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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INTERVIEW] 최행숙전통주가-농부의 아내 술쟁이가 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5.27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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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아내가 술쟁이가 됐다. 
인삼과 쌀을 재배하다 이제는 그것으로 전통주를 만든다. 
최행숙전통주가의 최행숙 대표다. 
그에게 술이란 늦둥이 자식 같다. 
뒤늦게 만나 푹 빠져 버렸다. 
 
최행숙전통주가 최행숙
 
파주 초리골에 위치한 도가
 
술 한 잔도 못 마시는 그가 술에 빠진 이유

술꾼은 많다. 그러나 술 만드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최행숙 대표를 보면 안다. 그에게 있어 일평생 늘지 않는 것이 주량이다. 정확히 소주 한 잔. 그나마도 즐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술과는 인연이 없던 사람이다. 2001년 이전까지는 그랬다.

최 대표가 술을 빚게 된 건 남편의 인삼 농사 때문이었다. 2001년 농협에서 근무하던 그는 파주시 기술센터로부터 인삼을 활용한 2차 산업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됐다. 요리, 떡, 차 등 인삼을 넣을 수 있는 것은 죄다 만들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남은 게 전통주 수업이었는데, 술을 싫어해 미루고 미루다 센터 직원으로부터 등 떠밀려 겨우 듣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뒷짐을 지고서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근데 쌀을 찌고 누룩을 치대서 술을 만드는 과정이 꽤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만든 게 술이 된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그래서 딱 2회차였던 수업이 끝난 후, 집에서 혼자 빚어 봤어요. 술이 끓기 시작하니 항아리에서 비 쏟아지는 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가 어찌나 좋던지. 향은 또 어떻고요. 술 냄새가 그렇게 향기로운지 처음 알았죠.”

그날부터 최 대표는 매주 서울을 오가며 술 공부를 시작했다. 시음이라면 젬병이지만 술 빚는 손맛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다. 도가를 차릴 욕심도 생겼다. 물론 인삼주였다. 갈아도 보고 쪄 보기도 하면서 6년째 되던 해, 드디어 첫 번째 술을 내놓았다. 6년근 파주개성인삼과 직접 농사지은 찹쌀로 만든 술, 맑게 거른 약주와 막걸리 두 종류로 출시되는 ‘미인’이다. 달짝지근하기보다 인삼의 쓴맛과 신맛이 두드러지는 술이다. 한 모금 들이켜면 입 안을 청량하게 씻어내고 은은한 향을 남긴다. 발효 초반에 인삼을 통째로 넣어 인삼 특유의 흙내가 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병입이나 여과 과정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손으로 직접 치대 만든다. 기계로는 낼 수 없는 술맛이 있기 때문이란다. 마디마디 굽은 그의 손가락을 보면 술빚기의 고된 과정이 절로 떠오른다. 

“처음에 양조장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대가 심했어요. 전통주 사업이 잘될 리 없다는 거죠. 막걸리 붐이 일기 전이었고, 프리미엄 막걸리나 전통주 바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였으니까요. 당시 인삼 가공 사업으로 5,000만원을 지원해 준 파주시 기술센터에서도 술 말고 다른 걸 권했었죠. 저 역시 큰 기대는 없었어요. 그저 이렇게 좋은 전통주를 대중에게 알리고픈 마음이었죠.”
 
 항아리 10개로 운영되는 작은 양조장  
술의 상태를 신중하게 확인하는 최행숙 대표
 
시작과 상실, 또다시 시작

그렇게 ‘최행숙전통주가’의 문을 열었다. 83m2 남짓한 규모에 술독을 10개 놓고 한 편엔 전통주 빚기를 할 수 있는 체험장을 차렸다.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작은 규모의 양조장이었다. 다행히 우려와 달리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인삼 하나를 통째로 넣어 술을 만드는 전통주 체험장이 제법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매달 300~400명의 관광객이 모여들었고, 돌아가는 길에는 으레 한 손에 ‘미인’이 들려 있었다.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술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미인’을 독점 판매하는 인사동 ‘비울채울’ 주점에서는 술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일본 관광 책자에 소개되면서 일본 손님이 늘었고, 그 맛에 반한 일본 업자가 ‘미인’을 일본에 수출하려던 참이었다. 사업은 그렇게 순탄할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제 막 궤도에 올라서려던 2011년 여름, 모든 것이 무너졌다. 수해를 맞아 체험장과 양조장이 한순간에 물에 쓸려 간 것이다. 체험시설과 위생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5,000만원을 들여 설비를 갖춘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양조장 앞에서 최 대표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인사동의 ‘미인’ 판매점인 ‘비울채울’도 운영이 어려워졌다. 처음에는 가게를 유지해 보고자 다른 막걸리를 갖다 놓기도 해보았지만 고객들은 ‘미인’ 막걸리만 찾았다. 고마운 일이지만 당장 술을 만들 수가 없었다. 4개월을 더 버틴 후 손을 떼고 말았다. 

“면허를 유지하려면 6개월 이내로 이전을 해야 했어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죠. 돈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전망이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전통주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 확신이 안 생기는 거예요.”

그러나 도저히 놓을 수가 없더란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최 대표는 믿기로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술맛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양조장 문을 닫은 몇 달 동안에도 꾸준히 ‘미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마음먹을 수 있었다. 2012년 1월31일, 최행숙 대표는 예전 양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금의 위치로 양조장을 이전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항아리 10개를 갖다 놓고서 말이다. 
 
대기업에 겨룰 전통주 만든다

지금 최행숙전통주가의 주력상품은 ‘미인’뿐만이 아니다. 출시한 지 막 2년이 된 ‘아황주’가 그 옆을 지키고 있다. 맑은 황금빛의 약주인 ‘아황주’는 고려시대부터 마셨다고 전해지는 전통주다. 알에서 막 깨었을 때 거위 새끼의 노란 털빛 같다고 그리 불린다. 농촌진흥청에서 고문헌에 전해지는 레시피를 복원해 최 대표에게 기술 이전한 이후 ‘아황주’는 그의 술이 됐다. ‘미인’을 빚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첨가물 없이 직접 손으로 빚는다. 숙성 과정도 한 달 이상 걸린다. 한 병에 6,000원. 들이는 공에 비해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도 최 대표는 아황주 가격을 더 낮추겠다고 한다.

“늦어도 내년 중에는 아황주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릴 생각이에요. 지금보다 생산량을 2~3배 늘리고 전국 농협에 배치하려고요. 살균하지 않는 생주는 유통기한이 짧지만 살균을 하고 나면 유통기한이 길어지기 때문에 가능하죠. 가격도 확 낮추고요. 고문헌대로 재현한 술, 손으로 직접 만든 술, 첨가물이 없는 술이 대기업의 약주와 비슷한 가격이라면 충분히 경쟁력 있지 않겠어요?”
 
최행숙 대표에게 술이란 늦둥이 자식 같다. 뒤늦게 만나 푹 빠져 버렸다. 모든 것을 앗아간 수해를 겪고서도 다시 일어선 그에게 사소한 시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표정을 보면 안다. 마음먹은 것은 어떻게든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기 때문에 ‘아황주를 중국에 수출하겠다’는 포부를 실현하는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6년근 파주개성인삼을 통째로 넣은 미인 막걸리  
대중주로 도약할 아황주(왼쪽), 생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아황주(오른쪽)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수수보리 전은경(수수보리는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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