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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bread-그토록 빛나던 풀빵장수 아저씨

  • Editor. 손고은
  • 입력 2014.08.28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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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국화꽃 모양의 빵 안에 꽉 차 있는 달달한 팥소. 나는 추운 겨울날 호호 불며 먹는 풀빵을 참 좋아했다. 특히 시장 초입에서 365일 풀빵을 만들던 그 풀빵장수 아저씨의 것을 최고로 여겼다. 맛도 맛이지만 천원어치 봉지에 꼭 풀빵 한 개를 더 넣어 주셨던 정이 넘치는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풀빵장수 아저씨는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나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 
복사기와 제본기, 작은 인쇄기와 컴퓨터 한 대가 
전부였던 작은 인쇄소 집 딸로 태어났다.  

언제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끌시끌하고 가시지 않는 잉크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먹고 자는’ 생활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곳을 복덩어리라고 부르셨다. 두 분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한 덕이지만 그곳에서 일하시면서 번듯한 아파트에 자동차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부지였던 나에게는 그곳이 늘 불만이었다. 아니, 그곳에서 일하고 계신 아빠가 미웠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아빠는 이따금씩 허름하고 낡은 인쇄소 앞에서 작업복을 입고 까맣게 잉크로 물든 손으로 담배를 태우시곤 했는데 친구들과 함께 있는 하교길에 그 모습과 마주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싫었다. 왜 다른 친구들의 아빠들처럼 말끔한 정장에 반질거리는 구두를 신고 회사에 출근할 수 없는 것인가를 탓하며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하고 모른 척 애써 외면한 적도 있었다. 마치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과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는 ‘부모님 직업’을 주제로 발표하는 시간이 한창이었고, 발표는 자발적으로 하기보단 대부분 선생님의 지목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단상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온 아이가 있었다. 

“저희 아버지는 시장에서 풀빵을 만들어 팔고 계십니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가 만든 풀빵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습니다.”

아, 이 아이의 아버지가 풀빵장수 아저씨였구나! 순간 그 친구는 아버지 생각에 울컥했는지 툭 떨어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스윽 훔치고는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쭈뼛거리며 개미만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직업이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친구보다, 그저 회사에 다니신다고 말하는 친구보다 더 큰 박수를 받기에 마땅했다. 짧은 발표였지만 그 아이는 정확하게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를 알고 있었고, 그 노고를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또한 자신의 아버지를 분명 가슴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있음을 아홉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날 그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반에서 가장 빛나게 만들었고 나는 아빠를 가장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곧장 인쇄소로 달려가 아빠 품에 안겼다. 진한 땀 냄새로 아빠의 고된 하루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같은 반 친구들이 눈에 띄었고 나는 처음으로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우리 아빠야!”

그래도 살면서 부모님이 작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풀빵 장수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날 이후 아저씨 아들과 같은 반 친구라며 풀빵 두어 개를 더 넣어 주시곤 뿌듯해 하시던 그 눈빛을 말이다. 
 
글 손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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