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Feature] 당신의 지구+知9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5.07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를 아십니까? 
아, 아뇨, 9를 아십니까?
트래비가 창간 9주년을 맞이했다고 드리는 질문은 아닙니다. 
‘구냥’ 궁금해서요. 
누군가는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답을 구하러 여행을 떠나고
또 누군가는 남들의 구라에 속아 길을 떠나기도 하니까요.
<트래비>는 지난 9년 동안 9樂을 찾아 세상을 바쁘게 떠돌다
9사일생의 순간들을 여러번 만나기도 했답니다.
9가 이토록 오묘한 숫자인 줄
혹시 아셨나해서요! 
 
정리 취재부 
 
●여행기자 9문9답
“여행기자는 어떻게 되나요?”

언제부터인가 여행기자라는 직업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가장 동경하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트래비>가 첫선을 보인 9년 전만 해도 국내에 여행잡지라고는 1~2개뿐이었는데 말입니다. 여행기자를 꿈꾸는 분들을 위해 직업으로서의 여행기자, 그 속내를 밝혀 보겠습니다. 
 
정리 천소현 기자

1. 여행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떻게 하면 여행기자나 여행작가가 될 수 있나요?
여행기자는 기자로 입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채를 통해 입사해서 출입처를 여행으로 배정받는 행운(?)을 노려 보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입니다. 이 외에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여행작가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첫 번째 그룹은 일간지나 월간지의 기자 혹은 사진가 출신들입니다. 매체 관련 일을 하면서 경력과 실력을 쌓아 프리랜서가 된 경우지요. 다른 한 부류는 책 출판을 통해 데뷔한 작가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얻어서 출판사의 ‘콜’을 받아 출판을 하게 된 경우가 많죠. 그러나 한 해에도 수백권의 여행에세이가 쏟아져 나와서 그 변별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2. 여행기자라고 하면 여행이 주 업무일 것 같은데, 여행 외적인 일은 어떤 것이 있나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쓰는 작가와는 달리 여행잡지의 기자는 시의적절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다양한 읽을 거리가 있는 한 권의 잡지를 발간해야 합니다. 따라서 직접 여행을 가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뿐 아니라 무수한 부대업무가 있습니다. 인터뷰나 장소 혹은 이벤트 소개를 해야 할 때도 많고, 외부 필자들에게 원고를 발주하고 에디팅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홍보대행사, 여행업계 관계자, 여행관련 화제의 인물, 유명인사 등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야 합니다. 매체에 노출되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와 알고자 하는 독자의 욕구 사이에 현명한 중개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선이 날카로워야 하고 판단은 빨라야 합니다. 
 
3. 취재 때문에 떠나는 잦은 해외출장이 힘들지는 않나요?
‘일년에 반쯤은 해외에 나가 있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아무리 여행기자라고 해도 회사에 매인 몸이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트래비>의 경우 평균 두 달에 한번쯤 해외 출장을 가고 그 사이에 국내 출장을 가게 됩니다. 시차 적응이나 무거운 카메라 가방 등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고통은 ‘여행의 재미’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해외 취재의 경우 적게는 4~6명, 많게는 10~15명이 동행하기 때문에 정해진 일정에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고, 자유시간은 극히 드뭅니다. 실제로 여행이 좋아서 여행기자가 된 사람들 중에는 기자를 포기하고 다시 여행인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를 찾으려는 긍정적인 태도가 있어야 장수할 수 있습니다. 
 
4. 여행기자나 작가의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요? 
신문이나 잡지 등 매체에 속해 있으면 당연히 월급을 받고, 프리랜서의 경우 사진과 글에 대한 원고료를 받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프리랜서의 경우 수입에 개인차가 큽니다. 1년 동안 억대의 원고료를 받았다는 여행작가가 있는 반면, 한 달 수입이 100만원도 안 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여행작가는 여행과 마찬가지로 경기 부침에 민감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다만, 잘나가는 가이드북 1~2권만 만들어 놓으면 그 인세만으로 웬만한 월급쟁이 연봉이 부럽지 않다는 것이 출판사 담당자의 말입니다. 여행에세이의 경우 3쇄가 넘어야 ‘수익’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초보 여행작가의 경우 여행관련 매체에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행전문 매체는 이미 자체적으로 확보한 여행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독특한 여행지나 최고 수준의 사진이 아닌 이상 여행 원고를 사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사보나 취미 잡지 등 여행 외 분야의 매체가 오히려 문이 넓습니다. 
 
5. 여행기자를 하면서 생긴 직업병이랄까, 나만의 버릇이 있다면? 
여행잡지에 기고하는 한 사진가는 사진을 꼭 가로 앵글로 한 번, 세로 앵글로 한 번씩 찍게 된다고 하더군요. 혹시 펼침페이지로 사용될 수도 있으니 촬영할 때 반드시 제목이 들어갈 여백을 고려해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고요. 카메라가 없으면 불안해지거나 무기력해지는 것도 직업병이 될 수 있겠네요. 우연히 들른 식당이라도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면 반드시 메뉴판 사진을 찍어두고 명함을 챙기는 것도 직업 때문에 생긴 병입니다. 
 
6. 성공한 여행기자란 어떤 모습일까요?
글쎄요. 아직 국내에 성공의 표준이 될 만한 여행기자가 없으니 답을 찾아 나가야 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소속회사가 있는 이상 여행기자든 혹은 무슨 분야의 기자든 직장인일 뿐입니다. 활동 범위에 제약이 있다는 말이죠. 반면 프리랜서 여행작가의 경우 최근 2~3년 사이에 여행작가 되기, 혹은 여행사진이나 글쓰기에 대한 강의가 많이 개설되면서 원고료보다 많은 강의료를 벌어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방송 출연의 경우 출연료는 약소하지만 이름을 알리기에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인도방랑>을 쓴 후지와라 신야,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의 빌 브라이슨처럼 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에 손이 가는 그런 작가가 된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추측컨대) 최근 20년 동안 출판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여행에세이는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이병률의 <끌림>일 텐데, 실상 그들 중 누구도 전업 여행작가가 아닙니다. 
 
7. 취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전부 회사에서 지원하나요?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면 그렇습니다. 항공이나 숙박 등 큰 비용이 드는 부분은 협찬사를 구해서 갈 때도 많고, 기획 취재의 경우 회사에서 출장비를 지출합니다. 프리랜서의 경우 자비로 여행을 다녀온 후 콘텐츠 판매를 통해 수입을 얻는 경우도 있고, 클라이언트가 기획해서 요청하는 취재의 경우 여행경비와 별도의 원고료를 받기도 합니다. 해외에서 발행하는 여행전문 매체의 경우 취재에 대해 협찬이나 대가를 전혀 받지 않는다고 밝히는 경우가 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취재경비 전부를 자체적으로 부담하는 해외여행잡지가 없습니다. 대신 광고성이 짙은 애드버토리얼이나 협찬 기사의 경우 한눈에도 그 성격을 알 수 있도록 지면을 기획합니다. 여행가이드북 전문 작가들의 경우 대부분 자비로 취재를 하고 출판 인세를 받습니다. 계약이 먼저 이뤄질 경우 선先인세를 받아서 취재경비로 쓰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도 작가의 인세입니다. 
 
8. 취재했던 곳 중에 제일 좋았던 곳 BEST 3
이 질문은 여행기자들에게 가장 곤란한 질문 BEST 1입니다. 흠, 지금까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맛있는 3곳을 제보해 주시는 분들께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물론 그 대답에 실망하셔도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참고로 경력 20년의 모 여행기자 선배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제주도라네요. 
 
9. ‘이 맛에 여행기자 한다’ 싶은 것이 있다면?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여행기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직업에 대해 불평할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여행기자는 어려운 직업입니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해도 세상에는 미지의 영역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제 글과 사진에 마음이 동해서 직접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장소들을 재조명할 기회가 있을 때 기자로서 희열을 느끼지만, 사실 더 중요한 ‘맛’은 스스로 요리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취재를 할 때마다 스스로 세상에 대해 참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데, 그 깨달음의 기회가 남보다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 그것이 이 직업의 진미입니다. 
 
▶넌 이제 여행자가 아냐! 
첫 출장은 홍콩이었다. 일반적인 관광지가 아니라 홍콩공항의 캐세이패시픽항공 라운지를 취재하며 이제 정말 여행기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전의 여행에서 숱하게 찍었던 나를 위한 기념사진이 기자에겐 정말 한가한 일이라는 사실과 함께. 어쨌든 샤워장 구석에 잔뜩 웅크려 간신히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맙소사! 거울 속에 룸 전체를 찍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첫 출장 유일의 나를 위한 기념사진이 된 셀프 포트레이트. ‘너는 더 이상 한가한 여행자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신지훈 기자 
 
몰라서였을까, 일부러 그랬을까?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말리엔보르 궁전, 덴마크 왕실의 공간이다. 정오 무렵에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는데 아쉽게도 놓쳤다. 그래서 근위병을 더 열심히 계속 찍어댔다. 근위병 광팬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지, 그린란드에서 왔다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대뜸 다가와 한참 수다를 떨더니 기념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호의로 알고 선뜻 카메라를 건넸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이랬다. 다룰 줄 몰라서였는지 뭔가 의도를 담아서였는지….                                                   
김선주 기자 
 
짐이라도 괜찮아 
독자의 프랑스 남부 기차여행에 동행했다. 파리에서 툴루즈로 테제베TGV를 타고 이동했는데, 기사의 콘셉트 상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독자’의 사진이 필요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던 
나는 원활한 사진 촬영을 위해 독자의 짐을 하나둘 맡게 됐다. 처음엔 코트와 점퍼만 벗어두고 시작했으나 옆에 두었던 가방, 테이블 위에 있던 휴대폰과 과자까지 모두 내 몸 위로 얹혀졌다. 비록 짐 더미에 파묻혀 있었을지언정 한 장의 사진을 얻었으니, 나는 괜찮다!                                      
손고은 기자 
 
인간카메라거치대
“자 무거운 짐은 사물함에 넣고 출발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선배들이 하나둘씩 내게 카메라를 건네기 시작했다. 짐 정리를 하는 동안 잠깐만 들고 있어 달라는 것. 졸지에 인간 카메라 거치대가 되어 버린 저 사진의 가장 큰 비밀은 정작 내 카메라가 하나도 없다는 것. 먼 노르웨이까지 무거운 장비를 챙겨 갔으나 배터리 충전기의 고장으로 내 카메라는 며칠 만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그런 나를 구해 준 것은 한 선배가 예비용으로 가져온 소위 ‘똑딱이 카메라’ 였으니, 내 목에 걸려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그의 짐을 들어 주지 않을 수 있었으랴. “네네, 카메라 들어 드립니다. 주세요, 주세요!”              
천소현 기자 
 
북한산에 나타난 개미허리 인어
산악회 출범식이 있던 날, 플랜카드가 걸린 둔덕에 오르는 열정을 보였던 것은 ‘첫 발짝을 내딛는 날이니만큼 거창한 사진을 찍고 싶다’는 패기 넘치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내 키가 작아서 똑같은 높이에서는 도저히 각도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요, 똑딱이 카메라여서 화각 조절이 쉽지 않았던, 순전히 ‘필요’ 때문이었다. 그러나 힐끔힐끔 이어지는 사람들의 시선, 높은 자리에 서 있다 보니 마치 내가 주인공이 돼 박수를 받고 있는 것 같은 부담감까지. 결국 민망함에 서둘러 내려왔더랬다. 일행이 찍어 준 내 사진에는 팍 찌그러트린 미간에 그때의 부담감이 녹아 있었다. 그런데 나 이렇게 허리가 가늘었었나?  
차민경 기자
 
흔들거리는 건 너니? 나니?
철창에 갇힌 것이 아니다. 다리 위에서 본 중국 귀주성 마령하 협곡의 경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산과 산을 이어 주는 구름다리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흔들다리만 만나면 도지는 나의 고소공포증. 안 그래도 출렁이는 다리 위에서 ‘내 다리’도 쉴 새 없이 후들거리니 두려움은 배가 될 수밖에. 그래도 이 좋은 경치를 나만 보면 여행기자가 아니라는 사명감에 카메라를 들고 다리 위로 올라갔다. 당당한 다른 기자들과 달리 저 웅숭그린 자세를 보라. 생각할수록 굴욕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사진을 얻었으니까!                    
양이슬 기자
 
순록은 엉덩이도 예뻤다 
정말 신기했다. 크리스마스 특집 만화영화에서나 보던 ‘루돌프’를 실제로 보다니. 취재차 갔던 노르웨이 알타Alta의 한 행사장 입구에서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던 순록들. 끔뻑끔뻑 낮잠을 자다가도 사람들이 다가가면 벌떡 일어나 사진 모델이 되어 주던 순하디 순한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기념사진을 줄줄이 찍어 주었는데, 정작 내가 사진을 찍으러 다가가니 녀석들, 쓰윽 엉덩이를 내민다. 난 네 엉덩이 말고 얼굴이랑 사진 찍고 싶다고! 순록의 마음을 돌려 제대로 된 기념사진을 찍을 틈이란 없는 바쁜 일정에 그냥 엉덩이에 만족할 수밖에. 근데, 녀석들 엉덩이도 참 예쁘다.            
고서령 기자 
 
 
●여행지 구라
누가, 왜 그토록 극찬한 것인가
 
꼭 가보라 하여 가 보았건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전 세계를 누비는 <트래비> 기자들의 기대, 그 이하의 여행지. 
*본 코너는 기자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임을 밝힙니다. 
* ‘거짓말’ 혹은 ‘허황된 이야기’를 속된 표현으로 ‘구라’라고 합니다. 
정리 손고은 기자
 
우유빛깔 온천, 입욕제 덕택이었다고요?
일본의 온천 앞에 서면 설렌다. 역사 깊고 이색적일수록 더 그렇다. 10년 전쯤 들렀던 나가노현의 유명 온천마을 시라호네 온천도 그중 하나였다. 백골, 그러니까 하얀 뼈라는 뜻인데 그 말마따나 온천수는 진한 우윳빛을 띠었다. 산중 깊숙이 들어앉은 고즈넉한 자태 역시 마음에 쏙 들었다. 입욕하면 진한 우유빛깔 온천수가 알몸을 가려줬다. 기대했던 만큼 만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당함에 기가 찼다. 그 탁할 정도의 우윳빛은 가짜였다. 색을 더하기 위해 입욕제를 푸는 모습이 언론에 잡혔단다. 이 무렵 일본 열도는 가짜 온천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금이야 뭐 아무것도 섞지 않겠지만, 과연 그 뼛가루를 탄 듯 새하얗던 빛깔도 그대로일지 궁금하다.     
김선주 기자
 

동화 속 인어공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덴마크는 ‘근대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을 배출한 나라다. 수도인 코펜하겐에서 그의 흔적을 살피려면 우선 뉘하운을 찾아야 한다. 운하 좌우로 형형색색의 목조건물들이 늘어선 지역인데, 필명을 떨치기 전 안데르센은 이곳에 여러 해 동안 머물며 창작에 몰두했다고 한다. 시청사 바로 옆 안데르센 거리에는 그의 동상이 조성돼 있는데, 안데르센의 시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공원인 티볼리 공원을 향하고 있다. 도시 중심가에서 동북쪽으로 살짝 벗어난 해안가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도 ‘안데르센 순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하지만 바위에 덩그러니 놓인 왜소한 청동상은 허탈한 느낌이 들 만큼 볼품이 없다. 수차례에 걸쳐 파손과 복원의 과정을 거쳐서인지 인어공주의 눈빛에는 우수가 서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Travie writer 노중훈
 

베트남 사파에서 순수를 만난다고? 
어느 신문사에서 사파로 사진여행을 떠난다며 이런 광고를 내걸었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이라 썼다. 나도 사파에 도착하기 전엔 안개에 휩싸인 고요하고 아늑한 산간벽지를 상상했다. 정작 사파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하다. 베트남 관광객 또한 바글바글하다.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버는 고산족 또한 바글바글하다. 사파는 지형학적으로 오지다. 하지만 패기만만한 전 세계 관광객은 오지를 찾아 밀려든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사파 거리에선 어디서나 와이파이가 잡힌다. 바글바글한 모든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길가에 내놓은 ‘파리 스타일’ 메뉴판엔 강남에서나 볼 법한 코스 메뉴도 많다. 프랑스 남자가 주인인, 세련미 철철 넘치는 카페에서 하우스 와인 한 잔, 샐러드와 스테이크를 먹고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며 생각했다. 여기는 어디일까?
Travie writer 박준 
 
사랑은 아무데서나 하나 
영화를 보긴 봤는데 그 영화 어디쯤에서 나왔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촬영지로 유명하다는 발리의 빠당빠당Padang Padang 비치 말이다. 때문에 발리를 찾는 여행자들이 한 번은 꼭 들른다는데. 왜죠? 영화를 뒤졌다. 왜 몰랐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진 남녀 주인공이 수영을 했던 바다다. 그중 절반은 수중 씬. 촬영장소도 해변을 살짝 비켜난 곳이었고, 촬영 각도도 바다 쪽 상공에서 찍었더라. 해변에서 바라보는 풍경과는 다를 수밖에. 실제 빠당빠당 비치는 절벽 아래 엄청 자그마한 해변이다. 사랑하는 연인 둘이 발가벗고 사랑을 나누기엔 참으로 로맨틱하겠지만 그 손바닥만한 해변에 콩나물시루마냥 북적이는 여행자들 틈에서 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러니저러니 다 떠나서 역시 여행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누구나 사랑에 빠진다는 발리에선.
Travie writer 서진영 
 

서울 유감
멀리 갈 것도 없다. 청계천. 하천은 그렇다 치고 지금도 청계광장을 지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2006년에 세워진 복원 1주년 기념탑 ‘스프링Spring’이다. 당시 나는 그래도 팝아트의 거장 ‘클래스 올덴버그’라는 이름을 믿었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샘솟는 청계천과 문화도시 서울의 발전을 상징화한 상징물이 저것이란다. ‘의외성. 그렇지. 햄버거, 톱, 담배꽁초, 그의 작품은 늘 의외였지.’ 그는 서울에도 사물의 이질감을 선사하고 싶었던 것인가. 나는 문화도시는커녕 그냥 명동의 긴 아이스크림이 생각날 뿐이다. 쓰나미 같은 서울시청 신청사와 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으련다. 건축의 윤리성이나 인간과 역사에 대한 성찰 따위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가끔 문화와 예술을 담은 타국의 도시를 대할 때면 그저 세계 속의 서울이 좀 많이 민망하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다만 이질적일 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Travie writer 이세미 
 
카지노는 꿈같지 않았다 
미국 ‘동부의 라스베이거스’라 불리는 애틀랜틱 시티. 남자들에게는 도박의 천국, 여자들에게는 쇼핑의 낙원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지금도 전 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섹스앤더시티>의 여주인공들도 이곳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드라마 속 카지노에는 섹시한 드레스를 입은 쭉쭉빵빵한 여성들과 화려한 공연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일단 낮에는 소문대로 대형 아웃렛에서 쇼핑을 즐겼다. 그러나 카지노는 달랐다.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이 대다수였고,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슬롯머신을 돌리는 이들은 동네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아저씨들과 다를 바 없었다. 손바닥만한 블랙 미니 드레스에 높은 힐을 신은 사람은 나와 친구뿐. 카지노에 간다며 드레스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 것이 민망스러운 밤이었다. 
손고은 기자 
 

허무했던 잉카인의 그림 
나스카에는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거대한 지상 그림이 있다. 그림이 너무나 커서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봐야만 형체를 알아볼 수 있다. 너무 기대를 했던 것일까. 잉카인이 만들었는지 우주인이 그렸는지 알 수 없다는 나스카의 그림을 보는 마음은 오리무중이었다. 거대한 크기가 놀랍기는 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콘도르를 타고 잉카의 수수께끼 위를 비행하는 기분을 기대했는데, 뭐랄까 좀 허무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이런 여행지 주변에는 느긋하게 유적을 즐길 수 있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기 마련인데, 나스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달리고 달려서 나스카 도착, 도착해서 경비행기로 30~40분 그림을 보고 끝. 그렇게 나스카 여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사람 냄새도 있고 이런저런 흔적이 있는 여행지가 내 취향이구나라는 발견을 할 수 있는 괜찮은 계기였다. 
Travie writer 채지형
 
●여행9樂
어디로든 떠나기만 하면 여행이란 생각을 버려! 

여행지를 가슴 속에 뜨겁게 각인하는 9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더불어 트래비 과월호 기사를 찾아 보는 즐거움도 함께 누리시길.
정리 차민경 기자
 

1.쇼핑은 우리의 운명
무조건 아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보다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지르는 것이 능사. 면세보다 똑똑하게 쇼핑해 보자. 
2014. 02 ‘지름신 내린 괌에서 쇼핑하고 휴양하고’
2013. 08 ‘Hong Kong & Macau Hunters’
 
2.가장 원초적인 즐거움, 미식
‘잘 먹는 것’이 중요한 시대, 왜 여행지에서 패스트푸드를 찾으시나요? 아직 맛보지 못한 무궁무진한 미식들! 그곳이 아니면 다신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 우선 즐겨라. 
2013. 11 ‘식탐녀들의 방콕 정복기’
2012. 07 ‘MACAU CUISINE-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3.칙칙폭폭 기찻길 따라 삼만리
여러 국가가 맞닿아 있는 유럽이나 남미 지역은 기차여행의 묘미가 쏠쏠하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풍경을 즐기고, 기차에서 내려서 여행을 즐기고. 대중교통이 잘 발달된 지역이라면 버스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다. 
2013. 12 ‘Art & Design 유럽 기차여행’
2010. 08 ‘스페인 & 포르투갈, 두 나라 기차여행 이야기’
 
4.스카이다이빙, 해봤니?
등허리에 식은땀 한 방울 스윽 흐르는 짜릿한 긴장감, 하늘 위로 뛰어내릴 때의 아찔함. 싱거운 삶에 간간한 소금이 되어 줄 액티비티도 놓쳐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이내믹하고 흥분되는 일들이 가득하다. 
2012. 09 ‘뉴질랜드 퀸스타운, 거친 자연을 원초적으로 즐기는 법’
 
5.윤리적인 여행자가 되자, 에코투어
무작정 소비하는 여행은 이제 그만. 여행자의 이름으로 공존을 얘기해 보는 건 어떨까. 자연과 그곳의 원주민들을 생각하는 여행은 생각보다 쉽고, 보람차다. 
2011. 02 ‘사라왁으로 떠나는 에코투어 -아시아의 아마존을 만나다’
 
6.호텔도 여행의 목적이 된다
잠만 자는 호텔, 휴양하는 호텔, 디자인이 예쁜 호텔. 여행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호텔이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유명한 호텔 체인이나, 부티크 호텔, 현지인의 아파트 등등 취향에 맞는 곳을 골라 떠나 보는 건 어떨까? 
2013. 08 ‘호텔 따라 떠나는 그리스’
2013. 07 ‘괴짜 예술가의 방에 하룻밤 머물다’
 
7.크루즈 타고 지구 한 바퀴
비행기는 많이 타봤지만, 기차도 많이 타봤지만 크루즈는 아직 낯선 것이 사실이다. ‘비싸고 기간이 길다’는 인식 때문이지만 이제 그런 편견은 지워도 좋다. 일주일, 3박4일, 심지어 하루 일정도 가능하다. 가격도 물론 합리적이고. 
2014. 02 ‘두근두근 아시아 크루즈 정복기’
2012. 01 ‘산야-다낭 스타크루즈-여행의 로망 크루즈는 멀지 않다’
 
8.축제는 같이 즐겨야 제 맛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축제들, 먼 발치서 바라만 보지 말고 뛰어들어 보자. 서로 토마토를 던지고 물을 뿌리며 노는 데 필요한 것은 그저 ‘즐거움’이란 교감뿐. 올해는 브라질 월드컵을 공략해 보는 건 어떨까? 
2013. 06 ‘송끄란, 아주 투명한 축복’
2011. 02 ‘야구여행-겨울에 뭐해? 스프링캠프 참관 가야지!’
 
9.사진으론 모자라, 그림 그리기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줄기차게 찍었던 사진들, 돌아와서는 정리하기도 벅차다. 그럴 땐 과감히 사진기를 버리고 펜을 잡아 보자. 한곳에 눌러앉아 오래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던 시간마저 풍경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다. 
2013. 10 ‘시애틀에 대한 두 가지 시선’
 
 
●숫자여행 9
미완의 무한, 그 불변의 진리
 
한자릿수 중에서 가장 높은 수, 그래서 구절양장·구우일모·구곡간장·구사일생…. 10에는 이르지 못한 미완과 불안의 수, 그래서 아홉수·구미호·9번 교향곡 징크스…. 9의 배수의 각 숫자를 더하면 다시 9의 배수, 그래서 불변과 진리의 수. 여행에서는 무엇인가!
정리 김선주 기자   

▶싱가포르, 광저우, 나고야, 웨이하이, 도쿄, 홍콩, 창사…. 
오전 9시, 9년 연속 공항서비스 1위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들이 향하는 곳. 이 시각, 부산발 KTX121편은 서울역을 출발하고 KTX118편은 부산에서 서울로 향한다. 과연 어디쯤에서 서로 스쳐 지나갈까?

돌계단
영화 <아바타>의 촬영지 중국 장자제, 그곳 톈먼산(천문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999개의 돌계단을 밟아야 한다. 랴오닝성(요령성)에 있는 고구려 산성 오녀산성도 999계단이 안내한다. 999계단이 부담스럽다면 통영 서피랑 99계단을 오를 일!
 
은하항공999
항공사와 항공편에도 여러 형태의 이름이 있다. 이른바 코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부여하는 3자리 항공사 숫자코드Numeric Code의 마지막 주인공은 에어차이나. 999로 통한다. 대한항공은 180, 아시아나항공은 988.
 
캄보디아 & 인도네시아 
2013년 우리 국민의 9번째 인기 해외여행지는 캄보디아. 43만5,009명이 여행했다. 우리나라를 여행한 외국인 중 9위로 많았던 외국인은 인도네시아인. 18만9,189명이 우리나라를 여행했다.
 
1100
도로법 적용을 받는 일반국도는 총 99개. 99번 국도는 제주 서귀포시와 제주시를 잇는다. 한라산 1100m 고지를 관통한다 해서 1100도로로 불린다. 제주특별자치도가 탄생하면서 99번 국도는 지방도 1139호선으로 바뀌었다.
 
맛집
서대회무침과 금풍생이(군평선이) 구이는 ‘여수 10미’의 대표주자들. 이 음식 잘하기로 유명한 여수의 맛집 중 하나가 구백식당. 왜 구백이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전화번호가 그려! 이 집 번호는 061-662-0900. 울릉도 99식당도 그럴까? 
 
9개국 29개 도시 
2014년은 한국 저비용항공사LCC 출범 9주년, 국제선 취항 5주년의 해. 국제선 취항 만 5년 시점이었던 3월20일 현재, 제주항공과 진에어, 에어부산,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5개 LCC는 9개국 29개 도시를 연결하는 규모로 커졌다. 
관광주간
5월과 9월에 ‘관광주간’이 생긴다. 국내여행을 촉진하고 휴가를 분산시키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나서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5월 관광주간은 5월1일부터 11일까지, 9월 관광주간은 9월25일부터 10월5일까지다. 해외여행에 더 관심이 많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9월9일 
올해 양력 9월9일은 음력 8월16일, 추석 이튿날 휴일이다. 다음날 9월10일은 첫 대체휴일제 적용일. 고로 9월6일 토요일부터 9월10일 수요일까지 5일 동안 추석연휴다. 올해 음력 9월9일은 양력 10월2일 그리고 11월1일 이틀. 9월이 윤달이어서다. 윤달에는 결혼을 기피하니 신혼여행 커플이 눈꼴사나운 싱글들에게는 여행의 적기다. 
 
 
●구사일생
내 여행의 아찔한 그 순간
 
오래오래 추억할 여행의 조건? 혼이 쏙 빠지도록 고생한 사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도록 황당한 사건 하나쯤은 있어야지! 여행 중 겪는 온갖 아찔한 순간들. 웃지 못 할, 그러나 떠올릴 때마다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일화들.
정리 고서령 기자

▶“그 카메라 없으면 전 죽어요”    
고서령 기자
지난 겨울, 괌 출장이 끝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고맙게도 공항에 마중 나온 친구의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괌에서 했던 스노클링이며 쇼핑한 물건이며 먹은 요리를 자랑하며 서울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허전했다. 이럴 수가! 카메라가 없었다. 이번 출장의 모든 기록이 담긴, 수백만원짜리 그 카메라 말이다! 인천공항 벤치에 카메라 가방을 덩그러니 올려둔 채 룰루랄라 서울까지 온 것이었다. 당장 그 사진들이 없으면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회사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급히 공항 유실물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곳은 콜센터이기 때문에 물건을 찾아 줄 수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신 공항경찰 한 분의 전화번호를 알려줄 테니 그에게 부탁해 보라고 했다. 그 공항경찰에게 “그 카메라 없으면 전 죽어요(울먹울먹)”라며 빌다시피 부탁을 해 놓고 인천공항으로 차를 돌렸다. 10여 분 후 걸려온 전화. “공항 벤치에 카메라 가방 같은 건 없던데요.” 
나는 한 번만 더 자세히 찾아봐 달라고, 지금 공항에 가고 있으니 CCTV라도 확인하게 해 달라고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 ‘안내데스크에서 보관하고 있더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난 극적으로 카메라를 되찾았지만, 공연히 날 마중 나왔던 친구는 그날 서울-인천 사이 고속도로를 4시간 넘게 달리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얼마나 미안했던지…. 그때부터 카메라는 반드시 몸에 장착!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다.
 

▶다 똑같잖아?                
조은정 여행작가
‘신혼여행의 메카’ 몰디브, 그곳을 혼자 여행하던 중이었다. 쌍쌍이 스노클링을 즐기는 신혼부부들 속에 혼자인 나를 본 한 원주민이 스노클링 안내를 자청했다. 원주민과 나는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이동했다. 
몰디브의 바다는 수면 위에선 얕아 보이지만 실제론 매우 깊은 곳이 많다. 배가 멈춘 곳 역시 수심이 아주 깊은 지역이었다. 그런데 그 원주민이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나를 발을 디디면 턱까지 물이 올라오는 바위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발을 헛디디면 깊은 물로 풍덩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기가 막힌 건 그 다음. 원주민도 그 바위로 내려오더니 갑자기 내 몸을 더듬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부터 성추행하려는 목적으로 데려가 꼼짝 못할 곳에 세워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몹시 화가 난 나는 그 원주민에게 “뭐하는 짓이냐. 너를 경찰에 고발할 거다. 당장 배로 올라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원주민이 만행을 멈췄고,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안고 ‘내가 섬에 도착하는 순간, 너는 철창행이다’라고 중얼거리며 섬으로 돌아갔다.
가까스로 섬에 도착해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할 말을 잃었다. 거기에 똑같이 생긴 까만 피부의 원주민이 열 명도 넘게 있었던 거다. 그중 나를 성추행 한 사람이 누구인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중 하나를 집는다고 해도 ‘나 아닌데?’ 하고 발뺌하면 그만일 정도였다.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해 고발은 할 수 없었지만, 무사히 돌아온 것만 해도 참 다행이었다.
 
▶심야의 엘리베이터                    
천소현 기자
터키의 아마시아라는 곳을 여행할 때였다. 밤에는 위험하니 절대로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라는 인솔 책임자의 엄중한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마을 광장에서 벌어진 페스티벌과 멋진 야경에 눈이 돌아가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말았다. 일행 1명과 함께 부랴부랴 호텔로 돌아가니 프론트데스크 직원마저 잠자리에 들었는지 어둑어둑한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호텔이네’라고 중얼거리며 올라탄 엘리베이터. 그런데 승강기가 갑자기 ‘덜컹’ 소리와 함께 멈춰 버리고 말았다. 비상버튼을 누르며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던 여유로움은 잠시뿐. 아무리 벨을 눌러도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심야의 엘리베이터 안에는 정적만 넘치고, 휴대폰이 있었지만 전화할 번호가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목이 터져라 ‘Help me’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목소리를 더 커지게 했지만 돌아오는 적막도 더 크게 느껴질 뿐. 그때 갑자기 일행이 가방을 뒤적이더니 명함 한 장을 찾아냈다. 오~, 맙소사! 얼마나 다행이던지.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기에 벌떡 일어난 인솔 책임자가 곧 호텔 직원 두어 명과 함께 달려왔고, 이내 구출작전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막대가 문틈으로 쑥 들어오고 어렵사리 열린 문 밖으로 보니 엘리베이터는 2층과 3층 사이에 멈춰선 상태였다. 그 뒤로 나는 해외에 나갈 때 두 가지를 꼭 챙긴다. 머무는 호텔 전화번호와 일행들의 휴대폰 번호 그리고 어딜 가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잘 해야 한다는 교훈도 함께. 
 
오, 알라신이시여          
소싯적 여행깨나 다닌 B씨
10년도 더 전, 중동 여행 중 있었던 일이다. 요르단 암만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버스 탑승을 앞두고 있었다.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 이동이었다. 버스를 타기 전 너무 배가 고팠는데, 마침 역 근처에서 ‘팔라펠(병아리콩으로 만든 경단 튀김)’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 그때는 이슬람교의 금식수행이 행해지는 ‘라마단’ 기간. 있을 때 먹어 두지 않으면 언제 또 음식을 접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 뱃속이 꿀렁꿀렁하고 부글부글한, 익숙하고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뿔싸, 장염증상이었다. 그 버스는 4시간에 한 번씩 휴게소에 서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떡하지? 당장 내려야 하나?’ 하지만 터키에서 타야 할 비행기가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내릴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사이, 어느새 버스는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뱃속의 요동은 갈수록 심해졌다. 팔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가까스로 2시간을 버텨 냈을 때였다. 웬걸? 아직 4시간이 지나려면 한참이 남았는데 갑자기 버스가 휴게소에 서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라마단 기간엔 반드시 정해진 정차 장소와 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그 버스기사는 매 2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주었고, 그때마다 나는 화장실로 전력질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금식수행 중인 탑승자들이 물로 목이라도 축일 수 있게 하려는 버스기사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주 정차한 탓에 예정 시간보다 7시간이나 더 걸렸음에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장장 30시간의 사투 끝에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 나의 몸엔 조금의 수분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만약 라마단 기간이 아니었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Thanks 알라신!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