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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에서 귀를 기울이면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3.07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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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나 오사카가 
혈기왕성한 젊은 일본이라면 
규슈 사가현은 그 반대다. 
화려함도 과장도 없다. 
모든 것이 그저 자연스러운 
포근한 할머니 품 같다. 
사가에서 귀를 기울이면 들려온다. 
웅웅대는 바닷바람에 
도자기 풍경風磬소리에 
옛 이야기가. 
 
 
 
사가현에는 유서깊은 녹차 산지와 도자기 마을이 있다
 
 
●가라쓰唐津
나고야 옛 성터엔 거센 바람소리만

사가佐賀현은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지역이다. 일본인의 조상이 된 한반도 원시 인류는 이 지역에 처음 뿌리를 내렸고, 백제와 가야의 문명도 이곳으로 전해졌다. 한편으론 임진왜란의 출병기지가 있던 곳도 여기고, 붙잡혀 온 조선 도공들이 일본 최초의 백자를 만든 곳도 여기다.

현 북부에 위치한 가라쓰시 나고야성박물관은 사가현 여행에서 가장 먼저 둘러봐야 할 곳이다. 220여 점의 사료를 통해 원시시대에서 현재까지, 수천년에 이르는 한일 교류사를 보여 준다. 이 박물관은 침략전쟁이었던 임진왜란을 반성하며 세운 곳이라고 한다. 박물관이 자리한 곳이 왜란의 출병기지였던 성 바로 옆이다. 

성은 이미 오래전에 허물어지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부산에서 고작 200km,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최단거리로 잇는 이곳에 거대한 성을 짓고, ‘나고야名護屋’라고 명명했다. 우리가 잘 아는 오사카 인근 나고야名古屋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고향인데, 여기서 ‘오랠 고古’자만 전쟁 분위기를 담아 ‘지킬 호護’자로 바꾼 것이다.

나고야성은 면적 17만 평방미터, 둘레만 6km에 달해 당시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였는데, 불과 5개월 만에 완공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성을 짓자마자 전쟁을 서둘렀다. 1592년 음력 4월13일, 일본군 15만8,000명이 한반도로 출병해 다음날 부산에 상륙했다. 이후 정유재란까지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다. 오랜 강화 협상이 이어졌고, 히데요시는 다시 정유재란을 일으켰지만 1년 만에 급사하고 말았다. 일본군은 기다렸다는 듯 철수했고, 승전국은 조선이었다. 

패전 후 나고야성은 어떻게 됐을까. 한때 성 주변 마을은 참전을 위해 전국에서 모인 다이묘와 상인들로 10만명이 넘는 대도시를 이뤘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자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얼마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는 보란 듯이 성을 허물어 버렸다. 

2014년, 나고야성터는 여전히 그렇게 텅 빈 채 남아있다. 듬성듬성 보이는 석벽과 주춧돌만으로 옛 모습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위풍당당한 천수각이 있었을 본당 언덕에 올라 봐도 허허벌판뿐, 거센 바닷바람이 빈 터를 훑는 소리만 가득하다. 전쟁을 전후로 한 나고야성의 영화와 몰락은 마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말년을 보는 듯하다. 그는 결국 한번도 이 바다를 건너 보지 못했다.
 
나고야성을 허물고 난 잔재로 지은 가라쓰성. 천수각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고야성에서 한반도 침략을 준비했다. 그는 이 바다를 건너 보지도 못하고 죽었고, 지금은 성터만 남아있다
 
춤추는 학과 무지개 소나무숲

나고야성을 부수고 난 잔해는 시내 북부에 있는 가라쓰성 축조에 쓰였다. 히데요시의 가신이자 가라쓰성의 초대 번주였던 데라사와 히토타카가 1608년 축성했는데, 현재의 성은 1871년 허물어진 것을 1966년 복원한 것이다. 내부에는 무구, 도기 등 에도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성 자체의 매력보다는 5층 천수각에서 보는 전망이 좋아 가볼 만하다. 천수각에 오르면 탁 트인 가라쓰만과 해안선을 감싼 짙푸른 소나무숲이 펼쳐진다. 100만 그루 노송이 5km나 이어지는데, 길게 뻗은 모습 때문인지 ‘무지개 송림’이라 부른다고. 이 송림은 가라쓰성을 사이에 두고 마치 학의 날개처럼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가라쓰성의 애칭이 ‘춤추는 학’이 된 이유다.  

가라쓰성 주변에는 벚나무와 등나무가 조성돼 있어 꽃이 피는 봄에 가면 더욱 운치가 있다. 무지개 송림은 일본 3대 송림 중 하나로, ‘21세기 남기고 싶은 일본 풍경 5위’로 꼽히기도 한 명소다. 한가로운 해변을 따라 직접 거닐어 보는 것도 좋겠다. 이외에 가라쓰성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옛 다카토리 저택도 가볼 만하다. 메이지 시대의 갑부였던 ‘석탄왕’ 다카토리 고레요시의 저택을 복원한 곳이다. 특히 삼나무 문에 그린 71장의 그림과 동식물을 새긴 부조 ‘란마’는 화려하지만 속되지 않은 일본 실내 예술의 미학을 보여 준다. 
 
▶travie info      
가라쓰성┃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입장료 400엔  찾아가기 JR가라쓰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20분 
나고야성박물관┃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특별전시가 있을 경우 유료)  찾아가기 JR가라츠선, 치쿠히선 가라쓰역 하차 후 오오테구치 버스센터에서 쇼와버스波戶岬행 승차. 나고야성박물관 입구에서 하차
옛 다카토리 저택┃개관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5시  입장료 500엔(한국어오디오가이드 300엔)
 
이마리시 오카와치산은 조선 도공들이 강제로 이주돼 도자기를 만들던 곳이다. 여전히 도자기 만드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오카와치 도자기 마을. 종종 예쁜 접시를 사러 온 나이 지긋한 일본의 아주머니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마리伊萬里 
풍경소리를 타고 온 도공들의 이야기

정유재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렸다. 그만큼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많았던 탓이다. 당시 자기를 굽는 기술이 없었던 일본에서는 질그릇과 목기를 주로 사용했고, 도자기로 만든 다완 하나는 성채 하나와도 맞먹는 값이었다. 다도茶道가 귀족들 사이에 최고급 취미로 유행하면서, 도자기로 만든 다완은 그들의 위세를 과시하는 최고의 예술품이었다. 

일본으로 잡혀 간 수천명의 조선 도공들 중 이삼평李三平은 일본에서 ‘도자기의 시조陶祖’로 추앙받고 있다. 당시 나베시마(현재의 사가현) 번주에게 끌려온 이삼평은 번주의 명으로 3년간 찾아 헤맨 끝에 고령토를 발견했다. 그는 광산 건너 골짜기에 가마를 짓고 1616년, 일본 최초의 백자를 만들어냈다. 이 해가 바로 일본 도자기의 원년이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 도자기는 점차 발전해 17세기 초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삼평이 처음 도자기를 만든 곳은 현재 사가현 아리타시 동쪽 이즈미산 부근이다. 하지만 나베시마번의 영주는 우수한 도자기 기술을 독점하기 위해 조선 도공들과 가마를 첩첩산으로 둘러싸인 오카와치산으로 이주시켰다. 조선 도공들은 엄중한 감시 속에 일본 귀족들을 위한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들이 만든 도자기 ‘이마리야끼(도자기)’는 상업의 발달과 함께 점차 일반에도 유통됐고, 유럽에도 수출됐다. 이때부터 일본은 도자기의 나라로 ‘신비한 동양’의 상징이 된 것이다. 

전쟁 속에 끌려간 도공들의 손에서 탄생한 일본 도자기가 우리를 제치고 세계적으로 부상한 것은 얄밉고 씁쓸한 일이다. 하지만 남의 것을 받아들여 철저하게 자기화하는 일본인들의 영리함, 장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도자기 공법에 그들만의 채색기법을 개발해 접목했고, 조선의 도공들을 사무라이와 동급으로 대우했다. 이 때문에 아예 일본 성으로 바꾸고 정착해 살아간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다. 

오카와치 산골짜기에는 여전히 30여 개의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는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마을의 좁은 골목길에는 도자기를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빨강, 노랑, 초록으로 화려하게 칠한 도자기로 못 만드는 물건은 없다. 흔한 다기에서부터 풍경風磬, 수묵화를 그린 족자, 인형까지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몇몇 가게를 기웃거리다 보면 어느새 아무도 없는 골목에 혼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워낙 인적이 드문 동네다. 산 아래 도자기 굽는 마을은 말없이 한가롭다. 귀를 기울이면, 바람에 흔들리는 도자기 풍경 소리만 맑고 높게 울려 퍼진다. 작은 요람처럼 흔들리는 풍경을 보며 영롱한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치 시간이 영원히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우레시노 시내에 있는 고즈넉한 절 ‘다이코지’
와라쿠엔은 우레시노의 특산물인 ‘녹차’를 테마로 한 온천이다. 노천녹차온천탕과 녹차로 만든 음식들을 맛볼 수 있고, 무료로 유카타 체험을 할 수 있다
우레시노의 명물 녹차푸딩. 두부와 젤리를 합쳐 놓은 맛이다.
 
●우레시노嬉野 
녹차와 온천이 있는 마을

우레시노는 사가현 남부에 있는 작은 온천마을이다. 50여 개의 온천 여관이 강줄기를 따라 늘어서 있고, 마을을 포근하게 둘러싼 산에는 싱그러운 녹차밭이 펼쳐져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 하나라는 우레시노 온천의 유래는 이렇다. 2세기경 일본의 진구황후가 전쟁이 끝나고 귀향길에 이곳에 들렀다가 강가에서 지쳐 쉬고 있는 두루미를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루미가 날개를 강물에 담그고 나자, 다시 힘차게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황후가 기이하게 여겨 부상당한 병사들에게 강물에 들어가게 하자 온천수가 솟아나 병사들의 상처가 치유됐다. 황후는 기쁜 나머지 ‘우레시!(기쁘구나)’라고 외쳤고, 이 외마디가 이곳 지명이 된 것이다. 

우레시노 온천이 천황이 아닌 황후와 연관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레시노 온천은 여성들의 피부에 특히 좋아 일본의 3대 미인 온천으로 유명하다. 온도가 85도에서 90도에 이를 정도로 뜨거우며, 나트륨 함량이 높아 신경통과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 실제로 몸을 담가 보면 미끌미끌한 느낌이 들어 입욕감이 매우 좋다.

녹차 역시 우레시노의 명물이다. 17세기 중반 일본차의 발상지인 사가현 요시노가리에서 차 종자를 가져와 심기 시작해 현재까지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가마에서 볶은 것과 증기로 찐 것 두 가지로 생산하며 비타민 C가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마을 상점거리에서는 녹차로 만든 각종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두부에 녹차 분말을 넣어 만든 녹차 푸딩은 탄성이 두부와 젤리의 중간 정도라 식감이 좋고, 설탕시럽의 달콤함, 녹차향이 어우러져 매력적인 맛을 낸다. 
우레시노에서는 아침 일찍 온천을 마친 후 강을 따라 산책을 즐겨 보자. 마을 안에 있는 절 즈이코지瑞光社에 들러도 좋다. 정원 같은 분위기 속에서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아침은 온천두부가 어떨까? 온천수로 두부를 삶은 것인데 온천수가 단백질을 분해해 일반 두부보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난다. 국물은 숭늉처럼 구수하고 시원해 속을 편하게 해준다.  
 
글·사진  Travie writer 도선미
취재협조  티웨이항공 www.twayair.com  사가현 www.welcome-saga.kr
 
▶travie info 
오카와치산大川內山┃찾아가기 JR치쿠히선, MR마쓰우라철도 이마리역에서 코시히西肥버스 오카와치야마행 승차 후 하차 
우레시노 온천마을┃찾아가기 JR나가사키선, 사세보선 다케오온천역 하차 후 남쪽 출구 앞에서 JR우레시노온천행 버스 탑승. 우레시노온천버스센터 하차 후 도보 10분 소요.
녹차 테마의 온천료칸 ‘와라쿠엔’ 녹차를 우린 노천온천탕으로 유명하다. 숙박을 할 경우 일반 료칸과 정원을 갖춘 별채를 선택할 수 있다. 녹차와 사가 쇠고기를 이용한 가이세키 요리도 일품이다. www.warakuen.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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