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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 어둠 속에 라일락 필 때

  • Editor. 김선주
  • 입력 2015.04.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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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유네스코UNESCO는 일각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 히로시마 원폭 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인류의 과오가 고스란한 흉물일 뿐이지만 ‘네거티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에 더 주목한 결정이었다. 제국주의와 핵무기라는 아픈 역사의 상징이지만 역설적으로 평화와 비핵화의 숭고함을 웅변해서였다. 나치의 잔인한 유태인 학살 현장인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역시 같은 선상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언제나 밝고 경쾌할 필요는 없다. 눈부신 창공과 아름다운 자연, 휘황한 도시와 웅대한 문명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훌륭할 수 있다. 어둡고 불편한 여정에서 더 큰 가치를 만나기도 한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이런 자각에서 비롯됐다. 대재앙이나 재난의 현장, 인간의 실수와 오판이 부른 참혹한 역사적 장소 등 거북하다 못해 외면하고 싶은 존재들과 마주하는 여행이다. 아픔과 직면한 여행자는 반성하고 깨닫는다. 네거티브 세계문화유산인 히로시마 원폭 돔과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다크 투어리즘의 대표적인 목적지다. 미국 9·11 테러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캄보디아 양민 대학살의 아픔을 간직한 킬링필드 유적지, 원전 폭발사고로 버려진 도시가 된 체르노빌 역시 마찬가지다. 적으면 적을수록 좋겠지만, 다크 투어리즘이 새로운 여행유형으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목적지도 계속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일제 식민지배와 6·25전쟁, 남북분단, 민주화 과정에서의 이데올로기 대립 등 질곡의 역사를 품은 비극적 장소와 사건이 즐비하다. 다크 투어리즘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도 이곳저곳에서 꿈틀댄다. 제주도는 4·3사태의 아픔이 서린 4·3평화공원을 비롯해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이 구축한 군사시설, 6·25 전적지 등을 유형별로 벨트화해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로 조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부정의 존재를 직시해 그 너머에 깃들여진 궁극의 가치를 좇는 움직임이다. 

4월이다. 엘리엇T.S.Elliot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 한 그 4월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는’ 4월이 왜 가장 잔인하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작년 4월16일 ‘그날’ 이후, 울분이 치밀고 안타까움이 사무칠 때마다 머릿속에 <황무지>가 펼쳐지며 4월의 잔인함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감정의 격랑은 잦아들었지만 느닷없이 솟구치는 먹먹함은 지금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속절없이 또 봄이 왔다. 진도에도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고 한다. 여행객의 발길은 여전히 뜸해 밥장사든 방장사든 모두 형편없다고 한다. 인접지역도 매한가지란다. 그러고 보니 진도를 여행한 적이 없다. 잠든 뿌리가 깨어나고 라일락 필 때, 그곳에서 똑바로 마주해야겠다. 
 
김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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