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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INTERVIEW] (주)좋은술 이석준 대표-다섯 번의 고집 천년 비밀이 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7.30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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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빚어도 술이 된다.
그런데 ‘천비향’은 다섯 번을 빚는다.
이 느리고 고집스러운 술의 주인을 만났다.
이석준 대표가 말하는 숫자 5의 비밀.
 
경기도 의왕에 위치한 (주)좋은술 도가 앞에 선 이석준 대표

술은 ‘빚는’ 것이다. 정성껏 쌀을 씻어 물과 누룩에 잘 버무리면, 이윽고 술이 된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의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는 술이 있다. 다섯 번의 정성으로 빚은 오양주 ‘천비향’이다. 

그러니까 오양주라는 것은  천성이 굼뜬 놈이다. 한두 번으로 끝날 것을 다섯 번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빠른 것이 각광받는 이 시대에 이토록 느린 술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이석준 대표를 만나 그 답을 들어 보았다.
 
은행원, 우리 술에 눈 뜨다

이석준 대표의 보금자리는 경기도 의왕에 있다. 도가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마침 택배 보낼 천비향을 포장하고 있었다. 술의 상태는 물론이거니와 라벨과 포장상태까지 면밀하게 살피는 모습에서 그의 꼼꼼함이 묻어난다.

이석준 대표는 30년 이상 은행원으로 일했다. 한평생 외길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술을 알기 전까지, 그의 나머지 인생을 우리 술에 바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말이다. 은행에서 은퇴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우리 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아니 그 존재조차 몰랐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친지가 다수 외국에 거주하는 터라 공항에 갈 일이 잦았던 그는 면세점 한 편에 휘황찬란하게 진열된 위스키와 와인을 보며 이런 의문을 가졌다. ‘왜 우리 술은 없을까?’, ‘우리 술이라는 건 아예 없는 것일까?’ 그에게 전통주라는 것은 빠르게 유통하기 위해 미숙성된 채로 판매되는 막걸리가 전부였다. 소위 ‘카바이트 막걸리’라는 오명을 쓴,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는 그 막걸리였다. 

은퇴 후 전통음식을 공부하면서부터야 비로소 전통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때 처음으로 접한 전통주는 이제까지 알던 막걸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명인의 술도 아니었고 특별한 레시피로 만든 술도 아니었다. 그저 좋은 재료로 정성껏 빚은 술이었다. ‘제대로 된 우리 술은 이런 맛이구나.’ 머릿속이 명쾌해졌다. 항상 잠재해 있었던 우리 술에 대한 물음표가 그를 술의 길로 인도했다. 
 
막 숙성이 끝난 천비향 생주를 거르고 있다
새롭게 디자인한 천비향 약주와 천비향 생주
 
병마다 담아낸 고집스러움

그로부터 10년간 이 대표는 전통주를 공부하며 전통주를 알리는 일에 집중했다. 2009년에 가양주협회 이사직을 맡으며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막걸리가 아닌, 예로부터 집에서 직접 빚은 가양주에 대해 교육하기도 했다. 전국의 명인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명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자신만의 술을 만들고 싶었다. 누룩의 양을 최소화하고 전통주의 거친 맛을 상쇄하는 오양주. 지난해 10월 출시한 ‘천비향’은 오랜 연구 끝에 내놓은 그만의 술이다. 매번 직접 술을 짜고, 국자로 일일이 병에 담고, 맛을 보고 나서야 내놓는 고집스러운 술이다. 

“술을 짤 때 기계를 쓰지 않는 이유요? 소규모 장비들의 위생 상태를 믿을 수가 없어서요. 제 손에 닿는 모든 도구는 매일 살균 소독할 수 있지만 기계는 제대로 소독하기가 어렵잖아요. 대형 공장에서야 기계 소독도 용이하겠지만 이런 소규모 양조장에서는 여간 어렵지 않아요. 술 거르는 제성기도 락스로 소독해야 한다는 말에 단번에 고물상에 팔아 버렸습니다. 300만원이 넘는 기계가 20만원도 안 되는 고물이 되더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락스물에 담가 놓은 제성기로 내 술을 짤 수는 없더군요. 극성스럽다고 해도 손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향을 더하지 않은 진짜 향

한창 대화하던 중 이석준 대표는 좀 전에 포장하고 있던 술병 하나를 꺼내 잔에 따랐다. 지난 해 10월부터 숙성한, 숙성 과정만 반년이 넘은 천비향이다. 탁주의 탁한 부분을 걸러내 맑은 부분만 남은 ‘천비향 약주’다. 농익은 생주는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노란 빛을 띤다.

가볍게 향을 맡고 서서히 들이켰다. 목을 따라 부드럽게 넘어간다. 모과, 메론, 사과 등 갖가지 과일향이 풍부하게 퍼지면서도 들척지근한 단맛은 없다. 기존의 천비향에서 단맛을 점점 줄이고 보다 드라이해졌다. 오로지 쌀과 누룩의 조화로 만들어낸 결과다.

“천년 비밀의 향이라는 뜻이죠. 덕분에 천비향은 향이 강조되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때로는 이게 참 곤혹스러워요. 향을 강조하기 위해 가향을 한 술이 아닌데 사람들은 언뜻 기대보다 향이 강하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하죠. 그러나 잘 익은 우리 술에서는 쌀과 누룩만으로도 갖가지 미묘한 향이 납니다. 향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술 맛을 해치죠. 천년 비밀의 향이라는 것은 2,000년에 달하는 우리 전통주의 역사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향이라는 말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우리 술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오양주를 고집하는 이유

천비향은 처음 그 맛을 보는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은 술이다. 흔히 말해 목넘김이 좋기 때문이다. 알코올도수가 16도나 되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다. 6개월 이상의 긴 숙성으로 얻어낸 결과다. 

“그것이 오양주의 매력이에요. 제가 이토록 오양주를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이 술맛 때문입니다. 오양주는 누룩을 가능한 적게 써서 술을 빚는 방법입니다. 지금 천비향에는 누룩이 단 1%만 들어가죠. 물론 다른 발효제는 일절 쓰지 않고요. 흔히 명인의 술이라는 것들을 보면 누룩을 굉장히 많이 넣습니다. 강한 누룩 향과 거친 목넘김이 전통주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바로 이 때문에 전통주가 대중들과 멀어지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우리 술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대표의 도가는 산자락에 위치한 덕에 주말이면 등산객들의 방문이 잦다. 천비향은 몰라도 전통주라는 간판만 보고 불쑥 찾아오는 것이다. 대개 전통주라고는 탁사발에 부어 마시는 저렴한 막걸리만 마셔 본 이들이다. 그들의 놀라움은 한결같다. 우리 술에도 이런 술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전통주가 뻗어 나갈 여지는 얼마든지 있어요. 아직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거든요. 술만 좋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양을 생산하지는 못하지만 최근에 삼청각이나 롯데백화점, 전통주 전문점 등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우리 술의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곳들이죠. 천비향 맛을 보고 실망하는 건 어쩔 수 없죠. 그러나 아예 천비향 맛을 볼 기회조차 없다는 건 너무 안타까워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주를 접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계속 오양주를 빚을 겁니다. 공항 면세점 한 편에 당당히 자리할 수 있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술을요.” 
 
술에 대한 고집 때문에 제성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짠다
백화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100가지 꽃이 필요하다
숙성실에는 반 년 이상 천비향이 익어간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수수보리 전은경(수수보리는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천비향 약주(16도)’ 외에도 탁주인 ‘천비향 생주(14도)’, 떠먹는 막걸리인 ‘천비향 이화생주’ 등이 있다. 2병 이상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이 가능하며, 다른 종류도 구매 가능하다. 의왕 백운호수 인근 산자락에 위치한 도가에 직접 들러 맛을 보거나 구매할 수도 있다. 매주 토요일 2시부터는 술빚기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경기도 의왕시 능안길 96-10
 031-424-8929   js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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