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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INTERVIEW] 둔포양조장 최덕영 대표-순박한 맛을 찾는 예순의 청년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7.01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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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둔포양조장을 찾아간 이유는 하나다.
유명세 때문도 아니고, 명인이 있어서도 아니다.
획일화된 막걸리 시장에서 자기만의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에 한평생을 건 최덕영 대표다. 
 
누룩을 띄울 때 쓰는 쑥과 도꼬마리를 살펴보는 최덕영 대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만의 누룩을 찾아가고 있다
둔포양조장의 대표 막걸리, ‘해쌀이’와 ‘아산맑은쌀’ 막걸리
 
언제부터였을까. 막걸리 맛이 어디나 똑같아진 것이. 대한민국에는 700개가 넘는 막걸리 양조장이 있다. 이곳에서 개성 있는 막걸리를 하나씩만 내놓는다고 해도 우리의 막걸리는 얼마나 다양해질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막걸리는 맛이 비슷하다. 많이 달고 적당히 시큼하다. 이른바 ‘잘 팔리는 맛’이다. 
 
최 대표를 처음 만나 대뜸 물었다. 
“누룩을 직접 만드신다고요?” 
최 대표의 눈빛이 순간 빛나더니 무턱대고 양조장 안으로 나를 이끈다. 누룩을 띄우는 ‘누룩방’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그의 누룩방에는 만들다 실패한 누룩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만의 누룩을 만들기 위한 시행착오를 거치는 중이라고 했다.

누룩은 곡식을 술로 만들어 주는 ‘발효제’다. 그러나 단순히 발효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누룩 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곰팡이가 술맛에 개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어떤 누룩을 쓰는지가 막걸리 맛의 반 이상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만의 막걸리를 만드는 것, 그 첫 번째 요건이 누룩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우리가 지금 흔히 마시는 막걸리에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 술이 막걸리인데 누룩을 넣지 않는다니. 최 대표의 이야기는 이 물음에서부터 시작한다.
 
 1920년대 지어진 건물은 운치마저 풍긴다
막걸리에 쓰이는 입국도 직접 만든다
 
막걸리 말고 진짜 우리술을!

최 대표의 막걸리 인생은 참 길었다. 23살, 막걸리 공판장에 취직한 게 시작이었다. 하루에만 막걸리 400~500말을 팔던 1970년대 호시절을 겪고 8년 후에는 현재의 ‘둔포양조장’을 인수했다. 직원이 7~8명, 막걸리 배달하는 사람만 또 3명. 최 대표는 그저 운영만 하며 막걸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막걸리 시장의 쇠락과 함께 양조장도 기울기 시작하자, 약 8년 후 직접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술쟁이’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막걸리를 만들었다. 좋은 쌀과 좋은 물로 정성껏 빚은 막걸리는 제법 인기가 있었다. “내 술을 마셔 본 사람은 멀리 오산에서도 수원에서도 오곤 했어요.” 그렇게 25년 동안 막걸리를 만들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막걸리를 만든 지는 오래됐지만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못했기에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2006년 국세청에서 실시한 교육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실시했던 전통주 교육을 듣게 됐다. 당시 그의 나이 예순이었다.
“전통주 공부를 시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 술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았던 겁니다. 당시에 저는 막걸리를 발효시키는 ‘백국’을 직접 만들고 있었는데, 그 백국이 일본 것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죠. 우리가 만드는 술인데 ‘우리 술’이 아니구나. 우리 쌀, 우리 누룩으로 만들어야 진짜 우리 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그때부터 우리 술에 대한 공부와 누룩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양조장 벽면을 가득 메운 공구들
밤새 개발한 태극무늬를 넣은 누룩틀
최 대표는 45년을 막걸리와 함께했다
 
누룩 예찬론자가 되다

요즘 최 대표의 하루는 막걸리로 시작해 막걸리로 끝난다. 술을 빚는 시간 외에는 누룩 연구에 몰두한다. 다양한 누룩을 빚어 보고 그 누룩으로 술을 만들어 본다. 2010년 하반기 결성한 누룩연구회를 통해 전국의 다양한 술쟁이들과 내용을 공유한다. 
그뿐만 아니다. 손재주가 좋은 그는 양조도구도 직접 만든다. 양조장의 한 쪽 벽면은 공구로 가득 차 있다. 어제도 새벽 1시까지 누룩틀을 만들다가 잠들었단다. 지난밤 만든 누룩틀을 선보이는 그의 표정에는 피곤함을 전혀 엿볼 수 없다. “이렇게 누룩 틀에 태극무늬를 넣었죠. 공기가 서서히 빠져 누룩의 질을 높여 줄 겁니다.”

그가 이렇게 누룩 예찬론자가 된 것은 막걸리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누룩을 직접 만들어 막걸리를 빚는 곳은 ‘금정산성 막걸리’, ‘송명섭 막걸리’, ‘한산소곡주’ 정도죠. 명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입니다. 그 외의 막걸리에는 일본식 백국이 들어갑니다. 맛있지만 모든 막걸리가 비슷한 맛을 내죠. 우리 누룩으로 만든 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향을 내죠. 저는 우리 술의 미래를 누룩에서 봅니다. 우리 막걸리에 다양한 누룩을 써서 각자 개성을 갖게 되면 그때서야 세계적인 술이 될 수 있을 거라고요.”
 
나만의 막걸리, 답은 ‘무첨가’

현재 최 대표는 ‘아산맑은쌀’ 막걸리와 ‘해쌀이’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9년 출시한 해쌀이 막걸리는 아산 맑은쌀과 아산만 둔포 배로 만든 그의 야심작. 배 유산균을 첨가해 특허를 받은 막걸리다. 기존의 막걸리보다 알코올 도수는 조금 더 높되,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2010년에는 그 진가를 인정받아 일본에서 수출 제의도 있었다. 수출을 위해 거액을 들여 양조장 설비도 새로 갖췄으나 막걸리 붐의 갑작스런 쇠퇴로 수출은 무산되고 그 후유증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 나이가 올해 예순 여덟이에요. 평생을 막걸리에 바쳤죠. 지금이 도태 위기일 수 있겠죠. 그렇지만 포기 안 할 겁니다.” 최 대표는 그 돌파구를 무첨가 막걸리에서 찾으려 한다. 그의 계획은 직접 개발한 누룩만으로 빚은 막걸리를 출시하는 것. 현재 판매하고 있는 해쌀이 막걸리의 ‘무첨가’판이다. 

“현재까지 해쌀이 막걸리에는 아스파탐 등 단맛을 내는 감미료가 들어갔죠. 단맛이 있어야 잘 팔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최근 들어 생각이 바뀌었어요. 음식과 함께 어우러지는 막걸리는 무가당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것을요. 지난주 시험적으로 서울의 몇몇 막걸리 바에 무첨가 해쌀이 막걸리를 납품했어요. 상당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새롭게 출시하는 해쌀이 막걸리에는 철저하게 두 가지 원칙이 지켜질 것이다. 직접 디딘 누룩으로 만들 것, 단맛을 내는 감미료를 넣지 않을 것. 현재까지의 당을 첨가하지 않은 해쌀이 막걸리는 담백하고 세련됐다. 어떤 고급 음식에도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해쌀이 막걸리는 최덕영 대표의 비기 ‘누룩’이 빠져 있다. 그가 직접 디딘 누룩으로 완성된 해쌀이 막걸리의 맛이 자못 궁금해질 따름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수수보리 전은경(수수보리는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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