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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FOUL-너무 벗어던졌나?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4.05.27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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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 사람들 열의 아홉은 나에게 외동이나 막내냐고 묻는다. 곱게 사랑받고 자란 느낌이 드는 것인지, 나쁘게 말해서 철없어 보여서인지는 모르겠다. 이왕이면 곱게 사랑받고 자란 느낌이라고 하자. 사실 나는 첫째다. 세 자매 중 맏이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정말?’이냐고 되묻는다. 내게서 맏이로서의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나 보다.
 
아마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들 중 첫째라면 좋건 싫건 첫째로서 갖게 되는 무게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누가 공인한 것은 아니지만 첫째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선 은연중에 공통된 것들이 있었다. 
 
동생들의 본보기로서 처신을 바르게 하고, 
부모들의 가장 첫 번째 자식으로서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일례로 친척 어른 중 한 분은 
나를 볼 때마다 “네가 첫째니 동생들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말을 염불처럼 외곤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릴 적 나는 그런 부담감과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를 규칙 안으로 밀어 넣었던 편이었다.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유혹을 뿌리쳤고, 만들어진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수업시간에는 절대 자리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말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쉬는 종이 울릴 때까지 기다렸었다. 열이 펄펄 나도 쓰러지지 않으면 수업을 들었다. 그러나 가장 재미있는 얘기들은 친구들의 땡땡이 경험담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겨울의 기운이 가을을 막 덮치던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날, 떡볶이 코트를 나란히 입은 친구들과 나는 아침 종례를 기다리면서 교실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때다. 아무 이유도 없었지만 우리는 눈이 맞았다. 가방을 들쳐 메고 교실 밖으로 내달렸다. 학교가 멀어진 뒤에도 한참을 달리다 시골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가족의 얼굴과 선생님의 얼굴이 차례대로 지나갔고, 아직 듣지도 않은 훈계가 귓속에 맴돌았다. 날이 쌀쌀한 와중에도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나는 한 열댓번 ‘다시 돌아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친구들에게 되물었던 것 같다. 그러나 친구들은 불도저 같았다. 어떻게 봐도 중학생이 뻔함에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골마을 슈퍼를 습격해 소주 두 병을 약탈했다(사실 바들바들 떨며 다소곳하게 거래를 마쳤다). 그리고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깡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벌컥’이라고 했지만 소주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학칙은 물론이고, 내재화된 스스로의 규칙도 선명하게 어긴 날이다.  
 
‘땡땡이를 까고’ 소주를 마시다니! 
물론 학생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항상 틀리고 잘못할까 
전전긍긍, 조바심을 내던 나에게 그날 사건은 
일종의 전환점이 됐다.
 
물론 막무가내로 규칙을 어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꽉 막힌 웅덩이 같았던 내 일상이 그 사건으로 물꼬가 트였다고 할까. 상상할 수 없었던 일탈을 하고 나니, 자잘하게 나를 묶어 왔던 규범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거다.

그러고 보니 난 첫째이긴 하지만 동생들의 삶에 모범이 되고자 태어났거나,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기대에 미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렇게 하면 안 돼’, ‘저렇게 해야만 해’ 하며 스스로 만들었던 부당한 규칙들을 차근차근 벗어던졌다. 주변도 살폈지만 나 스스로도 살폈다. 첫째가 맞느냐고 누군가 물을 때면 그때야 생각한다. ‘너무 벗어던졌나?’ 
 
글 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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