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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COUNT-Blind date in Christmas-eve

  • Editor. 손고은
  • 입력 2014.12.05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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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나는 연애에 젬병이다. 다섯 손가락으로도 셀 수 있는 옛 남자친구들과 짧게는 한 달, 길어야 석 달을 채우지 못하고 끝이 났다. 

짧았던 만남이지만 이별 이후의 헛헛함과 외로움은 마치 공식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이 돌아온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울고불고 청승을 떨기에는 함께한 시간이 너무도 짧았고 그렇다고 곧바로 다음 연애를 할 수 있을 만큼 어장 관리에 충실하지도 않았다. 

스무 살, 나는 첫 연애를 두 달 만에 매듭지은 후 지인들을 총동원해 소개팅을 받았다. 당시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웃고 떠들며 보내는 시간이 지난 연애를 자연스럽게 극복하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다시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첫 번째 소개팅에서는 학교 선배의 친구를 만났고 두 번째에서는 친했던 언니의 대학 동기를 만났다. 그 뒤로는…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해도 해도 너무 했으니까! 금요일을 포함한 주말 스케줄은 소개팅으로 차곡차곡 채워졌고 어떤 때는 하루에 두 탕, 일주일에 3회까지도 일정(?)을 소화하는 신공을 발휘했다. 게다가 나의 소개팅은 꽤 국제적이기까지 했다. 가벼운 자리였지만 세부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는 필리핀 남자를, 뉴욕에서 몇 개월을 보낼 때는 파견 차 잠시 머무르고 있는 일본인 남자까지 소개받았다. 한 번, 두 번 소개팅의 횟수는 점차 늘어 4년 사이에 40번을 넘어서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쯤 되니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40번이 넘도록 줄기차게 받은 소개팅에서 연인으로 발전된 경우는 고작 한 번뿐이었으니. 성공률은 4%가 채 되지 않는 셈이었다. 

그러던 3년 전 어느 겨울날, 매서운 칼바람보다 시린 외로움에 몸을 떨던 때였다. 마침 누군가로부터 흥미로운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날짜는 12월24일. 그것은 나의 50번째 소개팅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하는 소개팅이라…. 왠지 모르게 지금껏 이날을 위해 소개팅 횟수를 세 왔던 것만 같은, 그래서 이번이 나의 소개팅 열전에 종지부가 될 것만 같은 달달한 향이 훅 끼쳤다. 결국 나는 큰 키에 수더분한 얼굴, 단정하면서도 맵시 있는 옷차림으로 기억되는 그와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마주 앉았다. 그동안 쌓은 내공으로 자연스럽게 그의 취미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를 물으며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시시껄렁한 농담에도 방긋방긋 웃고 그가 이야기를 할 때에는 두 눈을 마주치면서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도망치듯 레스토랑을 빠져 나왔다. 

처음 만난 사람과의 불편한 식사, 
서로 탐색전을 펼치고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도 치장을 하게 되는 소개팅. 

그런 자리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면서도 그날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이브 아닌가!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그런 날에 데면데면한 이와 불편한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50번째 소개팅 이후 달라진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 12월24일과 같은 각종 기념일 근처의 날들은 흉일로 여기고 반드시 피했다. 둘, 소개팅 횟수를 세는 일을 그만 두었다. 괜한 숫자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도 여전히 소개팅 성공률은 바닥을 치고 있지만.  
 
글 손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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