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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한달음 南都山海 좋을시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11.04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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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가면 갈수록 짧게만 느껴지던 야속한 가을이 올해는 이른 추석을 보낸 뒤라서 한결 여유롭다. 산으로 가끄나, 바다로 가끄나. 욕심을 부리니 그 가을의 길목에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허 참, 괜한 고민을 했다. 기차에 몸을 실으니 남도산해南都山海가 이리도 가차운데.
 
무등산 정상부 서석대 주상절리 머리 위에서 내려다본 광주광역시
 
산山  광주 무등산 + 담양 소쇄원  
해海  여수 좌수영 + 해남 우수영
 

KTX 무등산 비경 탐방
용산역-광주송정역 구간 KTX 기차와 전용 차량을 이용하여 첫날 무등산 국립공원의 천연기념물 주상절리대 코스를, 이튿날에는 담양 소쇄원과 메타세콰이어길 등으로 연결되는 무돌길을 쉬엄쉬엄 거니는 트레킹 상품이다. 하루는 무등산 정상을 타고 넘는 옛길, 또 하루는 무등산을 크게 두르는 무돌길을 에두르니 무등 비경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주)남해관광 02-6365-7070(서울), 
062-225-5544(광주)

이순신 전라 좌수사 체험 기차여행
남도해양관광열차 S-train을 이용하여 이순신 장군의 기상이 서려 있는 여수, 옛 전라좌수사를 여행할 수 있는 당일치기 기차여행 상품이다. 이순신 장군의 출정식을 재현한 <출정을 고하라> 관람을 시작으로 이순신광장, 진남관, 고소대 등 이순신 관련 유적을 차례로 탐방한다. 뿐만 아니라 오동도 산책, 레일바이크 탑승, 수산물 특화시장 장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실제 드셨다는 ‘이순신 밥상’을 맛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주중 8만8,800원, 주말 9만3,500원(식사 불포함)
 여수엑스포역 061-749-2640  www.korail.com

KTX와 함께하는 구석구석 남도 힐링투어
수려한 자연은 기본이요 역사·문화·음식까지 남도의 멋과 맛에 듬뿍 취할 수 있는 여행상품이다. 특히 KTX 서남권 프로그램은 1박 2일 일정으로 용산역-광주송정역 구간 KTX 열차를 왕복 이용하고, 광주송정역에서부터는 전용차량을 이용하여 명량대첩의 주요 무대인 해남 우수영 울돌목과 해남 땅끝마을 등 남도 끝자락을 속속들이 여행할 수 있다. 조금 더 자유로운 여행을 원한다면 KTX 왕복 티켓과 호텔 할인 예약이 가능한 KTX텔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주)남해관광 02-6365-7070(서울), 
062-225-5544(광주)
 
무등산에 가을을 알리는 억새바람
여수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레일바이크
우수영의 담장 사이로 울돌목을 내다보고 있는 이순신 동상
 
●山 광주 무등산 옛길 + 담양 무돌길
초록이 모여 쪽빛을 퍼트리는 무등 너머로

무등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다. 광주역과 버스터미널은 물론이고 주요 도심에서 무등산 등반에 가장 대표적인 출발점인 원효사 입구까지 시내버스가 오르내린다. 몇 번 버스를 타야 할지는 해발 1,187m 무등산 높이만 알면 된다. 무등산행 1187번 버스. 누구의 생각인지 재치가 그만이다. 이제는 두 다리가 시동을 걸 차례다. 원효사 입구에서부터 느티나무, 팽나무, 단풍나무 등 신록이 우거진 산길을 걷는다. 10월 언저리라 그런지 아직 울긋불긋 단풍은 구경하기 어려웠지만 초록 잎사귀 가운데 간간이 볼그레한 빛이 물들어 있으니 왠지 더 반가운 기분이 든다. 그렇게 두 시간여를 걸으면 장불재에 닿는다. 탁 트인 산등성이에 억새가 바람 따라 몸을 누이니 그 몸짓 따라 콧노래를 흘려 보낸다.

장불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억새 틈을 비집어 길을 나선다. 고개 들면 보이는 주상절리 입석대가 지척이다.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급격히 식을 때에 부피가 수축되면서 규칙적인 틈새가 생긴다. 
이때 그 틈에 의해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이나 삼각형의 긴 기둥 모양으로 형성되는 지형을 주상절리라고 한다. 보통 해안지대에 형성되는데 무등산 정상부의 입석대와 서석대 역시 약 7,000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상절리 지형이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용암 분출이라기보다는 화산재가 압력을 받으면서 형성된 것으로 산꼭대기에 이 같은 주상절리가 형성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어쩌면 원효사에서 장불재까지 세 시간여의 산행보다 입석대를 거쳐 서석대까지 주상절리 돌기둥이 무너져 쌓인 너덜겅을 타고 오르는 0.9km 남짓의 주상절리 구간이 더 버거울는지 모르겠다. 억새 잎을 날갯짓하게 만드는 가을바람이 귀 뒤를 얼얼하게 만드는데도 가슴팍은 후끈거리고 목 깊숙한 곳에서 살짝 비릿한 내가 올라왔다. 무등산 옛길을 따라 산꼭대기 가파른 비탈에 병풍처럼 도열한 주상절리 서석대 위를 막 밟았을 때에 말이다. 가다 멈추면 아니 간만 못하나니, 아득하게 물결치는 산자락이 빛고을 광주를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숨이 차올라도 꾹 다물고 있었던 입술이 절로 벌어진다. 무등에서는 초록도 동색이 아니거니와 무등 너머로 초록이 쌓여 쪽빛을 퍼트리는 풍경이라니. 아! 이 단말마밖에는.

무등을 넘는 옛길만큼이나 무등 언저리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시골길을 에돌아 걷는 ‘무돌길’도 못지않은 운치를 뽐낸다. 무등 자락이 여러 지역으로 발을 뻗고 있으니 약 50km 무돌길을 모두 걷자면 광주에서 담양, 화순을 거쳐 다시 광주에 이르게 된다. 15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내키는 구간을 골라서 거닐어도 좋다. 버스 한두 정거장 거리도 걷는 게 쉽지 않았던 날들에 빚을 진 것마냥 걷고 또 걸어 본다. 예부터 광주 사람들은 무등을 어머니 산이라고 했단다.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고 포근하다고. 걸어 보니 알겠더라. 그 길 참 정답더라. 
 
누구의 잠자리인지 야트막한 묘 하나를 든든히 지키고 선 입석대 주상절리
해발 1,187m의 무등산이지만 정상부에 공군기지가 있어 등산객은 1100고지 서석대 위까지만 오를 수 있다
가을 억새 사이로 정다운 걸음을 옮기는 등산 커플
소쇄원 제월당 48영 목판 시문.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문이 제월당에 걸려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소쇄원의 대나무숲

●海 여수 좌수영 
강강술래 치맛자락, 출정 외침을 바람에 태우고

전군 출정하라! 그 우렁찬 목소리를 들었다. 남도해양관광열차 S-train을 타고 여수엑스포역에 내렸을 때다.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 좌수군의 출정식이 거행됐다. 한산도대첩에서 명량해전까지 수군의 격전지가 줄곧 주목을 받아 온 탓에 정작 당시 수군의 주진이었던 여수 좌수영은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차에 여수엑스포역 광장에서 그날이 재현됐다. 수군들의 차림새와 몸놀림에 다부진 기운이 꽉 차 있다. 

장군의 흔적을 찾아 진남관으로 향했다. 여수항을 곁에 둔 이순신 광장에서 종고산 비탈을 오르는 길에 진남관이 기다리고 있다. 본래는 이순신이 이끌었던 전라 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인데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599년, 지금의 객사로 다시 지었다. 당시 궁을 제외하고 지방에 세워진 목조건축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이다. 

비탈 아래로 고개를 돌린다. 여수 시내와 여수 앞바다 그리고 돌산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장군의 시선도 그 어디쯤에 머물렀겠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시선, 그의 생각을 좇아가 보는데 솔직히 가늠되질 않는다.  

진남관 앞마당 담장 곁에 서 있는 여수석인도 인상적이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 만드는 데 힘을 쏟는 동안 왜군의 공격이 심해지자 7개의 석인상을 만들어 세워 놓았더니 왜군들이 이곳을 피해 공격로를 찾다 매복에 걸려 잡히기 일쑤였다고 한다. 7개 가운데 하나만이 남았는데 이제는 왜군을 걱정할 일이 없어서인지 바다를 등진 채 진남관을 지키고 섰다. 

진남관 아래 이순신 광장에서는 강강술래 공연이 한창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부녀자들이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자 색 고운 치맛자락이 물결친다. 아마도 이 바람에 실려 이순신 장군의 출정 외침이 바다 멀리 뻗어가지 않았을까. 한편으로 오늘의 강강술래는 이리 웃으며 즐길 수 있지만 그때의 강강술래는 구슬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퍼런 바다로 사내들을 내보내는 아녀자들의 심정, 그네들을 두고 필사즉생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의 각오로 발걸음을 떼야 했을 사내들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마주하는 짧은 여정만으로도 맘속에 꽤 묵직한 파장이 일었다.
 
이순신 광장에서 여수 아녀자들이 강강술래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되짚게 하는 여수 진남관

●海 해남 우수영 
바다가 운다, 배를 띄워라

빠르게 흐르는 물살이 수면 아래 암초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마치 바닷목이 우는 것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 울돌목이다. 울돌목을 한자식으로 표현하면 울 명鳴에 들보 량梁을 써서 명량鳴梁이다. 빠를 때에는 13노트, 시속으로 따지면 24km에 가까울 만큼 숨이 가쁘다. 동네 어르신 말씀으로 ‘일곱물 사리 때’가 가장 드세다 했다. 그게 언젠지 갸우뚱 했더니 바다사내는 눈치껏 ‘보름달 뜨는 날’이라 덧붙여 준다. 그래, 그날 그 달빛 아래 아낙네들은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 회오리 바다 꼭 닮은 원을 휘휘 그렸겠지. 

진도 망금산 꼭대기 진도타워에 오르면 진도 앞바다 너머로 옛 우수영 자리와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이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이상도하지. 그러니까 1597년 9월의 보름날, 왜선 330척 가운데 133척이 저만치 앞에 도열했는데 고작 13척뿐이었던 이순신의 수군이 어찌 승전을 하였을까. 문화관광해설사의 옛 이야기에 귓바퀴가 씰룩댄다. 선승구전先勝求戰이라고 했다. 승리를 확보한 후에 전쟁에 임한다는 말인데 더 구체적으로는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고 전투를 한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은 늘 전투 장소를 선점하고 적을 그리로 유인했다고 한다. 명량해전도 마찬가지였다. 혹여나 적군에 밀리게 될 경우 울돌목을 등 뒤에 두면 사지에 내몰리게 되기에 울돌목을 사이에 두고 왜군과 대치하게끔 우수영에 진을 쳤다. 울돌목은 물살도 빠르지만 그 폭이 좁아 왜선이 한번에 대 여섯 척밖에 들어올 수 없었던 것도 이순신의 선승구전 지략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잔잔했던 물살이 점점 가빠진다 싶더니 이내 뱅글뱅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자석에 이끌리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뭍에 서 있는데도 그 물살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에 스멀스멀 매스꺼운 기운이 올라왔다. 물살이 빠른 날도 아니라는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두커니 진도 앞바다를 향해 서 있는 해남 우수영 울돌목 앞에서 이내 마음의 여지없이 휩쓸리고 만다. “바다가 운다, 배를 띄워라.” 이리 명하지 않았을까. 귓전에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진도대교가 가로지르는 회오리바다 울돌목이다
해남 우수영 국민관광지내의 명량대첩탑. 명량대첩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탑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광주 | 광주광역시, 한국관광공사 광주전남협력지사, 코레일  해남 | 전라남도, 한국관광공사 광주전남협력지사, 코레일  여수 | 여수시, 코레일 전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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