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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그 슬픈 새우젓 소금국

  • Editor. 김선주
  • 입력 2014.06.30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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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캠핑 데뷔는 참혹했다. 세찬 바람과 야멸찬 비 때문이었다. 텐트 하나 똑바로 치지 못한 채 비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씩씩댔다. 처자식에게 듬직해 보일 만한 몰골은 절대 아니었다. 겨우 텐트를 세웠지만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걱정 말라 호언했지만 걱정됐다. 바람에 날릴까 빗물에 잠길까 전전반측 전전긍긍…. 새벽까지 홀로 들락거리며 로프를 조이고 물길을 터주며 부산을 떨 수밖에 없었는데, 이웃 텐트의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을 거스르면 내게도 빗속의 아버지는 익숙하다. 

빗물은 종종 오래된 기와지붕을 뚫고 방 안으로 
샜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지붕 위에 올랐다. 
똑똑똑 빗물받침 그릇으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가 
잦아들면 아버지가 돌아왔다. 

모자 달린 검은 우비 차림에 삽 한 자루 들고 빗속으로 스며들던 뒷모습도 선연하다. 비 내리는 여름 들판에서 아버지는 막힌 논 물꼬를 트고 꽉 찬 봇물을 터뜨리느라 잰걸음이었을 것이다. 가끔은 막걸리에 얼큰해진 채 빗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초등학교 가는 길은 마을 앞 소나무 숲을 가르고 실개천을 따르다가 바위산을 넘으며 이어졌다. 어느 날 하굣길에 혼자였고 우산도 없는데 비가 내렸다. 빗줄기는 굵지 않았지만 마을  산기슭에 도착하니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였다. 오도도도 한기가 느껴질 즈음 저쪽 소나무 숲길에서 예상치도 못한 아버지의 모습이 비쳤다.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눈에도 생경했다. 아버지는 항상 이른바 가부장의 전형이었는데 그날 빗속의 아버지는 가부장적 아버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손수 국까지 끓여 내왔다. 

말간 물에 새우젓 한 숟가락 휘휘 풀어 끓이고 소금으로 간을 한 것이었으니 국이랄 수도 없었다. 스스로도 멋쩍었던지 어색하게 웃었다. 마루에 앉아 아버지는 비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비웠고, 나는 새우젓 소금국을 말끔히 비웠다. 

그날처럼 소슬비가 내리면 새우젓 소금국이 어김없이 스친다.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향기는  빗방울에 섞인 아버지의 땀 냄새와 비슷했고, 군더더기 없는 단순하고 직선적인 맛은 아버지의 성격을 닮았다. 그 향과 맛에 이끌려 스스로 끓여도 봤고 아내에게 그 간단명료한 레시피를 부탁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어찌해도 그 맛은 나지 않았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또렷한, 영영 잃어버린 맛이 됐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직접 속을 파내고 말린 조롱박 표면에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고, 완고한 가부장에게 딱 어울릴 법한 고리타분한 경구를 즐겨 적었다. 그러다가도 술기운이 웬만큼 오른 날이면 뜬금없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 뭔지 아느냐고 자문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바로 ‘그리움’이라고 자답하곤 했다. 
당시에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아버지의 생전 최고 나이에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그리워한들 이미 그리움의 
대상이 된 존재는 어찌해도 만날 수 없다. 
그리워하는 것만큼 부질없고 
그래서 슬픈 것도 없을 터이다. 

그날의 새우젓 소금국 맛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사실도 그래서 슬픈 것이겠지…. 그래도, 이번 장마에는 그날 소나무 숲길의 나보다 더 커 버린 초등생 딸을 위해 새우젓 소금국을 끓여 봐야겠다. 
 
글 김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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