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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INTERVIEW] 예산사과와인(주) 정제민 부사장- 새콤달콤 사과밭의 파수꾼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08.28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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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이 있는 곳엔 와이너리가 있다. 
예산 사과는 이 남자에 의해 와인이 된다.
한국 와인 양조의 최전선에 선 정제민이다.
 
사과밭에 선 정제민 부사장

까맣게 그을린 얼굴, 투박한 손. 농부일까? 예산사과와인(주)의 정제민 부사장 말이다. 그가 선 땅에는 2만 3,000여 평방미터 사과밭이 펼쳐져 있다. 정제민 부사장은 다가올 태풍에 대비해 바람막이 작업이 한창이었다. “재작년에는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사과가 다 떨어졌었죠.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이제는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안답니다.” 그가 농사에 관여하기 시작한 건 ‘추사’를 출시하게 된 2010여 년 즈음부터다. 스스로 초보 농사꾼임을 자처하는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줄곧 양조인이었다. 
 
새빨갛게 익은 꼬마사과
 
홈메이드 와인에 빠지다

정제민 부사장이 와인에 빠지게 된 최초의 기억은 약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시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 그는 이삿날 지하실에서 뜻밖의 선물을 발견했다. 잘 익은 와인 3통이었다. 
“직접 만든 와인이었습니다. 전 주인이 저희가 마실 술을 남겨둔 거였어요. 캐나다는 집에서 와인 담그는 문화가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는 텃밭에서 키운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자기 집 지하실에서 숙성을 시킵니다. 대개 이사를 가게 되면, 이사 올 사람이 와인을 담그고 숙성시킬 동안 마실 술을 남겨놓고 가는 게 전통이더군요. 특히 유럽에서 온 캐나다인의 집에 가면 백발백중 지하에 와인 숙성실이 있어요. 그네들의 식탁에는 항상 와인이 있어야 하는데, 유럽에서 가지고 오려면 비싸기도 하고 구하기도 어려우니 직접 만들어 마시는 거죠.”

캐나다인들의 삶 속에서 와인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누구나 직접 술을 만들고, 지인들과 나눠 마시는 가양주 문화. 그것은 한국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었죠. 우리 핏속에 술 만드는 DNA가 있는 겁니다. 지금도 많은 가정에서 약초나 과일에 소주를 부어 담금주를 담그지 않습니까? 술 담그고 싶은 욕구를 그렇게라도 푸는 거죠. 캐나다에는 동네마다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홈메이드 와인숍이 있습니다. 동네마다 떡집이나 세탁소가 있듯이 말예요. 직접 만든 와인을 숙성시켜 주는 곳이죠. 저는 그걸 ‘술방’이라 부릅니다. 캐나다의 술방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공방 개념의 술방이 있었으면 가양주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항상 아쉬워했죠.”
 
추사는 1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 후 출시된다
예산을 방문한 때는 8월 중순, 사과는 아직 덜 익었다
 
한국에서 술방을 차리기까지

결국은 ‘술 만드는 DNA’ 때문인 것 같다. 캐나다에서 몸에 밴 ‘와인 만드는 습성’으로 인해 한국에서 술방까지 차리게 됐으니 말이다. 정제민 부사장은 13년 동안 캐나다에서 쌓은 양조 내공을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와 2003년 양조 커뮤니티 ‘와인 만들기’를 개설하고 공방을 차렸다. ‘술은 담그고 싶은데 혼자 할 수는 없으니까’라는 이유로 사람들과 함께 와인을 만들고 교육도 했다. 

“그때까지는 취미였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교육을 했습니다. 당시엔 그뿐이었지만, 웬걸? 인기가 너무 좋은 겁니다. 말했잖아요. 우리 안에 술 만드는 DNA가 있다고요. 날이 갈수록 공방은 점점 확장됐죠. 그동안 번 돈은 그곳에 전부 쏟아 부었을 거예요. 3년쯤 지나니, 1년에 서너 차례 술을 만들러 전국을 다니고 있더군요. 무주 머루, 예산 사과, 고창 복분자, 영동 포도 등 국산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와인은 거의 다 만들어 봤습니다. 한번 떴다 하면 평균 200~300명이니 그때 팔아 준 과일만도 상당하죠. 우리끼리 품평회도 하고 축제도 하고. 그러다가 2004년에는 양조 도구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와인킷코리아를 설립했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술 만들기를 즐기게 되는 게 제 바람이었어요.”
사과와인과 그것을 증류한 사과블렌디가 세월의 맛을 입히고 있다
숙성 중인 블렌디를 빼내 향과 색을 점검한다
 
국산 사과로 이뤄낸 쾌거

시나브로 ‘와인 만들기’가 국내 최대의 와인 양조 커뮤니티가 되기까지, 정제민 부사장은 끊임없이 와인을 만들고 연구했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만의 와인을 출시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공방을 만들고 7년이 흐른 후였다. 녹록하지 않은 국내 와인 시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와인을 만들겠다고 하면 덜컥 공장부터 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 공산품으로서의 술밖에 만들어 내지 못하죠. 유럽에서는 지역, 사람, 풍토, 기후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어우러진 술에 그 지역의 정신을 담아냅니다. 술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의 문화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공장을 세우는 대신 축제를 열었다. 매년 2~3톤 가량의 사과와인을 만들어 축제에서 모두가 맛볼 수 있도록 나눠 주었다. 예산의 사과와인이라면 그 지역 축제에 기반이 되어야 하고,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포도가 아닌 사과를 선택한 이유요? 물론 저도 처음엔 포도를 찾았죠. 그러나 국내에서는 술 만들기에 적합한 양조용 포도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사과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품종은 아직 없죠. 예전에 많이 생산된 국광이나 홍옥이 사과와인에 훨씬 적합합니다. 허나 우리나라의 기후, 풍토, 문화에서는 포도보다 사과가 훨씬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건은 원료의 한계라는 말이었다. 현재 ‘추사’는 예산에서 생산하는 사과의 80%를 차지하는 후지 사과로 만들고 있다. 드라이한 와인을 만들기엔 신맛이 부족하고, 달콤한 와인을 만들기엔 당도가 부족하다. 정제민 부사장은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발효 전 당을 추가해 일정 수준의 당이 남은 상태에서 발효를 정지시키는 ‘아이스와인’ 방식으로 스위트와인을 만든다. 캐나다의 아이스와인과 다른 점은 원료다. 캐나다 아이스와인에 사용하는 사과는 발효 전 당을 추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당도가 높다.  

“우리나라의 단 술은 대부분 아스파탐 등 비 발효당을 첨가해서 달게 만듭니다. 사실 그게 더 맛있을 수 있어요. 소비자 입장에선 싸고 깔끔한 단맛이 나니까 더 선호하게 되고 제조자들도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그러나 저는 그런 방법은 쓰지 않습니다. 와인 방식으로 제대로 술을 만들죠.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술 품평회에서 상을 받고 난 후엔 쉽게 만들어 대량 생산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술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정제민 부사장의 작업 방식은 한마디로 ‘느리다.’ 예산사과와인(주)에서 판매하는 술은 오로지 ‘추사’ 한 종류다. 매년 빚고 있지만 드라이 와인은 아직 출시하지 못했다. 한 번 실패하면 사과를 수확하기까지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5년 이상 숙성시킨 블렌디도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때때로 그런 작업 방식은 반갑다. 기다림이 더해질수록 우리가 맛보게 될 즐거움도 더욱 커질 테니까.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수수보리 전은경(수수보리는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농가형 와이너리 100배 즐기기
예산사과와인(주) 와이너리는 농가형 와이너리다. 상시 양조장 투어가 가능하며, 애플파이나 잼 만들기 체험 등이 가능하다. 가을에는 사과 따기 체험이 인기다. 출시하자마자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과실주 부문에서 3년 연속 수상한 ‘추사’(2011년 장려상, 2012년 대상, 2013년 최우수상)는 1만8,000원에 구매 가능하다. 
충남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 501
041-337-9585
파이 만들기 체험 1인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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