내걸려 있지 않았다면 그저 강변의 작은 가정집이라고 착각할 만큼 허름한 식당이다.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은어 잡이로 유명한 김동진 어르신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가 은어 낚시를 시작한 것은 23살 무렵, 농사에 관심이 없던 그는 허구한 날 강으로 나가 천렵을 즐겼단다. 그렇게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낚시에 빠져 있다 보니 은어 잡이에 도가 틀 밖에. 어느새 전국의 내로라하는 낚시꾼들은 물론 일본에서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고수’가 되어 있더란다. 알고 보니 그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도 등장한 바 있는 유명인이었다.


“사람들이 물고기를 잘 잡는 나를 ‘물새’ 또는 ‘섬진강 갈매기’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어. 일본에서는 수백만원짜리 낚싯대를 보내주기도 했지. 옛날엔 잡은 은어를 집에서 먹고도 남아돌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곤 했어.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술판을 벌이니 살림이 어디 남아나야 말이지. 나중에는 쌀이나 고춧가루 등을 가지고 와서 은어를 달라고 하더군. 그러다가 1965년쯤 아예 식당을 차렸어. 아마 우리 집이 압록유원지 근처에서 은어와 참게 요리를 내놓은 첫 번째 음식점일 거야.”


어르신께 은어 잡는 법을 물었더니, 은어로 은어를 잡는단다. 이른바 ‘꾐낚시’다. 자기 영역을 가지고 있는 먹자리은어의 공격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르신이 어디선가 낚싯대와 바늘을 가져 와서 시범을 보여 주신다. 낚싯줄에 바늘이 세 개가 달린 것이 독특한데, 하나는 은어를 꾀어내는 씨은어의 코에 걸고 두 번째 것은 꼬리 부근의 지느러미에 건다. 그리고 먹자리은어의 영역에 씨은어를 슬쩍 놀게 하면 둘이 치고 박는 싸움을 시작한다. 그 와중에 씨은어의 지느러미에 매달린 마지막 바늘에 덜컥 걸리고 마는 것이다. 먹자리은어의 영역을 알아보는 눈썰미, 씨은어를 놀게 하는 손놀림이 은어 잡이의 관건인 셈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강가 어부의 얼굴과 손엔 주름이 가득하다. 여울져 흐르는 물살을 버텨내는 것도 이젠 쉬운 일이 아니건만, 어르신은 다음 여름에도 은어를 잡기 위해 9m에 달하는 낚싯대를 들고 섬진강으로 나설 것이란다. “요즘은 양식을 하기도 해서 직접 은어나 참게를 잡는 집이 별로 없어. 그게 안타깝기도 하고 천직으로 생각하고 잡는 거지. ‘섬진강 물새’가 어디 가겠어?”

1 은어튀김은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2 꾐낚시 시범을 보여주시는 어르신의 손에 주름이 가득하다

‘섬진강 물새’ 김동진 어르신이 씨은어의 지느러미에 바늘을 거는 모습

 

섬진강의 풋풋함을 맛보다

 

수박향이 나는 회라니! 김동진 어르신께 은어 이야기를 들으며 침이 고였지만, 여름이 제철이라는 은어회를 엄동설한에 맛볼 수는 없었다. 은어는 가을에 들어서면서 교미를 하고 하구 쪽으로 이동하면서 알을 낳고 곧 죽는다고 한다. 단년생인 은어회의 참맛을 보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 하지만 참게가 있었다. 섬진강 참게도 9~11월이면 산란을 위해 하구로 내려가는데, 이때 활동량이 많아 참게가 잘 잡힌다. 또 음력 2월경의 참게는 ‘황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속이 꽉 차 있어 맛이 좋단다. 참게는 가을부터 늦겨울까지가 제철인 것이다.


하한산장에서 내어준 참게매운탕은 푸짐했다. 들깨가루와 된장을 풀어 국물을 내고 우거지, 고추, 미나리, 쑥갓 등을 넣고 매콤하면서도 진하게 끓여낸다. 곡성에서는 산초나무 열매 껍질을 넣어 향을 돋우기도 한단다. 참게는 두 토막을 내어 넣는데, 걸쭉하고 매콤한 국물이 그 속살에 배어들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다. 껍질이 단단해 살을 빼먹기가 만만치 않지만, 바다의 꽃게와는 유다른 풋풋한 향에 이끌려 또 손이 가기 마련이다. 참게장도 빼놓을 수 없다. 곡성에는 참게장의 집게발 하나면 삼부자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도둑이다.


은어와 참게에 비하면 그 존재감이 미약하지만, 다슬기도 섬진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다. 충청도 지역에선 올갱이, 섬진강 유역에선 대사리라 불리는 다슬기는 그 작은 체구에 비해 맛과 향이 꽤나 깊다. 대사리 역시 여름이 제철이지만, 압록면의 작은 식당에서 대사리 수제비를 만날 수 있었다. 전주식당의 김홍래 어르신은 펄펄 끓는 냄비에 수제비를 떼어 넣으시며 옛일을 회상했다. “순천이 고향인데 22살에 시집을 와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대사리는 5월이나 되어야 나오는데, 여름철이면 대사리를 잡으려고 외지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오곤 했지. 나도 여름 한철 잡은 것을 해감을 빼내고 얼려서 겨우내 쓰는 거야.”


별다른 기대 없이 수제비 국물 한 숟갈을 입에 넣었는데 입 안에 퍼지는 향이 예사롭지 않다. 대사리 한 움큼에 부추, 양파, 마늘이 들어갔을 뿐이다. 그런데 그 국물이 어찌나 뜨끈하고 시원한지 추위에 움츠러든 몸이 노곤하게 풀려 버린다. 약간 진득하면서도 개운한 국물에 쫀득한 수제비가 어우러지니 그 궁합이 기가 막히다.


은어에 대한 미련 때문에 강가에서 미적거리고 있을 때, 압록유원지의 맛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별천지가든에서 다행히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수박향이 나는 제철 은어회는 아니지만, 고소한 맛이 일품인 은어튀김이다. 이것마저도 겨울이 깊어지면 구경조차 할 수 없단다. 은어는 뼈가 억세 포를 뜨듯이 저며서 튀긴다.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옷과 부드럽고 담백한 은어 살이 함께 씹힌다. 은어 살이 얼마나 촉촉하고 부드럽던지 몇 번 씹을 것도 없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그런데 여름철 은어의 수박향이었을까. 은은한 풋내가 입 안을 감돌더니 슬그머니 사라진다. 도대체 어떤 맛일까? 아무래도 다음 여름 곡성을 다시 찾아와야 할 것만 같다.


하한산장 | 주소 곡성군 오곡면 하한리 207  문의 061-362-8743
별천지가든 | 주소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 393-2  문의 061-362-8746
전주식당 | 주소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 41-2  문의 061-362-8389
메뉴 은어회 5만원, 은어구이 4만원, 은어튀김 3만원, 참게탕 3만~5만원, 대사리 수제비 7,000원

 

1 수제비를 떼어 넣으시는 김홍래 어르신 2 개운한 국물과 쫀득한 수제비의 궁합이 일품인 대사리 수제비 3 하한산장의 푸짐하고 얼큰한 참게매운탕 4 일반 가정집처럼 단출한 하한산장

 

▶travel info


●섬진강을 즐기는 4가지 방법

 

강줄기 굽이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은 포근한 골짜기에 안겨 강물을 지그시 내려다본다. 섬진강의 매력 가운데 4가지를 골랐다. 곡성의 섬진강을 맛보았다면 빼놓을 수 없는 즐길거리다.

 

증기기관차의 추억  섬진강 기차마을

섬진강 기차마을은 운행시간 단축과 KTX 운행으로 새로운 곡성역이 생기면서 구 역사를 기차마을로 꾸민 곳인데,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선택되기도 했다. 기차마을 안에는 장미공원, 잔디광장, 동물농장 등 이런저런 볼거리를 조성해 놓았지만, 이곳이 인기를 끈 것은 역시나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 덕분이다. 증기기관차는 시속 30~40km의 느릿한 속도로 강변을 따라 가정역까지 약 10km를 왕복한다.
주소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770-5  문의 061-363-6174, www.gstrain.co.kr

 

강을 벗 삼은 산책 섬진강 둘레길
섬진강 둘레길은 기차마을에서 시작해 압록유원지 직전까지 15km에 이르는데, 5개 구간으로 구분돼 있다. 기차마을-작은침실골 1구간(3.2km)은 강변 마을의 유적들을 지나 제방길을 따라 강에 바짝 붙어가는 길이며, 작은침실골-침곡역 2구간(2.2km)은 숲과 전망대 등을 지나며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침곡역-가정역 3구간(5.1km)은 우거진 숲을 관통하고, 가정역-이정마을 4구간(2.1km)은 철로 위를 걸어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 이정마을-압록오토캠핑장 5구간(2.4km)은 가장 강과 가까운 길로 운치가 남다르다.
문의 061-363-2011 www.simcheong.com

 

장터 구경 가볼까? 기차마을 전통시장
섬진강 아랫동네에 화개장터가 있다면 곡성엔 ‘기차마을 전통시장’이 있다. 곡성읍 읍내에 자리한 이 시장은 생각보다 세련됐다. 기와지붕을 얹은 높다란 솟을대문으로 웅장한 느낌을 주는 입구와 널찍하면서도 깔끔한 내부가 인상적이다. 가지런히 정돈된 점포들과 넉넉한 주차장도 자랑거리다. 역사도 꽤 깊다. 1770년에 편찬된 옛 기록물에 등장할 정도니 족히 300년의 세월을 간직한 셈이다.  
주소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208  문의 061-363-9002

 

사진으로 곡성 만나기 섬진강 문화학교
압록에서 섬진강과 합류하는 보성강을 따라 오르다 태안사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 ‘섬진강 문화학교’다. 폐교를 활용한 전시관인데, 2층짜리 건물 외벽에 가득한 사진들이 먼저 눈길을 잡아끈다. 독도 사진가로 잘 알려진 김종권 작가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공간이며, 한쪽에 마련된 카페에서는 전통차와 커피도 즐길 수 있다.
주소 곡성군 죽곡면 동계리 269  문의 061-362-0313, www.ephotoart.co.kr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취재협조  전라남도 www.namd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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