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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SHOPPING-공포의 ‘얼마예요’

  • Editor. 신지훈
  • 입력 2014.07.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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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묘한 쇼핑습관이 하나 있었다. 쇼핑을 하러 가면 ‘얼마예요’ 하고 묻지 않았던 것. 일부러 묻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물어보는 것이 힘들었을 뿐이었다. 차라리 가격표을 보고 말았다. 가격표가 없으면 모델명을 이용해 휴대폰 검색을 했다. 정말 마음에 들어 사고 싶은데 검색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냥 사지 않거나, 가격을 모른 채 계산대로 향했다. 
 
이것은 오래된 트라우마로 인한 
일종의 회피였다. 

중학생 무렵의 이야기다. 삶의 동선이라고는 학교와 학원과 집이 전부이던 시절, 그래도 1년에 두어 번은, 중간·기말고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동대문을 가고는 했다. 부모님도 어느새 이 정기행사를 인정하시고 얼마간의 쇼핑비도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그날은 오전 시험을 끝으로 모든 시험이 끝나는 금요일이었다. 동대문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들떠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친구 하나가 새로운 정보를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신촌 인근의 대학교에 다니는 누나에 의하면 이대, 신촌에도 동대문만큼이나 옷을 살 곳이 많다는 얘기를 꺼낸 것이다. 이 말에 혹한 우리는 그날의 목적지를 이화여대 앞으로 바꾸고 말았다. 이대역 뒤편 좁은 골목길을 가운데 두고, 일렬로 늘어선 옷가게들은 동대문만큼이나 우리에게 신천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대문 시장에서 위협적으로 구매를 강요하던 일명 ‘삐끼’형들이 덜한 것 같아 모두 안심했다. 옷가게 점원 대부분이 누나들이었고 구경하고 가라는 그 말투가 어찌나 다정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맘 놓고 쇼핑할 수 있는 이대를 진작 왔어야 했다고 친구 놈이 온갖 호들갑을 떨어댔다.

어떤 옷을 살 것인지 최종으로 정하기 전, 마지막 윈도우쇼핑을 위해 한 옷가게를 들어갔다. 다른 가게와는 다르게 가게 점원이 남자 두 명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눈치를 보느라 선뜻 자리를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독 그날따라 호들갑을 떨던 친구는 사지도 않을 옷의 가격을 점원에게 집요하게 물어댔다. 한눈에 봐도 살 마음이 없어 보이는 중학생 애가 귀찮게 해서였을까. “이 XX들이 지금 장난치나. 니들 오늘 다 죽었어.” 느닷없이 점원이 돌변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가게 셔터문을 내려 버렸다. 우리는 속된말로 정말 쫄았다. 한 줄로 선 우리는 약 10여 분간 맞았다. 쇼핑을 위해 가져간 돈도 모두 뺏겼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면 정말 죽는다는 협박과 함께 우리는 간신히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길로 부랴부랴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쇼핑이 됐다. 
그 후로는 시험 뒤풀이 쇼핑도 끝이 났고, 
아무도 다시는 그날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15년 가까이 나는 쇼핑을 할 때 ‘얼마예요’ 하고 묻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 트라우마는 작년 말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당시 친구들과 술자리에서의 장난으로 막을 내렸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 그동안 ‘얼마예요’라고 잘 묻지 못한 채 살아 왔다는 ‘웃픈’ 사실을 고백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진작 서로 공유하고 위로하고 웃음으로 치료했어야 했다. 15년여를 함구해 오며 서로들 마음에 상처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 우리는 이제 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자며 서로 한 번씩 사장님을 부르며 자신 있게 외쳤다. ‘사장님! 여기 얼마예요?’ 
 
글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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