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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PICTURE-그 많던 사진은 다 어디로 갔을까?

  • Editor. 신지훈
  • 입력 2014.09.30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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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사진앨범은 장롱 밑 미닫이장에 보관돼 있다. 엄마에게 가족 앨범은 결혼 때 받은 폐물들과 위상을 나란히 할 만큼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보라색, 남색,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등의 앨범을 고르는 일은 매우 신중한 작업이었고 나와 쌍둥이 여동생, 가족들의 사진은 한 장 한 장 단정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배열되곤 했다. 그중에서 내 앨범은 보라색이었는데, 페이지마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사춘기를 지난 어른이 되기까지 변화무쌍했던 나의 과거가 쌓여 있었다. 원래는 그랬었다! 과거형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비밀은 지금부터다. 
사춘기 시절 나는 그 보라색 앨범을 자주 열어 보곤 했다. 어린 시절이 궁금해서? 물론 아니다. 
 
그것은 나의 학창시절 찬란했던 연애사와 
관련된 일종의 ‘비행’이었다.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를 그 시절, 나는 여자 친구가 많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 친구가 바뀐 적도 있으며 
단 하루도 여자 친구가 없던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남녀가 사귀면 으레 서로의 사진을 주고받아서 다이어리나 지갑 속에 간직했다. 지금이야 휴대폰이 있으니 언제든지 사진을 찍어서 전송할 수 있고 서로의 배경화면에 담아 관계를 증명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필름의 시대가 아닌가. 휴대폰도 디지털 카메라도 없던 시절 인화된 사진은 유일한 정표이자 ‘연애 관계 증명서’였다. 그래서 그녀들의 손에 전해진 내 사진은 펀치로 구멍이 뚫린 채 연예인들의 사진과 나란히 다이어리 한 페이지를 장식하곤 했다.  

그 결과, 나의 보라색 앨범은 폐허가 됐다. 지금 내게 10대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귈 때마다 야금야금 한 장씩, 꽤 오랫동안 만난 여자 친구에게는 열 장도 넘는 사진을 줬으니 말이다. 결국 갓난아기 때의 사진만 남아서 사진을 더 이상 줄 수도 없었다. 새로운 여자 친구에게는 “아, 깜빡했네~”라는 핑계를 둘러댈 수밖에. 관계가 끝난 후 사진을 회수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나의 사진들은 무참히 폐기 처분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리 하였으니까. 

오랜만에 다시 장롱 문을 열었다. 여전히 미닫이장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나의 앨범, 그 폐허와 다시 마주했다. 밀려드는 죄책감과도 마주했다. 엄마의 보물을 팔아 그녀들의 마음을 샀던 철없던 시간들. 이제는 다시 구할 수도 재생할 수도 없는 엄마의 아들, 나의 유년의 모습들, 그 소중한 가치를 그 시절엔 미처 몰랐다.

앨범을 내 방으로 들고 왔다. 
나만 아는 깊숙한 곳에 숨겨 버렸다. 
엄마에 대한 죄송함은 물론이고, 
미래의 누군가가 나의 옛 사진을 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보라색 앨범을 내놓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고 그 이유를 설명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그렇게 어린 시절의 앨범을 유폐시켰다. 영원히 묻힐 나만의 비밀로. 그리고 이 과오를 씻는 유일한 방법은 그 폐허 위에 기억들을 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지금 쓰고 있는 이 반성문 같은 글, 부끄러움을 무릅쓴 고백의 글들. 그리하여 길이 남게 될 기록들. 

글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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