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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TRAVEL] 폴리의 역설-파리 폴리 & 광주폴리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5.04.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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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모두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지 않은 어두운 방이 하나쯤 있을 테다. 소설가 신경숙의 <외딴방>을 떠올려 본다. 두툼한 책장의 반을 넘겨도 주인공은 ‘외딴방’ 주변을 서성이기만 할 뿐, 그 문을 여는 것은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난 후다. 비밀스러운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폴리’를 저지른 브리짓을 만나고 왔다. 폴리는 어리석은 일, 바보스러운 에피소드를 일컫는 말. 소를 키우는 목장을 운영하며 남편인 자비에와 조용하고 소소한 삶을 살고 있는 브리짓이 무슨 엉뚱한 일을 벌이는 걸까. 그녀의 삶은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뭔가 부족하다. 알 수 없는 스트레스 때문에 가슴 언저리에 난 알러지는 온갖 신통하다는 약을 써도 통 효과가 없다. 보기 싫은 나머지 꽁꽁 감추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충동적으로 목장을 떠나 도착한 파리에서 그녀는 옷깃 여미기를 멈춘다. ‘볼 테면 봐라’는 식이다. 

간통법도 폐지됐으니 좀 더 편하게 말하겠다. 파리에서 브리짓은 덴마크인    치과의사를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그야말로 ‘폴리’다. 브리짓은 마음 한 켠의 어두운 방에 들어가 불을 켰고 그 순간 숨겨둔 것들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 어떤 평가들을 모두 떠나 그녀가 옷깃 여미기를 그만둔 것에 의미를 두자.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또 다른 폴리가 여기 있다. 지난 2011년과 2013년,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광주 폴리’란 이름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유명 아티스트가 참여해 광주의 구 도심 곳곳에 여러 가지 조형작품과 건축물을 설치했다. 건축에서의 ‘폴리’는 기능이 없이 장식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이라니, 사실 주변 환경과 그다지 조화로운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고백컨대, 과거 광주에서 1년여간 생활하면서 폴리 작품들을 지나치게 될 때 ‘뜬금없다,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이 정말 장식을 위해서만 설치된 것일 리는 없다. 알고 보니 도심공동화를 겪고 있는 광주의 구 도심 곳곳에 폴리 작품들을 설치하면서 사람들의 방문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구 도심의 재생까지 노린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래된 건물 사이에 자리를 잘못 찾은 듯 들어선 다소 ‘엉뚱한’ 작품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나 또한 ‘도대체 뭘까’ 싶은 마음에 한번 찾아가 보기도 했고 말이다. 광주 폴리 작품들은 빛을 잃은 지역에 불을 켜고 있었던 것이다. 

브리짓의 ‘폴리’ 이후가 궁금해진다. 굳이 따지자면 다행스럽게도, 브리짓과 자비에는 서로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게 된다. 브리짓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누구든 ‘폴리’를 통해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순간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브리짓과 자비에가 손을 잡고 하나의 그림자가 됐듯, 광주가 구 도심을 살리기 위해 폴리로 인공호흡을 했듯 말이다. 
 
감독 마크 피투시Marc Fitoussi 
드라마 | 98분 | 15세 관람가
2015년 2월26일 개봉
브리짓 역-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 
자비에 역-장 피에르 다루생Jean-Pierre Darroussin
 
글 차민경 기자 사진제공 (주)티캐스트콘텐츠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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