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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INTERVIEW] 맥주 양조자 필립 랭크모어-Delicious Beer? Craft it!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10.08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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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밖에 할 줄 모르는 호주 청년 ‘필립’.
그가 한국에 온 건 맥주 양조장을 차리기 위해서다. 
미처 알지 못했던 호주 크래프트비어가 여기 있다.
 
맥주 양조자 필립 랭크모어 Phillip Rankmore
 
필립이 만든 크래프트비어. 맥주에 따라 다른 잔에 서브된다
필립이 시음 중인 갤럭시IPA는 홉의 향이 두드러지는 맥주다
 
사랑에 빠진 서울, 양조장을 꿈꾸다

필립은 호주에서 나고 자라 호주에서 공부하고 호주에서 일을 한 호주 토박이 청년이다. 한국에는 여행차 2009년 처음 들렀었다고. 아직 한국말도 서툰 그는 한국에 맥주 양조장을 차리기 위해 이 땅에 정착했다. 무엇보다, 서울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전 세계를 여행했지만 서울만큼 저를 사로잡은 곳은 없었어요. 서울이 가진 대도시로서의 에너지는 물론이고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동네들이 무척 좋았어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태원, 골목마다 특이한 가게로 가득 찬 홍대처럼 말예요.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부산, 대전, 광주 등을 여행했는데 결코 실망한 적이 없어요.”

그런 그에게 딱 하나 아쉬웠던 것이 바로 맥주였다. 좋은 맥주가 없다는 것. 그가 말하는 좋은 맥주란 고장의 특색을 담은 맥주,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는 맥주를 의미한다.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맥주를 많이 마시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맥주 소비량 전 세계 3위). 그렇다고 좋은 맥주를 마셨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맥주는 비싼데 많이 마시려고 하니 값싸고 물을 탄 듯 밍밍한 맥주를 주로 마시곤 했죠. 그러나 오늘날 호주에서는 다양한 크래프트비어를 마실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아닌 작은 양조장에서 독립적으로 만든, 한국에서 흔히 수제맥주라 부르는 맥주 말입니다. 젊은 세대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정착됐죠. 현재 호주에는 약 300개의 양조장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호주와 한국은 제법 닮은 듯하다. 최근 한국에서도 대기업에서 출시한 맥주의 밍밍한 맛에 싫증을 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맥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작은 양조장에서 독립적으로 만든 크래프트비어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필립이 한국에서 맥주를 만들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면 언제나 그 지역의 유명한 양조장이나 펍을 찾아다니곤 해요.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도 크래프트비어를 파는 펍이 생긴 걸 알게 됐죠. 이태원 경리단길의 맥파이Magpie, 크래프트웍스Craftworks 같은 곳이에요. 이 작은 골목에서 무언가 시작되고 있음을 직감했고 한국에서 양조장을 차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당시 한국에서 크래프트비어는 몹시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했죠. 제가 다시 한국에 왔을 때는 이미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있더군요.
 
다들 이것을 열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이미 아시아 전역에 엄청나게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요. 한국이 좀 늦은 이유는, 그저 몰랐을 뿐이에요, 맥주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요!”
 
호주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그는 호주스타일 크래프트비어를 선보인다
위에서부터 맥주의 원료인 맥아, 홉, 이스트다
 
홈브루어에서 양조자가 되기까지

밍밍한 맥주에 길들여졌다고 해도 크래프트비어를 접하게 되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필립이 그랬다. 그가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계기는 더 이상 맛없는 맥주를 마시고 싶지 않아서였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맥주를 막 마시기 시작했을 때는 맥주란 맛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친구들끼리 주로 마시던 맥주는 ‘VB’라 불리는 ‘빅토리아 비터Victoria Bitter’인데, 비터라고는 해도 쓴맛도 강하지 않고 향도 거의 없었죠. 그러다 우연히 크래프트비어를 맛보았어요. 맥주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계속 이렇게 맛없는 맥주를 마실 바엔 직접 만들어 마시자, 그게 시작이었어요.”

취미로 시작한 맥주 양조는 대학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그의 삶에 들어왔다.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엔지니어로서의 일을 그만두고 그가 살던 동네의 양조장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양조에 관한 책이라면 모조리 읽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 교육기관인 시카고 시벨 인스티튜트Siebel institute에서 맥주 양조 과정을 밟았다. 노력 끝에 그는 정식으로 양조자로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그가 호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리버사이드 양조장Riverside Brewing Company’에서 말이다.

“맥주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양조의 시작은 맥주를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하죠. 많은 맥주 애호가들이 가정에서 맥주를 만드는, 즉 홈브루잉Homebrewing을 하는 이유입니다. 대형 양조장이 아니어도 직접 작은 양조장을 차려 나의 맥주를 출시할 수 있죠. 그게 크래프트비어이고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맥주 전문가가 되려면 홈브루잉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집에서 맥주를 만드는 것과 공장에서 맥주를 만드는 것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죠. 저는 오랫동안 홈브루잉을 한 이후 상업맥주로 입문하기 위해 양조장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불행히 한국에는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양조장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책을 많이 읽고 스스로 훈련해야 합니다. 책을 한 권 사는 것이 맛없는 맥주를 만들어 모조리 버리는 것보다 값이 싸기 때문입니다.”
 
필립이 만든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서래마을 크래프트브로스  
크래프트비어 각각의 특징을 담은 탭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크래프트브로스에서는 다양한 병맥주를 사가거나 마실 수 있다
 
호주 맥주에 대한 오해와 편견

필립은 올 여름 ‘퍼시픽 에일Pacific ale’을 선보였다. 대부분의 호주 양조장에서 여름마다 내놓는 ‘서머 에일Summer ale’이다. 맥주라고 하면 으레 여름에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계절 맥주를 즐기는 나라에서는 서머 에일, 윈터 에일 등 계절마다 다른 종류의 맥주를 즐긴다. 퍼시픽 에일은 알코올도수가 높지 않고 과일 향과 맛이 두드러지는 맥주다. 그는 한국에서 첫 번째 선보이는 맥주로 전형적인 호주 스타일의 맥주를 선택했다.

“호주 맥주도 맛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호주 크래프트비어는 거의 없어요. 수입되는 병맥주는 몇 종류 있지만 그리 추천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맥주를 직접 만들게 만든 맛없는 맥주들이니까요. 그런 맥주만 접한다면 호주 맥주에 대해 저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호주에는 깜짝 놀랄 만한 맛있는 맥주가 많이 있어요. 우리는 우리만의 스타일이 있죠. 그런 것들을 보다 잘 알릴 수 있도록 저는 계속 호주 스타일 맥주를 만들 예정이에요.” 

호주 크래프트비어는 미국 크래프트비어보다 가볍다. 평균적으로 알코올 도수도 좀더 낮고 쓴맛도 덜하다. 필립은 이 같은 호주 크래프트비어의 특징이 한국인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두 번째 맥주인 ‘갤럭시IPAGalaxy IPA’에서 그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대개 ‘IPAIndia Pale Ale’라는 맥주 종류는 맥주의 쓴맛을 내는 홉을 과다 투여하여 몹시 쓰지만, 이 맥주는 쓴맛보다는 갤럭시라는 홉이 가진 열대과일의 향과 맛에 집중했다. 올해 호주 태즈매니아 홉 농장에서 생산한 갤럭시 홉을 직수입해 만들었다. 호주에서 생산하는 홉만을 사용해 호주 맥주의 특징을 다시 한번 드러낸 셈이다.

그의 바람은 단지 호주 스타일 맥주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재료를 이용해 한국적인 맥주 맛을 찾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다. 인삼이나 생강, 복분자 등의 향신료와 과일로 꾸준히 실험을 하고 있다. 그의 세 번째 맥주가 한국 벌꿀로 만든 ‘허니 포터Honey Porter’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흑맥주인 허니 포터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 빨리 마실 수 없지만 따뜻한 바에 앉아 벌꿀의 향을 음미하며 마시기 좋은 맥주다. 올 겨울 출시할 예정이다.  

필립은 허니 포터를 포함해 올해 안에 4가지의 맥주를 더 만들 계획이다. 한국의 다른 양조장과도 손을 잡고 맥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실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라는 그의 신조대로 필립만의 한국적인 맥주가 탄생하길 기대하는 바다. 

에디터 천소현  글·사진 수수보리 전은경(수수보리는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촬영협조 크래프트브로스

필립의 맥주를 마시려면
이태원 락스프릿츠와 서래마을 크래프트브로스에 가면 된다. 앞으로 출시하게 될 그의 맥주는 언제나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락스프릿츠Rocks frites   서울 용산구 신흥로 56  070-8874-4156  
월-목요일 18:00~01:00, 금요일 18:00~02:00, 주말 16:00~02:00
크래프트브로스Craftbros   서울 서초구 반포동 106-7 02-537-7451  
www  craftbros.co.kr   평일 17:00~01:00, 주말 1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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