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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COUNT-나에게 남은 21개월

  • Editor. 양이슬
  • 입력 2014.12.05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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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앞에는 
초 하나가 꽂힌 케이크가 있다. 

치맥이 단골 메뉴지만, 때로는 싱싱한 회가 올라오기도 하고 족발에 보쌈이 자리할 때도 있다. 채널을 돌려가며 공중파 3사의 연말 시상식을 보다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채널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초에 불을 붙이고 티비도 전등도 끈다. 곧 이어 촛불도 꺼진다. 매년 12월31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카운트다운을 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우리 집 풍경이다.

12월31일은 꼼짝없이 고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무조건 온 가족이 한곳에 모여 지난 한 해의 묵은 얘기와 새로운 한 해의 기대감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한 해의 마지막도, 시작도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는 무언의 규율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2월31일을 친구들과, 연인과 보내 본 적이 없다. 들썩들썩한 제야의 종소리 현장에 있었으면 했던 20대 초반에는 이 연례행사가 불만이었다. 

우리 가족만의 기념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빠였다. 초등학생 때 갑자기 ‘매주 토요일은 거실에서 자는 날’을 지정(?)했다. 덕분에 매주 토요일, 온 가족이 거실에 이불을 펴고 토요미스테리를 보며 잠드는 것이 당연시됐다. 거실에서 자는 날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다 대학 진학과 함께 흐지부지되어 버렸지만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면 으레 거실로 하나둘 이불을 끌고 나와 함께 잠든다. 어느 해 10월31일에는 가족이 함께 외식을 했다. 그날은 10월31일이었고, 함께 먹은 것이 곱창이었기 때문에 10월31일은 ‘곱창 먹는 날’이 되어 버렸다. 그날 이후로 10월31일에는 어김없이 단골 곱창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전, 카카오톡의 단체 대화방을 통해 친구가 링크를 보냈다. “너희가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보낸 링크는 모 기업의 광고였다.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라고 시작하는 동영상은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문진표를 통해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물었다. 잠자는 시간, 일하는 시간, 지인과 보내는 시간 등을 작성하자 건강검진 결과에는 남은 시간이 표기돼 있었다. 길게는 3년11개월부터 9개월, 짧은 사람은 고작 7개월뿐. 앞으로 남은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었다. 

문진표를 통해 나의 생활 패턴을 입력하고 보니 
나에게 가족과 함께할 남은 시간은 고작 21개월. 
2년도 채 안 되는 21개월.

대학 입학 이후 시작된 타지생활은 직장생활로 이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매주 집을 찾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곱창 먹는 날도, 거실에서 자는 날도 빼먹기 일쑤다. 부모님 품 안에 있던 세 명의 자식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 버린 탓도 있겠지만 그때보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기에 소홀해졌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출장이라도 다녀온 뒤에는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싶지 않은 날이 더러 있다. ‘다음에 가지 뭐’라며 뒤로 미룬 날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동안 나름 자주 고향을 드나들었다 생각했지만 앞으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21개월이라고 생각하니 커다란 둔기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다(물론 그 시간이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처음으로 올해 12월31일에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올해도 역시나 버스 티켓을 예매하기로 했다. 나에게 남은 21개월을 단 하루라도 늘리기 위한 ‘바른 결정’이라고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것이니까. 
 
글 양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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