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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EARTH-모든 첫사랑은 외계인이다

  • Editor. 양이슬
  • 입력 2014.04.2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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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신하균은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외계인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결말로 끝이 난다. 영화 <화성침공>은 외계인에게 공격 받는 지구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계인’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징그럽고, 괴상하게 생긴 생물체였다. 설사 외계인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우정을 나눈다 해도 그 이미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나오기 전까지는.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의 등장 이후, 사람들의 외계인에 대한 이미지는 많이 바뀌었다. 외계인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랄까. 400년 동안 지구에 살면서 외모와 지성, 재력까지 갖춘 도민준. 

그를 보면서 도민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매력을 지닌 나의 10년 전 첫사랑이 생각났다. 
물론 마음을 표현하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끝나 버렸지만.

나의 첫사랑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 얼굴에는 여드름이 가득했고. 쌍커풀 없는 눈에, 약간은 왜소하게 보일 수도 있는 체격이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 당시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 나카타 히데토시를 닮았다고 하니, 그 축구선수를 모방한 듯 보이는 과장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그가 좋았고, 그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났다. 누구보다 남자답고 늠름한 눈빛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왜소하기는커녕 나카타 히데토시보다 더 딱 벌어진 어깨를 소유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그가 속한 동아리에 가입했다. 맘 졸이며 친한 선후배 사이로 지내기를 일 년. 이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혀를 내둘렀다. 고백하라며 등을 떠밀기도 했다. 하지만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우물쭈물하며 바라만 보던 나의 첫사랑에게 어느 순간 새로 시작하는 연인이 생겼다. 오랜 시간 지켜보기만 했던 나의 첫사랑, 아니 짝사랑은 그렇게 마음을 전하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그리고 10년 동안 내 마음속에 여전히 빛나는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때로는 그가 무심하게 던지는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에 모든 의미가 부여되기도 했다. 두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설레어 온몸이 굳어 버리기도 했다. 그를 향한 나의 근거 없는 무한 애정은 평범한 그를 새로운 별에서 온 ‘도민준’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이란 그렇지 않던가. 
평범한 사람도 미스터리한 존재가 되고, 범접할 수 없는 빛을 내는 존재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첫사랑은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지난 10년간 그는 키 크고 딱 벌어진 든든한 어깨를 가진, 빛이 나는 늠름한 남자로 기억됐던 것이다. 하나의 범접할 수 없는 생명체로 반짝반짝 빛을 내며.
한동안 도민준에 빠져 있다 보니, 그와 동급으로 여기던 나의 첫사랑 역시 여전히 도민준으로 지내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저 한 편의 드라마 속 인물이었던 그처럼, 내 첫사랑도 내가 만든 탈을 쓰고 있는 허구의 인물일 뿐이었다. 그의 타고난 바람기는 오래 전부터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던 것. 10년 만에 접한 그의 소식으로 그는 드디어 도민준의 탈은 벗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겐 외계인으로 남아있다. 다만, 그 종족이 도민준에서 ET로 바뀌었을 뿐. 
 
글 양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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