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Book] 캠핑이란 무엇인가 DNA 속, 역사 속 캠핑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4.10.06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캠핑을 해본 사람은 안다. 캠핑이 얼마나 인내심을 요하는 일인지를. 
문외한들은 자연 속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상상하지만 정작 캠핑은 자잘한 노동의 연속이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그런 점에서 캠핑이라는 원시적인 생존본능이 인류의 DNA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는 책 <캠핑이란 무엇인가>를 완독한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캠퍼에게도 좌우가 있다고?

수렵과 채집 등 구석기 생활을 묘사하는 데나 쓰일 법한 단어들. 좌파와 우파 등 냉전이나 이념을 이야기할 때에나 쓰일 단어들. 이런 단어들을 동원하여 캠핑을 설명하는 남자는 정말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남자일 것만 같다. 영국 출신의 소설가이자 방송인인 매슈 드 어베이투어Matthew De Abaitua도 오죽하면 캠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진지한 캠퍼’라고 정의하겠는가. 그의 사상을 검증하기 위해 <캠핑이란 무엇인가>를 정독하자니, 이건 실용서가 아니라 인문서다.

저자는 거침없이 뇌의 근육을 드러낸다. 엄청난 애독가만이 도전할 만한 100년 전 고전들을 꺼내어 캠핑의 역사를 줄줄 엮어낸다. 현대 캠핑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토머스 히럼 홀딩Thomas Hiram Holding이 썼던 <캠퍼들을 위한 안내서>로는 모자라 급기야 <성경>까지, 모세와 이사야의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책의 목차는 1장 배낭 꾸리기와 텐트 치기부터 캠프파이어의 부름, 완벽한 야영장, 캠핑의 필수품들 등을 거쳐 마지막 10장의 캠프 철거까지 평범한 흐름이지만 사실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캠핑에 관한 책에서 보이스카우트의 창시(1907년)자인 영국의 전직 군인 로버트 베이든 파월 같은 사람을 왜 알아야 할까 싶지만 그가 <시턴 동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Earnest Thompson Seton이 주도했던 숲살이 운동에서 많은 것을 표절하였다는 것을 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시턴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인간을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고, 베이든 파월은 군인을 만들려는 목적을 가졌다.” 저자는 미련 없이 왼쪽의 길, 시턴을 따라 이어지는  나체주의, 채식주의, 페미니즘, 환경보호 운동 등 20세기 진보적 운동들을 향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캠핑의 역사를 더듬는 여정에는 (역시 베이든 파월과 대립했던) 하그레이브가 창설한 키보 키프트 혈족, 숲살이 기사단 등의 낯선 운동들도 등장하고 히틀러의 나치즘까지 맥락이 이어진다.  

그러나 진지하기만 하다면 누가 이 책을 읽겠는가.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이 연상될 정도로 냉소적인 위트가 넘치는 대목과 상황묘사들이 톡톡 튄다. 
‘배낭을 꾸리려면 꾹꾹 눌러야 하고, 그렇게 힘껏 누르는 데는 어느 정도의 분노가 필요하다.P18, 캠핑 꾸리기와 텐트 치기’ 

한 예로 캠핑 초보 때 그는 유럽의 저가항공인 라이언에어를 타고 캠핑을 갔는데 수화물 규정 때문에 텐트를 직접 끌고 탑승해야 했었다. 당시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텐트 가방 밑에서 발견한 흙의 샘플을 채취해 검사까지 당했던 수모를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행히도 검사 결과 내 텐트 곳곳에 묻은 흙은 갈색 헤로인 더미 위에서 캠핑하는 바람에 묻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흙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P24, 배낭 꾸리기와 텐트 치기’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진지함과 위트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연필을 들어 줄을 치고 싶은 대목들도 등장한다. 그가 역설을 통해 캠핑에 대한 어긋난 시선들을 교정해 주고 있기 때문. 예를 들어 그는 ‘캠핑은 자유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다지만 사실 캠핑은 즉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 철저하게 준비하고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장비병’이라는 부작용을 겪게 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명확하다.  

‘내게 캠핑하는 법은 자연이 주는 어려움은 되도록 줄이면서 자연이라는 타자를 최대한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장비를 너무 많이 가져가면 땅이 주는 신비로운 속성을 놓치기 쉽다. 너무 적게 가져가면 신체적인 불편함과 불쾌함 때문에 고상한 생각들은 모조리 달아나 버릴 것이다.P41, 배낭 꾸리기와 텐트 치기’ 

그렇다면 무엇이 중도일까. 그 답은 물론 끝까지 책을 읽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이 묵직한 책을 다 읽어낼 정도의 인내심을 지니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중도를 아는 캠퍼가 될 충분한 자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텐트를 지고 걸어오라. 캠핑에 대한 가장 진지한 사색의 캠프로. 
 
 

캠핑이란 무엇인가
도시에 살지만 일년에 한달 이상 아내와 세 자녀를 데리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의 자연을 찾아다닌다는 저자는 작가이자 방송인이다. ‘캠핑에 대한 모든 것’ 류의 책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지만 대부분 실전을 위한 가이드북의 성격이 짙었다면 이 책은 캠핑의 역사와 철학과 정신, 캠핑의 근본적인 가치까지 탐구하고 있다. 원제는 무려 ‘The Art of Camping’. 영국인 저자는 영국과 미국의 사례들을 주로 다루고 있어서 다소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지만 캠핑에 대한 시선에도 극우나 좌파, 진보의 길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역사가 아니면 몰랐을 부분이다. 책에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는 것이 아쉽다면 저자의 개인 홈페이지를 방문할 것. 생생한 캠핑스토리들이 가득하다. 
 www.cathandmathcamping.com  매슈 드 어베이투어 글 | 김훈 옮김 | 민음인 | 1만6,000원
 
글 천소현 기자  사진제공 민음인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