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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column] 유행에 민감한 당신에게

  • Editor. 손고은
  • 입력 2015.03.05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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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얼마 전 금혼식을 올리셨다. 무려 50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다는 것을 기념하시기로 한 것이다. 금혼식은 거창할 것도, 초라할 것도 없었다. 친지들을 초대해 식사를 했고 몇 장의 웨딩사진을 촬영한 것이 전부였다. 웨딩사진도 찍었으니 신혼여행도 한 번 더 다녀와야 하지 않겠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하신다. 1960년대는 온 국민이 보릿고개를 넘던 때라 아주 극소수의 부유층만이 온양으로 신혼여행을 가던 시절이었다고. 

엄마와 아빠의 신혼여행지는 경주였다. 1970~80년대, 신혼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으나 비싼 비행기 삯 때문에 경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씁쓸한 이야기는 비밀이란다. 

속도는 더디지만 신혼여행에도 분명 유행이 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는 국내 위주였던 신혼여행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물론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이 여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유도 있지만). 해외여행이 전보다 쉬워지자 2000년대 중반까지 태국 파타야, 인도네시아 발리, 필리핀 세부 등 동남아시아로의 신혼여행이 성황을 이뤘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유럽이다. 그렇다고 하와이와 몰디브, 칸쿤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옆자리에 앉은 동기도 올해 11월에 결혼을 앞둔 친구도 신혼여행 하면 유럽이 아니겠느냐 말한다. 심지어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남편에게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에 아이를 갖겠다고 선포했을 정도니 그 인기를 피부로 실감한다. 오랫동안 신혼여행 시장에서 패권을 장악하던 동남아시아가 한풀 꺾이고 유럽이 위풍당당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저가항공사들이 매력적인 가격으로 하늘을 잇고 여름이면 너도나도 휴가를 떠나는 동남아시아는 일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지로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제주도가 1일 생활권에 들어온 것처럼 동남아시아의 국가들도 이제는 가까운 이웃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유럽은 ‘할배’들은 물론 ‘누나’들도 반한 곳이다. 여기에 유럽지역 직항도 늘고 유로도 하향 안정화됐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의 ‘절친’이 꿈꾸는 신혼여행지는 캄보디아다. “대체 왜?”라는 물음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녀의 이유는 단순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정말 꼭 가 보고 싶었던 곳이라는 것. 그뿐이다. 

대세가 유럽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도나도 유행을 따를 필요는 없다. 유행처럼 번진 유럽 신혼여행 트렌드가 언제 또 시들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디에’보다 ‘누구와’가 중요한 신혼여행이니만큼 그 누구의 눈치도 살필 필요 없이 내 마음의 욕구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유행은 또 변하기 마련이다. 
 
글 손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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