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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column] 동물원을 부탁해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5.06.0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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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정글 숲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던 날, 싱하 맥주 너머로 약간의 토론이 벌어졌다. 낮에 진행됐던 ‘엘리펀트 익스피리언스Elephant Experience’가 화두였다. 코끼리와 눈을 마주치며 솔로 싹싹 문질러 목욕을 시키고 직접 먹이를 잘라서 건네주는 체험이 너무 좋았다는 A는 태국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코끼리 트레킹과 코끼리 쇼를 비난했다. 태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B는 예상대로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루에 몇십 킬로씩 식사를 해야 살아남는 코끼리를 유지하기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이 드물지 않다. 어디까지가 동물 보호이고, 어디까지가 생존이고, 어디서부터가 학대인지 물음표가 난무한다. 그렇게나 좋았던 미국 씨월드의 고래쇼는 몇해 전 고래가 조련사를 물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이후로 물음표 꼬리를 달았다. 고래의 스트레스는 얼마나 됐던 걸까? 살면서 한 번쯤 실물로 보고 싶었던 도롱뇽 아홀로틀Axolotl, 포켓몬스터의 캐릭터 ‘우파’의 실제 모델을 지난달 서울시립미술관의 수족관 안에서 보았다. 신기함과 반가움은 잠시였고, 겁에 질려 바동거리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역시 물음표가 달렸다(아홀로틀은 멸종 위기종 중에서도 ‘위급’단계에 속한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A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태국에서 코끼리 트레킹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국내에서도 여러 A들의 노력으로 서울대공원의 돌고래쇼는 생태설명회로 대체되었고,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에 이어 지난 5월에는 ‘태산이’와 ‘복순이’도 고향인 제주도 앞바다로 돌아갔다. 여행자들의 의식 또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도화지에 멋지게 그림을 그리는 코끼리 대신 밥이나 먹고 흙탕물에 구르고, 똥이나 싸지르는 코끼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B의 문제 제기는 아직 남아 있다. 코끼리를 먹이고 제돌이를 돌보기 위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원의 변화, 동물 보호 패러다임의 변화는 애호가들의 시위보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는 방향에 달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싱하 맥주 너머로 날이 섰던 A와 B의 논쟁은 의외로 쉽게 합의에 도달했다. 점점 더 많은 여행자들이 ‘코끼리 쇼’ 대신 ‘코끼리 체험’을 선택하면 학대의 소지가 있는 프로그램들은 도태되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옥같은 말씀도! 마지막으로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치며 다짐했다. 1박에 50만원쯤 하는 럭셔리 텐트 숙박과 동물 체험쯤, 가뿐히 참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 보자고. 
 
글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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