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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力 INTERVIEW] 예술 주조 정회철 대표-전통주를 위한 그의 변론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12.08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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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돈, 한 손엔 명예를 쥐고 있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다. 그러나 움켜쥐고 있던 것을 훌훌 털어내고 나니 거기에 행복이 있었다. 명문대 출신의 변호사에서 술쟁이로 변신한 정회철 대표의 이야기다.
 
정성껏 빚은 술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정회철 대표의 몫이다
구불구불한 비포장길의 끝에 예술 주조를 알리는 간판이 서 있다
양조장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서울에서 차로 3시간 남짓,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달려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의 예술 주조에 도착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외진 곳에 양조장, 체험장, 게스트하우스, 정회철 대표의 집, 직원 숙소까지 5채의 건물이 옹기종기 자리해 있다. 정 대표가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8년 전. 그때의 기분을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저는 아내와 함께 전국을 여행하며 장차 살 만한 곳을 찾아 다녔어요. 2~3년간 돌아다녔지만 성에 차는 곳이 없었는데, 이곳은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어요. 마을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위로 계곡이 길게 늘어져 있죠. 조용하고 경치가 좋은데다가 정남향으로 햇빛이 들어요. 못 믿겠으면 저 툇마루에 앉아 봐요.”

그가 가리킨 것은 1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전통 가옥이었다. 5채의 건물 중 유일하게 예전 모습이 남아 있는 건물이자, 지금은 양조장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다. 황토로 지어 공기 순환이 잘 되고 한옥의 운치까지 제법 있으니 술을 빚기에 이만큼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 그러나 처음부터 이곳에서 양조장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연유로 술을 빚게 됐을까. 
 
누룩방에서 누룩의 역할에 대해 설명 중인 정 대표
술맛을 좌우하는 누룩을 올해부터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제2의 삶, 전통주를 만나다

‘술 빚는 정회철’ 이전에 ‘변호사 정회철’이 있었다. 명문대 출신의 변호사이자 대학 교수. 그의 이름 석 자를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이력이다. 사실 그는 헌법수험서의 저자이자 신림동 고시촌의 스타강사로 더 유명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었으나 사법연수원 시절 집필하여 출간한 헌법수험서가 큰 인기를 끌자 아예 그 길로 접어든 것이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그의 책을 안 본 이가 없을 정도였다. 2008년에는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부와 명성을 모두 누리는 듯했지만 그런 그에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었다.

“매년 개정판을 내고 또 집필을 하고…, 정신노동이 과해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머리에 열이 차서 잠을 잘 못 자고 책도 5분 이상 보면 머리가 아팠어요. 한마디로 과부하가 걸린 거죠. 일은 안정적이었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10년이 넘게 그 일을 했는데, 이제 재밌는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제2의 삶을 이끈 것이 전통주였다. 오래 전 우연히 접한 전통주의 맛에 반한 그는 독학으로 술 빚기를 시작했고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술을 빚었다. 

사무실 옆에 술 만드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놓을 정도였다. 당시는 인터넷에 나온 대로 재료를 사서 레시피대로 만드는 정도였지만 전통주의 매력에 빠진 후 ‘전통주연구소’라는 교육기관에서 약 3년간 체계적으로 공부를 했다. 취미생활이었던 술 빚기는 이제 그의 본업이 되려 하고 있었다. 허나 술 빚기는 혼자 할 수 있지만 도가를 차리는 것은 혼자 힘으로 불가능했다. 함께 출판을 하던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당시 저는 책을 쓰고 아내는 출판을 했어요. 출판을 접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술 팔아서 얼마나 벌지 모르니까. 아내로서는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았던 거죠. 그러나 저는 시장 전망을 긍정적으로 봤어요. 아직 전통주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복원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발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내도 저와 함께 양조장을 다니고 오랫동안 제가 술 빚는 걸 봐 온 지라 이해해 줬죠.”

그리하여 8년 전 정회철 대표가 마련한 홍천의 보금자리는 2012년부터 예술 주조가 되었다. ‘단술 예醴’와 ‘술’을 합쳐 지은 ‘예술’은 ‘예로부터 내려온 술’을 뜻하기도 하고 ‘술 빚는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회철 대표의 술이 익어 가는 공간
약주 ‘동몽’, 탁주 ‘만강에 비친 달’은 정 대표의 첫 작품이다
 
전통주, 알아야 사 먹지!

정회철 대표가 처음 내놓은 술은 지역 특산품인 단호박을 이용한 탁주 ‘만강에 비친 달’과 약주 ‘동몽’이다. 그는 단호박을 사용해 자신만의 술을 만들기 위해 다양하게 연구했고 점차 지금의 맛을 내게 됐다고.

“만강에 비친 달은 여성적인 술입니다. 달고 향이 강하죠. 특히 단호박에서 나오는 노란 색이 달을 상징하는데요, 달은 역시 여성을 표현한답니다. 여성적인 술을 내놓은 이유는 취하기 위해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 문화를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만강에 비친 달은 맛과 향, 색을 음미하는 술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이런 술을 마시면서 술 문화를 바꿔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후 출시한 ‘홍천강 탁주’는 보다 남성적인 술이다. ‘만강에 비친 달’과 ‘동몽’에 비해 단 맛을 줄이고 탁주 본연의 맛이 두드러진다. 

사실 그는 맛있는 술을 내놓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됐다. 출시 초창기 겪은 ‘굴욕사건’ 때문이었다. 때는 2011년, 정 대표는 내촌 단호박 축제에서 한창 개발 중인 그의 술을 시음하는 행사를 갖게 됐다. 처음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술을 선보인 그는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맛을 본 사람들마다 맛있다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2012년, 정식으로 ‘만강에 비친 달’을 출시한 그는 예의 축제에서 술 판매를 하게 됐다. 전해의 호응으로 봐서는 2,000병은 거뜬히 팔릴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판매량은 200병에 불과했다. 집에서 빚은 술을 나눠 마시는 것과 돈을 주고 사 마시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전통주에 대한 인식이 그리 크지 않은 상태에서 한 병에 2만원 가까이 하는 전통주를 선뜻 구매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남은 1,800병은 고스란히 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사케나 와인은 비싼 값을 치르고도 많이 마시지만 전통주는 싼 술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죠. 정성껏 만든 전통주를 비싸다는 이유로 맛을 보지도 않고 외면합니다. 만약 제가 10년 전에 시작했더라면 아예 포기했을 겁니다. 팔 곳도 없고, 마실 사람도 없어서요. 그러나 한번이라도 제대로 만든 전통주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충분하진 않지만 요즘은 좋은 전통주를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막걸리 바도 생기고 있죠. 제가 만든 술도 전통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막걸리 바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그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통주에 대해 알리기 위해 전통주 체험관을 완공하고 술 빚기 체험교실을 열고 있다. 그의 양조장에서 가장 크고 번듯한 2층짜리 건물이다. 
“전통주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도 술을 직접 빚어 보면서 그 재미와 맛을 알게 되죠. 전통주를 소비하는 층이 많아지면 우리 술도 자연히 잘 팔릴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돈 벌겠다는 생각 없어요. 돈 크게 못 벌어도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제가 즐기는 일을 하는 지금이 행복하거든요.” 

예술 주조 체험장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07
033-435-1120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수수보리 전은경(수수보리는 우리 술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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