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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음식단상] 춘궁 이제는 아름다운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5.02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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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은 헛헛한 기억으로 피어난다. 
춘궁, 이제는 추억으로 아름답게 이야기하지만 
아직도 어느 뒷골목에는 마른버짐 번지는 허기의 시간이 흐른다. 
훗날 그들도 오늘 같은 늦봄을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여행자를 반기는 길 위의 보석 산딸기
산길을 걷다 보면 우연치 않게 빨간 보석 같은 산딸기를 만난다. 열매가 작아 잘 보이지 않는데 천천히 걸으면서 이리저리 잘 살펴보면 간혹 눈에 들어온다. 굳이 산에 가지 않더라도 재래시장에 가면 산딸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침 넘어가는 산딸기, 산딸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매혹적이다. 어떤 립스틱의 색이 저 빛깔을 따라갈까? 산딸기 톡톡 터지는 그 맛은 어디에나 다 어울리지만, 특히 문배주와 이강주에 잘 어울린다. 40도가 넘는 전통 증류주의 부드러우면서도 카랑한 그 느낌에 저 산딸기의 매혹적인 맛이 더해지는 입 안은 황홀하다. 햇살 좋은 오늘 하루가 모든 분들에게 산딸기 같은 날이 됐으면 좋겠다. 
 
곤드레 나물죽으로 넘던 
보릿고개 곤드레나물밥
 
곤드레, 딱주기 등 나물 뜯어 나물죽을 해 먹으며 봄을 넘겼다는 강원도 정선군 유평리 한치마을 팔순 할머니는 평창댁이다. 꽃다운 십대에 평창에서 시집와서 해야 했던 일은 마을 뒷산인 민둥산에 올라 나물을 뜯는 것이었다. 봄풀 돋은 그 산에서 어린 신부는 이런 생각을 했단다.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나! 지금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스무 살도 안 된 새색시가 봄풀 돋고 꽃천지인 산등성이에 앉아 살기 위해 나물을 뜯어야 했던 것이다. 보릿고개를 넘던 그 시절 먹었던 곤드레나물이 이제는 이른바 ‘웰빙음식’으로 자리잡아 정선의 대표적인 먹을거리가 됐다. 
정선에 곤드레나물밥으로 유명한 식당이 몇 곳 있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이 화암리에 있는 식당이다. 밥을 할 때 들기름 몇 방울 떨어뜨린다. 밥이 다 되면 양념간장 또는 강된장을 넣어서 비벼 먹는데 어떤 것을 넣어도 다 만족할 만하다. 올해도 곤드레나물밥은 구수한데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신지, 살아계셔서 산등성이 새색시 푸르렀던 봄을 추억하실런지!   
곤드레식당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화암리 | 033-562-9620
 
보리밥의 추억
해미 보리밥정식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에 가면 해미읍성이 있다. 성곽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성곽길 풍경 중 백미는 성곽 정문 부근과 서문 부근에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다. 1970년대 산이슬이 불렀던 가요 ‘이사 가던 날’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난다. 
이사 가던 날, 뒷집 아이 돌이는
각시 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장독 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
탱자나무 꽃잎만 흔들었다네
지나 버린 어린 시절, 그 어릴 적 추억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피어오른다… 
탱자나무만 보면 이 노래가 떠오른다. 그날도 이 노래를 떠올리며 나물비빔밥을 먹으러 가는데 기분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련했다. 보리밥정식을 시켰다. 보리밥과 된장국, 몇 가지 반찬이 나오고 쌈채소가 곁들여졌다. 보리밥을 비벼 먹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나물도 참 순박하다. 비빔밥 맛은 웬만하면 비슷한데 이 집은 직접 담근 고추장 맛으로 차별화된다. 고추장과 보리밥이 잘 어울린다. 고명으로 얹는 나물에서는 해미 들판의 봄바람을 닮은 맛이 난다.  
향수가든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 | 041-688-3757
 
꽃이 밥이 됐어요! 
꽃밥
강원도 정선에 가면 ‘꽃꺾기재’라는 고갯길이 있다. 나라 전체가 못살던 시절, 고개를 넘으며 꽃을 꺾어 먹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개인적으로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어릴 때 꽃을 먹었었다. 진달래로 화전을 해먹고, 진달래술도 담가 먹었다. 사루비아 꽃잎 끝을 빨면 설탕물처럼 단맛이 입 안에 퍼졌었다. 한때 꽃밥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식당에서 꽃밥을 팔았던 거다. 요즘도 꽃밥을 파는 식당이 있다. 먹을 수 있는 꽃들을 모아서 밥에 얹어 먹는다. 대부분 비빔밥으로 먹는데 동치미에도 꽃잎을 띄운다. 꽃잎을 밥과 섞어 비벼야 하는데 꽃이 예뻐 그게 쉽지 않다. 꽃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 그래야 꽃잎이 이겨지지 않고 고슬고슬 잘 섞인다. 한 그릇의 꽃밥은 꽃 핀 봄 한 아름이다. 먹고 나서 오래도록 입에 남는 꽃향기에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가벼워진다.  
상수허브랜드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부용외천리 
043-277-6633
 
산나물의 향기
산나물가마솥밥
논이라고는 송곳 하나 꽂을 데 없는 산골 태백에도 봄이 지나가고 있으니 봄 다 가기 전에 봄 향기 물씬 머금은 산나물밥 한 그릇 맛봐야겠다. 
태백에 가면 참나물, 산미나리, 산도라지, 두릅, 잔대, 곤드레, 곰취, 고사리 등 산나물을 넣고 가마솥에서 밥을 짓는 산나물가마솥밥을 먹을 수 있다. 주문을 하면 작은 가마솥에 밥을 짓기 시작한다. 여러 나물 중 곰취는 태백의 특산물인 고랭지배추와 함께 특히 유명하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산나물가마솥밥을 빈 대접에 덜어 양념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누룽지가 있는 가마솥에 뜨거운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어 먹는다. 나물 향기 나는 숭늉이 왠지 옛날에 먹었다던 나물죽의 맛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밭식당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 033-552-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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