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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FOUL-판도라의 상자

  • Editor. 손고은
  • 입력 2014.05.27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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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근을 좋아한다. 여기서 말하는 당근은 식용 채소가 아닌 명마를 길들이기 위한 ‘당근과 채찍’ 정책의 당근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근을 마다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공부도 일도 채찍질을 해줘야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꾸준히 칭찬을 받아야 잘 하는 사람이 있다. 부모님은 일찍이 내가 후자에 속한다는 걸 파악하고 채찍보다는 당근을 더 사용하시곤 했다. 

잘못을 했을 때는 꾸지람을 듣는 것이 마땅하지만 어릴 적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배울 때 그 실력이 별 볼일 없었을지라도 칭찬을 받으면 왠지 모르게 힘이 솟아 더 열심이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기 위해 먼저 길가에 있는 
쓰레기 따위를 줍는다거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나는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이 늘 궁금했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에 들어간 나는 토요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인턴의 의무를 성실히 지켜내고 있었다. 정오가 지난 무렵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의 컴퓨터에 있는 문서를 메일로 좀 보내 달라는 전화였다. 선배의 요청을 곧바로 처리한 후 컴퓨터를 끄려는데 문득 바탕화면에 있는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에 눈이 갔다. 그 메신저는 내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도 이전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볼 수 있는 조금 이상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마음속에 강렬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혹시나 다른 동료들과 나의 업무 능력에 대한 평가를 주고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선배의 메신저를 훔쳐보는 것은 엄연한 사생활 침해이자 직장생활에서의 반칙이었지만 궁금증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주위를 살펴보니 사무실에는 몇몇 인턴과 당직자들뿐. 나는 조용히 로그인을 해버렸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선배가 다른 몇몇 동료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고야 말았다. 내 기준에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지적이 난무하고 있었고 심지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서슴없었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진탕 먹이고 토하게 만든 것도 그저 내가 미워서 계획된 것이었음도 그때 알았다.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미친듯이 뛰는 심장은 곧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것은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았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온갖 것들이 봉인되어 있는 항아리를 연 판도라. 그로 인해 인간에게 죽음과 병, 질투와 증오와 같은 해악이 튀어 나와 재앙을 몰고 왔던 것처럼 그날 이후 나는 괴로움에 몸살을 앓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믿음을 잃었음은 물론 억울함에 몇날 며칠을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발차기를 해댔다. 회사에서는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고 의기소침해 업무에 대한 능률도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명백한 반칙이었고 
그에 대한 엄중한 벌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얻은 것도 있다. 내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과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나를 믿고 인정해 주는 더 많은 동료들을 잊지 않기로 했다. 이를 인정하기까지 참 많은 고뇌의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그 후로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목말라했던 칭찬을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글 손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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