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촨YINCHUAN-모래를 머금은 대지로부터
중국 인촨YINCHUAN-모래를 머금은 대지로부터
  • 트래비
  • 승인 2014.06.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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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마저도 낯선 닝샤후이족자치구宁夏回族自治區 그리고 그곳의 수도 인촨銀川. 
‘십수년 넘게 중국을 수없이 오가고 공부했지만 여전히 중국이란 나라를 안다 할 수 없다’고 자조하던 어느 여행 베테랑의 말처럼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곳에서 또 하나의 중국을 배웠다.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진 통후초원
 
같은 날 같은 하늘 아래인데 좁고 어두운 창빙둥 지하 요새를 빠져 나오면 하늘도, 장성 박물관 기와도 더 없이 멋스럽게 느껴진다
메마른 협곡 아래 아주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 명나라 군사의 지하 기지이자 은신처 역할을 했던 창빙둥
중국의 구석기시대 유적과 함께 유적 발굴의 역사까지 되짚어 볼 수 있는 수이둥거우
 
●수이둥거우水洞溝·만리장성萬里長城 창빙둥藏兵洞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워

인촨 시내를 걷다 보면 동그랗고 하얀 모자를 머리에 얹은 사람들이 꽤 자주 눈에 띈다. 중국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 민족 ‘후이족回族’이다. 인촨을 수도로 하는 닝샤寧夏는 송·원대에 중국의 질 좋은 실크를 찾아 들어온 터키, 페르시아, 아랍 등지 서역인들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독특한 문화 지형을 형성하게 된 후이족 자치구이다. 

그러나 후이족 문화로만 이곳을 설명하기에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황허黃河강이 흐르는 가운데 그 물길 따라 구석기 유적과 명나라 때 축조된 만리장성의 끝자락 그리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까지 문명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길 위로 오늘의 그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금으로부터 가장 오래 전의 닝샤로 껑충 뛰어 넘어 본다. 장소는 인촨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의 수이둥거우水洞溝. 그곳의 첫인상은 서부영화를 찍어도 좋을 만큼, 아니 서부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것같이 황량함 그 자체였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모래 먼지가 이는 바싹 마른 땅에 그나마 솟아오른 풀도 마른 풀이다. 거친 질감의 협곡 사이로 난 구불한 길에는 인적 하나 없다. 아주 오래 전에는 유유히 강물이 흘렀다고 한다. 얼마나 오래 전이냐 하니 3만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단다. 수이둥거우는 중국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1923년 프랑스인 고생물학자 리쌍과 샤르댕이 처음 이곳 유적을 발굴하기 전까지 중국에는 구석기 문화가 없다는 게 정설이었기에 수이둥거우 유적은 중국 구석기 고고학 연구에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때문인지 관련 유물과 유적지 발굴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을 관람한 후 유적지를 둘러보게 되는데 그 초입에 당시 발굴에 힘썼던 고고학자들이 유적지를 발굴하는 동안 생활했던 공간까지 그대로 재현해 놓고 있다. 구석기 유적은 지표로부터 12m에 이르는 협곡의 양쪽 절벽 위에 분포되어 있다. 움집이 드문드문 보이는데 이는 옛 주거형태를 재현해 놓은 것이고 실제 주거공간은 터만 남아 있다. 

만리장성 유적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창빙둥藏兵洞이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협곡 아래 동굴을 내, 미로식으로 만든 지하 군사기지이자 은신처로 만리장성에 수많은 창빙둥을 만들었지만 원형이 보존되고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혹여 적이 침입을 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놓고 날카로운 창을 빼곡하게 채워 두는 등 군데군데 함정을 만들어 놓았다. 좁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함정을 맞닥뜨릴 때면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또 한 번 놀라고, 안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뒷목이 서늘해진다.
 
항공 | 진에어가 인천-인촨을 연결하는 직항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약 3시간. 
음식 | 식당 간판에 ‘淸眞’이라는 글자가 있다면 이슬람 식당이란 말이다. 인촨은 이슬람교를 믿는 닝샤후이족자치구의 수도인 만큼 양고기와 쇠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다양한 이슬람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날씨 | 사계절이 뚜렷하지만 겨울이 길고 여름은 짧다. 연평균은 10℃ 전후로 다소 춥고 건조한 편이다. 일교차도 10℃ 이상 큰 차이를 보인다. 황량한 초원 위로 녹음이 살아나는 5~10월이 여행의 적기다
 
허란산 암벽화. 산길따라 매여 있는 빨간 리본을 따라 오르면 고대 유목민족이 단단한 암벽에 새겨놓은 태양신을 만난다
박물관에 전시된 서하의 유물. 채색 목판화와 원형 수막새이다
 ‘미지의 제국’, ‘잃어버린 왕조’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되었다. 시샤의 존재를 또렷이 증명하고 있는 시샤 왕릉

●허란산賀蘭山 암벽화·시샤西夏 왕릉
소원을 아로 새겨

고대 인류의 흔적은 허란산의 동쪽 기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골짜기의 암벽에 다양한 동물 모양과 추상적인 부호가 가득하다. 멀게는 1만여 년, 가깝게는 3,000여 년 전에 이 일대에 거주하던 유목민족들이 새긴 암벽화다. 처음에는 기도의 목적으로 또는 ‘소원아 이루어져라’ 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새겼다고 한다. 단순한 문양부터 수렵, 제사, 전쟁, 가무 등 다양한 원시 생활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 돌산에 무려 5,487개의 암벽화가 아로새겨졌다고 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태양신’이라 이름 붙은, 암벽화 가운데 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그림이다. 단단한 암벽에 그림을 새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쉽게 지워지지 않고, 또 사람 손 타지 않는 높은 곳에 새긴 것이야말로 기도의 증거로 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 닝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명의 흔적은 시샤西夏, 바로 서하 왕조다. 서하는 티베트 계통의 탕구트족이 1038년 세운 나라로 1227년 칭기스칸이 이끄는 몽골에 의해 무너지기 전까지 닝샤를 중심으로 간쑤성 그리고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의 오르도스까지 중국 서북부의 넓은 영토를 아울렀다. 흔히 서하에는 ‘미지의 제국’, ‘잃어버린 왕조’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몽골에 의해 멸망한 이후 원나라가 서하의 역사를 기록에 남기지 않은 데서 그 비운이 시작되었다고. 이민족 말살정책 때문이라는데 그럼에도 서하는 제 스스로 존재와 가치를 동시에 드러낸다.

대표적인 유적이 허란산을 병풍 삼은 서하 왕릉이다. 53km 내에 9개의 황제릉과 254개의 배장묘가 있는 서하 왕조의 능원 유적이다. 18개 지역에 40기가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 조선 왕릉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러나 홀연히 사라진 제국의 능원이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9개의 황제릉 가운데 3호릉이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데 다름 아닌 서하 왕조를 세운 이원호李元昊의 태릉이다. 박물관과 비림을 지나자 이원호의 태릉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로 걸음을 옮길수록 허란산의 능선들은 조금 더 멀찍이 아득해지고 왕릉은 조금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피라미드형으로 흙무덤의 바닥 지름이 36m, 높이가 24m에 달한다. 때문에 눈앞에 있어도 코앞에 닿기까지 한참을 걸어야 한다. 왕릉 앞의 야트막한 모래 둔덕에서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바꿔가며 기념사진을 찍는 여행자들을 뒤로하고 왕릉 뒤로 크게 둘러본다. 풀 한 포기 없이 황토를 다져 쌓아 올린 이 거대한 왕릉이 뿜어내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아마도 흥망성쇠 부침의 천년 역사 속에서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켜낸 힘이겠지. 한 줄 역사로 읽을 때와 그 앞에 마주섰을 때의 느낌은 참 많이 달랐다.
 
사막에서 이보다 좋은 길잡이가 또 있을까. 낙타의 꼿꼿한 자태가 믿음직스럽다
오프로드 차량을 타고 달리니 사막 모래 언덕의 높낮이가 온몸으로 전달된다
멀리서 온 손님을 환대하는 통후초원 사람들. 여인의 사뿐하면서도 절제된 춤사위가 인상적이다
통후초원. 그곳에 사막과 더불어 살아가는 유목 민족의 일상이 펼쳐진다

●사포터우沙坡頭·퉁후通湖 초원·따샤터우大沙頭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닝샤후이족자치구와 네이멍구자치구, 간쑤성까지 3개의 성이 교차하는 사포터우에 도착했다. 가파른 모래 언덕 위를 오르면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황허강이 내려다보인다. 모래 썰매를 탈 수도 있고 황허강을 가로지르는 지프라인과 양가죽뗏목 등의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놀이공원이다. 실제 사막은 전동차를 타고 조금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간다. 

텅거리騰格里 사막이다. 텅거리는 몽골어로 ‘하늘’이란 뜻이라고 했다. 하늘 사막이라. 하늘과 맞닿은 저 멀리 사막 끄트머리를 내다본다. 그리곤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화면을 거꾸로 돌려 본다. 여기에 하늘의 푸른빛, 사막의 흙빛을 지우고 나면 사막을 하늘이라 해도 믿음직하다. 

여인들 여럿이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풀어 머리를 두르고 얼굴을 감쌌다. 대충 두른 스카프도 사막 바람에 꼬리 자락을 촐랑이니 꽤 멋스러운 태가 났다. 그 차림으로 전투용 장갑차를 닮은 오프로드 차량에 올라탔다. 낙타를 타고 기다란 그림자 드리우는 풍경도 인상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편이 더 끌렸다. 스무명 남짓 여행자를 태운 차량은 요란한 시동 소리를 사막 깊은 곳을 향해 보낸다. 이제 내게 주어진 선택권은 없다. 모래 언덕의 높낮이를 온몸으로 느끼는 수밖에는. 평평한 곳에서는 이따금 차를 세워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지만 굴곡이 많은 지대에서는 숨쉴 새 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능선을 빠르게 타고 내려오는 탄력으로 다시 오르막을 타지 않으면 바퀴가 모래에 빠져 겉돌기 쉽다. 

모래 파도는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다. 모래 언덕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올 때에는 능선이 아니라 깎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간담이 울렁거렸다. 스카프 하나로 멋 부리던 순간은 어디로 갔는지 사막 랠리가 끝난 후의 헝클어진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새 나온다. 참고로 인촨에서 만날 수 있는 사막은 이곳 텅거리 하나뿐이 아니다. 따샤터우大沙头 생태문화관광지에서 마주한 사막은 조금 더 역동적이었다. 따샤터우는 네이멍구자치구 남쪽 끝 오르도스 지방에 위치해 있지만 자치구의 주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보다 인촨에서의 접근성이 훨씬 좋다고 했다.  

사포터우에서 400여 개의 오아시스를 지나면 퉁후 초원에 다다른다. 텅거리 사막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지점이다. 오아시스로 목을 축이며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을 벗 삼아 사막을 가로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단다. 물론 며칠이 걸리는 탓에 시간에 쫓기던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로 30여 분을 달려 초원에 도착했다. 아직 찬 바람이 가시지 않은 때였던지라 푸릇한 초원을 만날 순 없었지만 유목민들의 가옥인 게르와 마차, 그 너머로 여전히 물결치는 텅거리 사막을 한동안 멍하니 지켜보았다. 초원 사람들의 환대와 그들이 끓여 준 따뜻한 라이차 한잔은 미처 만나지 못한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힘을 빌어 초원 사람들이 기도를 한다는 제단에 올라 두 손을 모았다. 바람 따라 다시 한 번 이곳에 닿을 수 있기를.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시 정부 www.yinchuan.gov.cn 통커뮤니케이션즈 www.tongp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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