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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 TRAVELLER] 사막을 달리는 남자- 런엑스런Run X Run 유지성 대표

  • Editor. 손고은
  • 입력 2014.05.07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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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뛰다가 지치면 걸었고, 걷다가 지치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에게 사막은 영혼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2014년 요르단 사하라 레이스에 참가한 유지성 대표
2001년 사하라 사막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스물다섯 번 오지를 달린 유지성 대표는 대한민국 오지레이서 1호다
 
운동을 싫어하는 남자의 용감한 도전 

“저는 운동을 싫어해요.” 인터뷰를 위해 녹음기의 ‘ON’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가 내뱉은 첫 마디다. 알기로는 대한민국 오지레이서 1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남자인데 운동을 싫어한다니. 잘못 들은 건가? 귀를 의심했다. “몸무게가 97kg까지 나갔어요. 물론 대회 나갈 때는 90kg까지 만들었죠. 하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운동신경도 없고 운동을 싫어하는데 유일하게 ‘달리기’만큼은 좋아한다고. ‘운동’과 ‘달리기’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는 체력과 지구력이 받쳐 준다면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달리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달리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외국에서 명함 한 장 내밀면 알아주는 오지 마라톤 대회 한국사무소 ‘런엑스런Run X Run’의 대표지만, 건축을 전공한 그는 건축회사에서 20대를 보냈다. 예전부터 낙타를 타고 사막 여행을 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잠깐의 체험이라면 몰라도 현실적으로 낙타와 함께 떠나는 긴 여행은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리비아 TV에서 사막을 뛰는 사람들을 보게 된 것. ‘저거라면 낙타를 타고 여행하는 대신 해볼 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2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사하라 사막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는 정보가 없었던 터라 발품 팔아 주최측에 연락해 이것저것 알아보고 떠났지만 그는 아무래도 초짜였다.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몰라 몸이 고생깨나 했다고. 보통 일주일 정도를 걷고 뛰는데, 6일째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단다. 발에는 300개가 넘는 물집이 잡혔다 터졌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으며 나중에는 진통제도 소용이 없어 울면서 걸었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10km 구간을 남겨두고 해가 어둑어둑해지는 그때,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는 그. “남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갔다면 못 했을 거에요. 하지만 자발적으로 해서인지 스스로가 대견스럽고 즐거움이 솟아올랐습니다. 완주를 하고 나니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살아 있는 신선한 자유를 느꼈습니다. 저에게 사막은 영혼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이었죠.”
 
지난 3월20일 레이싱 더 플래닛의 스태프 사만다 펜셔(왼쪽)와 리타 한니넨(오른쪽)이 한국인 참가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오지 마라톤, 어렵지 않아요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이렇게 4곳을 완주하면 ‘그랜드 슬램’을 획득하는데, 그는 그랜드 슬램을 2번 달성했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대회에 참여해 지금까지 무려 스물다섯 번 오지를 달렸다. “한번 다녀오고 나니 이렇게 좋은 곳을 나만 알고 있기가 안타까운 거죠. ‘에라, 모르겠다. 내가 나서 보자.’ 생각하면서 홈페이지를 오픈했어요. 정보를 모아 올리고 홍보했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모이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라고요.” 예전부터 남들과는 다른 ‘재미있는’ 삶을 사는 것을 추구했다는 그는 사막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어려운 도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대회에 나가 보니 생각보다 해볼 만한 일이었다는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사하라 사막을 달린 것은 2001년, 한국인으로서는 그가 유일했다. 그러나 다음 대회에서는 무려 스물네 명의 한국인들과 함께 달렸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이었다. 13년이 지난 현재까지 대회에 참여한 한국인의 수는 약 300명이다. 한번에 2,000~4,000달러, 남극의 경우에는 2만 달러부터 시작하는 참가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인원이다. 유지성 대표는 오지 마라톤을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고 소개하기보다는 재밌고 친근하게 알리는 데에 초점을 둔다. 실제 대회에서 찍은 사진으로 티저Teaser 영상을 만들어 SNS에 소개하고 국내에서 짧은 레이스 코스를 만들어 흥미를 가진 이들과 종종 모임을 갖는다. 영상을 접한 이들의 첫 번째 반응은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지만, 한국 사람이 완주한 것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해볼까?’라는 마음에 슬그머니 관심을 갖는다고. 그렇게 ‘유지성 영역’에 들어온 이들 중에는 70대의 어르신도 있었고, 사막의 매력에 빠져 재도전하는 이들도 여럿이었으니 그의 마음이 통했음이 틀림없다. 
 
1 유지성 대표의 세계 최초 사막레이스 그랜드슬램 2회 달성 모습  2, 3 2009년 이집트 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참가자들
 
 
마라톤 오타쿠, 그는 또 달린다

패키지여행부터 자유여행, 배낭여행, 캠핑, 오로라 투어 등 다양한 형태의 여행이 일반화된 것처럼 언젠가 사막여행도 누구나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는 여행에도 ‘급’이 있다고 말한다. “지금도 ‘오지여행’이라고 만들어 놓은 여행상품이 더러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게 정말 오지 맞나 싶을 정도로 이미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더라고요. 우리는 개최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이 대회에는 등급이 있어요. 사하라 사막이나 고비 사막은 어찌 보면 초보 코스고 가장 어려운 곳은 호주의 아웃백이라고 할 수 있죠.” 새로운 것이 일반화되면 또 다른 단계의 새로운 도전이 탄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세상이 발전할수록,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에 기꺼이 돈을 쓰기 때문에 아예 고급스런 여행이거나 하드코어의 여행으로 양극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 고객층이 적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런엑스런’을 여행사라고 가정했을 때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컴플레인이 없었던 것만 보아도 그의 확신에 믿음이 간다. 거금을 들여 참여했고 심지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도리어 만족해한다고.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유지성 대표는 말한다. “사막은 아름답기 때문에 갈 이유가 있는 것이고, 여러분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사하라 사막을 달리고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물론 제가 운동을 잘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도전을 하면서 살아 있다는 느낌 때문에 지금까지도 달리고 있습니다. 만약 한번 가보게 된다면 분명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스물네 번의 오지를 달린 그는 올해 6월에는 중국 고비 사막, 7월에는 호주 골드코스트, 10월에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 대회에 또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누구나 가는 길을 걷지 않고 특별한 길에 도전하는 ‘마라톤 오타쿠’ 유지성 대표의 달리기를 응원한다. 
 
글 손고은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레이싱 더 플래닛Racing The Planet
1년에 네 번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지역에서 오지 마라톤 대회를 주최하는 회사다. 2003년 11월 독일에서 첫 대회를 시작했으며 홍콩에 본사를 두고 세계 각지에 사무소가 있다. 네 군데의 기본 지역 외에도 한두 군데 정도는 다른 지역에서 개최되기도 한다. 대회를 한번 진행하면 보통 150~300명 정도가 참가하는데, 스태프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운전기사, 미디어를 포함해 약 80명 정도가 함께한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 미국과 유럽이 전체 참가자의 약 70%이며, 아시아인은 약 30%로 그중 한국인의 비율은 약 5%다. 2014년에는 마다가스카르, 2015년에는 볼리비아, 2016년에는 에콰도르에서 마라톤 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RTP와 함께하는 트레일 러닝 
‘4 Deserts Race Series visits Seoul’
지난 3월20일 Racing The PlanetRTP의 스태프 사만다 펜셔Samantha Fanshawe(왼쪽)와 리타 한니넨Riitta Hanninen(오른쪽)이 한국을 방문했다. 지금까지 대회에 참여한 한국인 참가자 300명의 뜨거운 열정에 보답하고자 함이다. 이들은 사막이나 남극과 같은 오지에서만 만났던 참가자들을 편안한 자리에서 만나 맛있는 음식도 먹고 그간의 회포도 풀며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좀더 생생한 정보도 제공했다. 3월22일에는 북한산 둘레길 8~10구간(약 9km)을 참가자들과 함께 달리는 시간도 가졌다. 사만다 펜셔는 2010년 고비 사막 대회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며 매번 대회에서 메인 스태프로 전반적인 대회를 관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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