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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column] 고통’ 있는 여행이 아름답다

  • Editor. 고서령
  • 입력 2015.05.0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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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미국 콜로라도 출장, 일주일 동안 한두 번씩 손만 씻고 버린 비누를 세어 보니 총 네 개였다. 호텔마다 하루 이틀 묵고 떠나는데 매번 새 비누를 까서 쓴 거다. 그동안 다녔던 출장에서 쓰다 버린 비누를 다 합해 보니 수십 개가 넘었다. 나름 환경 애호가라고 자부했었는데  무슨 짓을 해 왔던 걸까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일상에선 엄두도 내지 않는 행동들을 죄책감 없이 저지르곤 한다. 여행 중엔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즐거움만 추구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여행’은 일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여행 에세이집의 저자 이애경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여행을 일상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넓게 포용할 수 있게 된다”면서 “여행지에서 하는 행동이 일상의 행위가 되고, 나의 일상을 채워 주는 요소가 어느 나라의 어떤 곳에 있다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고 쏠쏠하다”고 했다.

여행엔 여러 종류가 있다. 최소한의 예산만 들고 떠나는 배낭여행, 고급 리조트에서 푹 쉬는 휴양여행, 가이드를 따라 단체 버스를 타고 떠나는 패키지여행 등등. 종류에 따라 여행하는 방법도, 여행의 목적도 각기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 매너의 기준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최고급 호텔에 묵는다고 자원을 펑펑 쓰는 것이 합리화될 수 없고, 저렴한 패키지여행이라고 해서 저렴한 행동까지 용납될 순 없다는 이야기다.

즐거움만 가득한 여행도 진정한 여행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vel’의 어원은 고통, 고난을 뜻하는 ‘Travail’이다. 그랬던 것이 19세기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부터 쾌락, 즐거움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여행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명파괴, 낭비 등이 초래된 것도 그때부터다. 그러자 1980년대 유럽 일부 국가와 미국을 중심으로 ‘공정여행’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즐기기만 하는 여행에서 벗어나 현지 경제와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여행하자는 운동이 시작된 거다. 여행의 본질을 향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정여행은 보편화되지 못한 채 개념에 가깝게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에서 한 공정여행 기업 대표가 한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친구 집에 잠시 놀러갔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시는 안 갈 곳에 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마음. 그 마음으로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공정여행이 된다는 이야기다. 참 쉽지 않은가? 그러니 다음 여행은 공정여행으로 만들어 보자. 먼저 친구네 집 비누를 아껴 쓰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글 고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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