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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가족여행-어머니의 트래블포비아Travel Phobia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4.11.04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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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많다. 의외로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어머니가 그렇다. 가족 여행이라도 한번 가려면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어머니를 설득하는 과정이 더 지난하다. ‘싫어, 안 가!’라는 첫 대답을 ‘아, 알겠다고!’로 바꾸기 위해 나는 이번 여행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열심히 제시해야 하고, 그게 허언이 되지 않도록 완벽한 여행을 ‘진행’해야 한다. <꽃보다 할배>의 서진이가, <꽃보다 누나>의 승기가 바로 나다. 

어머니의 트래블포비아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고 있다. 막내아들을 얻을 때까지 딸 다섯을 줄줄이 낳아 대가족의 가장이 된 할아버지는 생전에 이웃, 친척들과 함께 가는 가족나들이를 꽤 즐기셨다고 한다. 물론 그 여행에서 할아버지의 역할은 술 마시기 좋은 명당을 탐색한 후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을 드시는 일이었다. 이쯤 되면 아이들은 안주 나르느라 바쁜 엄마의 화를 돋우지 않도록 저희들끼리 자립하여 놀 줄 알아야 하고, 그 총책임자는 첫째 딸인 우리 어머니의 몫이었던 것. 교복을 직접 다려 입는 것은 물론이고 등교 전에 밥을 지어놓고 자기 전엔 동생들을 씻기는 일까지, 사춘기에 이미 심부름과 집안일에 이골이 난 어머니는 이 ‘나들이’가 그토록 싫었다고 했다. 

경험의 부작용은 선입견이다. 
어머니의 의식에는 ‘여행은 귀찮고 성가신 일’이라는 각인이 굳은살처럼 박혀 버렸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트래블포비아를 겪은 적이 있었다. 글과 사진을 위해 재미와 여유를 포기해야 하는 ‘출장들’에 신물이 나서 여행잡지 기자를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때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 어떤 기록도 하지 않았던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트래블포비아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는 결국 첫째 딸의 결혼식 몇 달 후 돌아가셨다. 

스무살 새댁이 시작한 친정살이가 반지하 사글세방, 단칸방 전세, 산동네 내 집 마련, 재개발 아파트로 변천하는 동안 어머니에게 여행은 사치였다. 

여행뿐이 아니다. 그녀의 가족에 대한 헌신은 강박적이다. 어쩌다 가족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어머니는 고기를 굽고 반찬을 챙기고 손주를 먹이느라 잠시도 가만히 계시질 못한다. “엄마, 그냥 앉아서 고기 드시면 안 되겠쑤?” 식사 내내 어머니의 안절부절함을 견디는 일이 내게는 가장 큰 곤욕이다. 

어머니의 트래블포비아는 아주 조금 나아졌다. 오빠의 사려 깊은 운전과 나의 용의주도한 숙소와 메뉴 선택 등으로 ‘쾌적한 여행’을 몇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에게 원치 않는 여행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60년을 넘게 살아도 극복되지 않는 ‘포비아’라면 이미 제거할 수 없는 굳은살이 되어 버린 것 아닌가. 물론 포기하지는 않았다. 즐겁고 유쾌한 기억 한 자락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나는 또다시 서진이처럼, 승기처럼 쩔쩔매며 가족여행을 계획한다. 마치 어린 동생들을 위해 가족나들이마다 궂은일과 심부름을 도맡아 했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챙김’과 ‘보살핌’ 없이 가족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 헌신의 역할이 ‘젊었던 부모’에게서 ‘젊어진 자식’에게로 이전되는 동안 우리 가족의 여행이 비교적 안전하고 적당히 행복했던 것은 모두 어머니의 헌신 때문이었음을. 
 
글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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