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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INTERVIEW] 지평주조 김기환 대표-100년 양조장 낡은 것은 없었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5.02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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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버틴 것의 가치는 각별하다. 1925년부터 한자리를 지킨 지평주조가 그러하다. 그러나 지평주조의 가치는 단지 오래됨에 있지 않다.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를 아는 김기환 대표 때문이다. 
 
김기환 대표(왼쪽에서 세번째)와 직원들
 
앳된 외모, 조심스러운 말투, 몇 차례 카메라 앞에 섰지만 촬영이 낯선 그는 지평주조의 4대 사장 김기환씨다. 그 이전에는 그의 아버지가, 그리고 그 이전에는 그의 할아버지가 지평주조에 있었다.
1925년 이종환씨가 설립한 양조장을 김기환 대표의 할아버지인 김교십 씨가 이어받았다. 3대가 이어온 가업은 어느덧 90년이라는 시간을 덧입었고, 지평주조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중 하나가 됐다. 김기환 대표가 그 바통을 이어받은 지 막 4년차.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는 그의 말 속에는 특유의 수줍음과 겸손이 배어 있다. 지평주조가 가진 역사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지평주조 앞에 선 김기환 대표
 
20대 김기환, 양조장 사장이 되기까지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하루의 일과가 지평막걸리 하나로 가득 채워졌다. 4년 전,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가족과 함께 양평으로 들어오게 된 시점부터다. 당시 그의 나이는 30살도 채 되지 않았다. 막걸리에 대해서도 거의 몰랐다. 막 전문교육기관에서 양조 교육을 받기 시작했지만, 양조장 운영은 별다른 교본도 없었다. 바닥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호기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가업을 잇겠다는 사명감과 막걸리 맛에 대한 믿음 하나로 뛰어들었으니 말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지평막걸리를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으니, 홍보만 잘하고 병만 좀 예쁘게 바꾸면 잘 팔릴 줄 알았죠. 도리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부딪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츰 배우게 됐죠.” 

첫 번째 시도는 전시관이었다. 홍보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김기환 대표는 양조장 한 편에 지평주조의 역사를 기록한 홍보 전시관을 만들었다. 근대 건축 양식을 고이 간직한 양조장은 그 자체로도 고풍스러웠고,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지휘소로 쓰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건물의 가치를 더했다. 발 맞춰 한정판 프리미엄 막걸리도 출시했다. 종전 60주년을 기념한 ‘자유를 위하여’다. 그러나 전략은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포장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내실을 다지는 것이 홍보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걸리를 파는 것과 양조장을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던 것이다. 
 
 발효 중인 항아리

온도유지를 위해 왕겨로 단열한다
 
 
문제는 유통이야!

막걸리는 ‘살아있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생막걸리’는 효모가 살아있어 온도가 올라가면 쉽게 시큼해지고 병이 터지기도 한다. 지평막걸리도 예외는 아니다. 김기환 대표는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재고를 두지 않고 주문량만 생산할 것, 품질관리에 투자할 것, 막걸리의 품질을 유지하지 못하는 업체와는 거래하지 않을 것 등이다. ‘유통’은 생막걸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았다. 업체와 밀고 당기는 시간이 필요했고, 직원들과 부딪힐 때도 있었다. 유연성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김기환 대표에게는 무엇보다 한결 같은 맛을 내놓는 것이 중요했다.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부담스러웠던 말이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조방법은 그대로여도 사람이 달라지면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행히 나아졌다는 얘기도 있고 예전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호불호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다만 저는 언제나 균일한 맛을 내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 직원들과 함께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작게나마 지평주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지평막걸리의 미래를 보고 함께 일하는 분들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막걸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원래부터 지평막걸리를 좋아하셔서 이곳에 일하러 오신 분들이죠.”
 
종국실에서 입국을 배양하는 모습
지평주조에서 생산하는 밀막걸리와 쌀막걸리
 
추억의 밀막걸리 부활하다

그렇다면 김기환 대표의 말대로 지평막걸리의 맛은 달라졌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현재 지평주조에서는 쌀 70%, 밀 30%의 쌀막걸리와 밀 100%의 밀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패키지는 몇 차례 바뀌었지만, 레시피는 그대로다. 물론, 일부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됐다. 그러나 여전히 종국실에서 직접 입국을 배양하고, 지하수를 끌어 물을 대고, 항아리로 1차 발효를 한다. 효율성의 측면에서 제조 방식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막걸리의 핵심이 되는 입국, 물, 주모만큼은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수익을 기대하지 말 것, 명성에 먹칠하지 말 것, 다른 어떤 것보다 술맛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는 지평주조의 신념이 그 바탕에 있었다.

“지평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은 아무리 더 좋은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딱 지금의 맛을 좋아합니다. 밀막걸리 같은 경우, 고급막걸리라고 할 수는 없죠. 양곡정책으로 인해 쌀막걸리 생산이 중지된 1960년대 즐겨 마시던 막걸리이니까요. 지평주조에서 다시 밀막걸리를 출시한 건 1998년이었습니다. 사실 밀막걸리를 찾는 수요는 점점 줄어듭니다.” 

“최근 막걸리 시장 전반이 쌀막걸리를 선호하기 때문이죠. 제가 처음 지평주조에 왔던 2010년 당시에는 대부분이 밀막걸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전세가 역전되어 쌀이 2/3, 밀이 1/3을 차지합니다.”

수요가 줄어도 밀막걸리 생산을 멈추지 않는 것은 100% 밀을 사용한 막걸리가 지평양조장의 개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밀막걸리를 통해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그 옛날 모습이 남아있는 양조장에서 마시는 막걸리가 더욱 맛깔날 터. “막걸리의 종류가 다양하잖아요. 청량하고 시원한 막걸리가 있으면 농후하고 걸쭉한 지평막걸리도 있는 거죠. 지평막걸리는 달기 때문에 여성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제가 처음 마셨을 때는 묵직하고 거칠다는 느낌을 받아 남성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했죠.”
 
새로 쓰는 지평의 맛

지평막걸리는 계속 변할 것이다. 재료도 레시피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옛날 쌀이 귀한 시절 마시던 밀막걸리의 맛은 변함없을 것이다. “처음엔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전통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제가 이어받은 순간, 그 역시 전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품의 맛과 질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개선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요. 중요한 건 맥을 이어 나가는 것이죠.”

김기환 대표는 지평주조의 얼굴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술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 밀을 쓴 밀막걸리를 만들어 볼 생각이 있다. 한때 출시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동동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막걸리가 되든, 동동주나 약주가 되든 간에 기존의 지평막걸리와는 차별화된 술을 내놓는단다. 그렇다면 분명 대량생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량으로 생산하는 프리미엄 술이 될 것이다. 규모의 확대는 여기서 그만. 누가 봐도 완성도 있는 술을 내놓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다. 아직 그가 가야 할 길이 저만큼 뻗어 있다는 뜻이다. 

내년이면 설립 90주년을 맞는다. 현재 지평주조는 근대문화유산 등록의 막바지 단계에 있다.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게 되면 잠시 접어둔 홍보 전시관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김 대표의 계획대로 지평주조가 좀더 대중들에게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 10년 남았다. 다사다난 끝에 훌쩍 100년 양조장이 우리 곁에 올 것이다. 
 
90년 역사를 간직한 지평주조 건물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수수보리 전은경(수수보리는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지평막걸리는 서울과 경기도 일대, 강원도 일부에서 판매한다. 서울의 전통주 바에서 대부분 취급하고 있으며 양평의 지평주조를 방문할 시, 맞은 편 판매점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지평주조 주소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 551-2
영업시간 오전 7시~오후 4시, 연중무휴 
문의 031-773-7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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