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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야구 오타쿠의 글러브이야기

  • Editor. 신지훈
  • 입력 2014.03.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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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야구는 ‘도구의 스포츠’라고 불린다. 방망이, 글러브, 헬멧, 포수장비, 스파이크, 장갑 등 한 경기에 필요한 도구만 수십여 개다. 나 역시도 사회인 야구를 취미로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장비를 구입했는데, 그중에서도 야구 글러브는 10개 이상 소장하고 있다. 그 가격도 최저 15만원에서 60만원까지 이르러 그동안 사고판 글러브 가격만 해도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그렇다. 나는 ‘글러브 오타쿠’다. 눈을 감고 글러브 촉감과 냄새만으로 어느 글러브인지 알아맞힐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방 한구석 글러브 장을 따로 둬 일일이 가죽 오일을 발라가며 케어해 줄 만큼 애지중지하고 있다. 
 
‘야구하는 데 글러브는 하나면 되는 거 아니냐?’며 
지인들은 나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이 글은 
그런 의문을 가진 이들에 대한 나만의 반문이다.

우선 미트가 필요하다. 미트는 1루수와 포수를 할 때 필요하다. 내야수 또는 외야수가 주자를 아웃시키기 위해 1루로 송구한 공, 또는 투수가 포수에게 던진 공을 무조건적으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여타 글러브에 비해 사이즈가 크고 볼 집(공을 잡았을 때 글러브 안에 공이 위치하는 곳)이 깊다. 

가끔은 투수가 되기도 한다. 투수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공을 잡는 모습을 타자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타자는 투수가 공을 쥔 손만 보고도 미리 구질을 파악해 공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지와 검지 사이 부분의 웹Web이 통가죽으로 덮여 있다. 또한 웹과 글러브 전체가 같은 색이어야 하며 그 색은 흰색 혹은 회색 이외의 것이어야 한다. 야구공의 색깔과 유니폼의 색이 같은 데서 오는 시각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투수의 글러브는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등 한 가지 색으로 이뤄진 경우가 대다수다.

나의 주 포지션은 내야수다. 내야수는 내야로 향한 공을 포구한 후 주자를 아웃시키기 위해 빠르게 공을 글러브에서 빼내어 송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글러브는 사이즈가 작고 볼 집이 얕다. 3루수라도 봐야 할 때는 또 다른 글러브가 필요하다. 3루수가 위치한 지역은 타구가 굉장히 빠르고 불규칙하게 오기 때문에 이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 유격수와 2루수의 글러브보단 사이즈가 조금 더 크며 볼 집이 깊은 글러브가 필요하다. 
 
가끔은 외야수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외야수는 외야로 향해 뜬 볼을 어떻게라도 쫓아 잡아내야 하며 잡아낸 볼은 절대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글러브 입구가 입을 오므린 듯 좁게 생겼으며 볼 집은 대단히 깊고 글러브는 유독 길다.

그렇다. 야구는 포지션에 따라 글러브를 달리 가지고 시합을 해야 하며, 사회인 야구의 특성상 상황에 따라 한 경기에 모든 포지션을 소화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여러 개의 글러브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최소 5개의 글러브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야?’라는 질문에 다시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글러브를 가죽의 종류와 원산지에 따라, 글러브 브랜드에 따른 특징으로 분류해야 하는 좀더 섬세한 대답이 필요하다.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이 지면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글러브의 세계는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광활한 우주다.

우주의 눈꼽만큼도 설명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숨어있는 야구 오타쿠의 호응이 있다면, 혹시 아는가. 글러브에 이어 방망이의 세계까지 펼쳐낼 넉넉한 지면이 허락될지도…. 
 
글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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