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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 TRAVELLER] 수의사의 오토바이 세계일주

  • Editor. 고서령
  • 입력 2014.02.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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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에 잘 나가던 동물병원을 정리하고 오토바이 세계일주를 시작했다. 
4년간의 여행 후 그는 동물병원 원장님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페루 쿠스코에서 푸노로 향하던 길. 카메라 타이머를 맞춰 두고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별여행사 
문성도 대표
www.travelersplanet.co.kr 
 
살아지는 대로 살까, 살고 싶은 대로 살까. 돈 되는 일을 할까, 행복한 일을 할까. 나만 생각하며 살까, 세상을 생각하며 살까. 잊고 있었던, 삶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 아름다운별 여행사의 문성도 대표를 눈앞에 마주한 내내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문 대표의 원래 직업은 수의사다. 하지만 4년간의 오토바이 여행을 마치고 동물병원 대신 작은 여행사를 차렸다. 그것도 이름마저 생소한 ‘에티오피아’ 전문 여행사를 말이다.
 
두려움이 없었던 이유

고난을 극복해낸 사람의 이야기는 듣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문 대표의 이야기가 그랬다. “해외여행은 동물병원을 하면서도 갈 수 있잖아요. 왜 하필 힘든 오토바이 세계일주를 결심하셨어요?” 가볍게 던진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 무겁게 말했다. “나이 마흔까지 한순간도 저를 위한 삶을 살아 보지 못했었어요.” 

그는 어릴 때부터 가장의 짐을 짊어져야 했다. 아버지는 반신불수의 병을 앓고 계셨고, 형은 장애가 있었고, 어머니마저 가족 뒷바라지를 하느라 갖은 고생을 하신 끝에 병을 얻었다. 가족을 책임지고 보호할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바윗덩어리 같은 인생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삶의 의미나 행복을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그저 열심히, 열심히 살아야만 했다. 다행이 동물병원이 잘 됐고, 생활도 안정을 찾았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처음으로 ‘내 삶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내일 당장 죽는다면 가장 후회될 일이 무엇일까. 이 아름다운 지구를 다 돌아보지 못한 것, 그게 가장 후회될 것 같았어요. 기왕이면 자유롭고 색다르게 여행하고 싶어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죠.”

아무리 그래도 오토바이 세계일주라니. 두렵진 않았느냐 물었다. 이 여행을 통해 나머지 삶의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면, 죽는 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어떤 여행 작가가 그랬던가. 세상은 늘 그렇듯 저지르는 자의 것이라고. 지금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을 때, 저질러야 한다고. 저질렀기에 세상을 가진 사람, 문 대표는 정말로 삶의 이정표를 찾았고 후회가 없는 듯했다.
 
1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와 케냐의 국경에 인접한 작은 마을, 마사디트에서. 에티오피아 남부 도시 모얄레에서 180km 가량 남쪽으로 달려 이 마을에 도착했다 2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물개와 함께 3 알래스카의 북극권Artic Circle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북극권은 여름엔 백야, 겨울엔 해가 뜨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문성도
 
오토바이, 네가 있었기에

그의 여행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당시엔 1년마다 오토바이 국제면허증을 갱신해야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한국에 돌아왔다. 1차 여행 때는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유럽을 약 2만 킬로미터 정도 주행했고, 2차 여행 때는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를 약 4만 킬로미터 여행했다. 마지막 3차 여행 때는 캐나다, 알래스카,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브라질 등 미주 전 대륙 약 6만 킬로미터를 종단했다.  

“여행 전 오토바이 경험이라곤 스쿠터를 한 번 타 본 것이 전부였어요.” 부족한 운전실력 탓에 첫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러시아에서 사고로 팔이 부러졌다고. 다행이 심각한 정도는 아니어서 몽골에서 2달 동안 치료한 뒤 여행을 계속했다. 정말 큰 사고는 3차 여행 막바지에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났다. “사고가 나고 의식을 잃기 직전 0.1초 동안 눈앞에서 제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고요.” 현지 병원에서 다리 수술을 받고 한 달 동안이나 입원해 있었다. 외딴 땅에서 많이 아프고 힘들었겠다고, 병상에 누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많이 울었어요. 한국에 연락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제가 다쳤다는 사실을 도저히 어머니께 알릴 수 없었거든요.” 문 대표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자신의 불행을 알릴 자신이 없었다. 퇴원 후에도 절뚝이는 다리가 나을 때까지 몇 달이고 귀국을 미뤘다. 

고통은 더 있었다.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던 오토바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난 것이다. “경찰서에 보관돼 있던 오토바이를 본 순간 막 눈물이 났어요. 나 이상으로 네가 많이 다쳤구나, 정말 미안하다, 라고 말하면서요.” 그에게 오토바이는 단순한 이동수단이나 기계가 아니었다. 4년의 여정 동안 자신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그의 마음 속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오토바이로 광활한 대륙을 질주할 때의 흥분과 요동치는 가슴, 오토바이 여행자라는 사실만으로 환영해 주고 응원해 주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 두 바퀴에 몸을 싣고 인적 없는 미지의 공간을 달리며 느낀 한없는 자유. 그가 여행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기억은 모두 오토바이가 아니었다면 없었을 것들이었다. 그는 재활치료를 하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오토바이를 수리했다. 그와 오토바이가 함께 상처를 치유한 시간들이었다.
 
1 길에서 즉석으로 볶아주는 에티오피아 커피 2, 6 랄리밸라 암굴교회의 성직자들 3 ‘아프리카의 지붕’, ‘신들의 체스판’이라 불리는 해발 4,620m의 시미엔마운틴에 사는 원숭이들 4 나일강의 원류인 블루나일 폭포 5 ‘아프리카의 카멜롯’이라 불리는 곤다르 파실게비 성 7 에티오피아 랄리밸라 암굴교회의 창문에 한 여인이 서 있다. 12~13세기에 정과 망치로 땅을 14m나 파 내려가 만든 랄리밸라 암굴교회에서는 지금도 종교 의식이 치러진다 ©신미식
 
그가 반한 에티오피아 이야기 

이쯤 되니 궁금함이 극에 달했다. 수많은 아름다운 나라를 여행했을 텐데, 무슨 이유로 에티오피아를 콕 찍어 전문 여행사를 만든 것인지. 도대체 에티오피아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여행이 끝난 후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여행의 의미를 나누는 일’이었어요. 용기가 필요할 때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죠. 에티오피아는 제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많은 것을 배운 나라예요. 그런데 한국에는 이렇게 가치 있는 여행지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거, 참. 이왕 전문 여행사를 차릴 거라면 소위 ‘돈이 될 만한’ 지역을 고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그런데 ‘이 좋은 곳을 모르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라니. 기자는 갑자기 막막해질 정도였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만나 보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돼요.” 문 대표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말하는 에티오피아는 경제적으론 가난하지만 마음은 부자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신발을 못 신을 정도로 가난함에도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존감만큼은 놀라울 정도다. 3,000여 년 전 악숨제국부터 시작된 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하늘을 찌른다. 또한 오랜 기독교 문명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자연·문화유산을 10곳이나 갖고 있다. 문 대표는 에티오피아인들을 볼 때면 ‘매일 신과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밖의 놀라운 볼거리도 많다. ‘랄리밸라’에선 12~13세기에 정과 망치로만 땅을 14m나 파 내려가 만든 11개의 암굴 교회를 만날 수 있다. 당시 이슬람 세력의 강화로 에티오피아인들이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가기 힘들게 되자, 랄리밸라왕이 ‘불타지 않는 제2의 예루살렘’을 만들겠다며 돌로 된 교회 단지를 만든 것이다. 또 신들의 체스판이라 불리는 해발 4,620m의 ‘시미엔 마운틴’과 원시 그대로 생활하는 부족들이 모여 있는 ‘오모밸리’도 여행자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약 300만년 전)의 인류 화석 루시Lucy가 발견된 곳도 에티오피아다.

이처럼 많은 매력을 가진 여행지임에도 아프리카 국가란 이유로 각종 편견에 시달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아프리카라고 하면 전쟁, 기아, 가난, 학살 등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을 연결시킵니다. 말라리아 등 질병에 대한 걱정도 많고요.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치안이 안전해요. 안전한 곳인지 위험한 곳인지는 본능적으로 느껴지잖아요. 또 말라리아는 주로 아프리카 남부 지역에서 심한 질병이에요.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북부, 그중에서도 해발 2,000~3,000m에 위치했기 때문에 모기가 많지 않아요. 예방접종을 하면 말라리아 위험이 거의 없죠.”
 
“특별한 스토리, 감동을 드리고 싶어요”

이제 여행사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 앞으로 아름다운별 여행사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큰 여행사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은 떨어질지 몰라요. 그렇지만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여행,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여행 상품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갈 거예요.” 아름다운별 여행사는 ‘에티오피아와 사랑에 빠진 사진작가’로 알려진 신미식 작가와 함께하는 사진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1년에 3~4번씩, 사진에 관심 있는 여행자들과 신미식 작가가 함께 에티오피아의 문화와 자연을 여행하게 된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에티오피아 커피를 처음으로 소개한 에티오피아 커피 전문점 ‘이디오피아 벳bet’의 바리스타와 함께하는 커피투어, 고고학자 또는 철학자와 함께하는 인류 시원始原 여행 등도 기획 중이다. “에티오피아는 한국 전쟁에 참전해 준 나라예요.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 우리 회사 상품을 이용해 여행하는 고객 1명당 일정 금액을 에티오피아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글  고서령 기자   사진  문성도 대표, 신미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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