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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ir] ‘왜’ 찍으세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5.06.11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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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카메라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산 작은 하이브리드 카메라였다. 사진에 관심이 많아서 카메라를 산 것은 아니었고, 이미지를 기억하고 정확하게 재생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었다. 미래의 작업을 위해서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을 찍어 아카이브를 만들자는 거였다. 하지만 찰나의 감각을 담기 위해 필요했던 기술이 너무 많아 원하는 대로 찍을 수 없었던 탓에 곧 실증이 났다. 만약 그때의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더라면 비비안 마이어의 수집에 대한 집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장르가 무려 ‘미스터리 사진 다큐’인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Finding Vivian Maier>는 역사학자인 존 말루프John Maloof가 15만장의 필름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현상한 사진들에는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본 1900년대 중반 뉴욕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과 영수증만으로 그녀의 행적을 뒤쫓았다. 그 과정에서 비비안 마이어가 여러 가정을 돌며 유모이자 가정부로 일했다는 것, 일을 하면서 롤라이플렉스Rolleiflex로 사진을 찍어 왔다는 것, 다소 괴기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것 등, 그녀의 과거가 드러난다. 영화가 풀지 못하는 숙제는 두 가지다. ‘비비안 마이어는 왜 사진을 찍었나,’ ‘비비안 마이어는 왜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나.’ 그녀가 이미 세상에 없기 때문에 이 질문들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지만.

누구에게도 공개할 필요가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던 내 사진 아카이브를 떠올려 본다. 그때 찍은 사진들은 오로지 ‘기록’과 ‘재생’의 의미뿐이었다. 여행기자가 된 후 사진을 찍는 행위의 의미는 완전히 바뀌었다. 여행지에서 본 것을 담아 와 누군가에게 풀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기자가 된 나의 사진엔 ‘보여 주기 위한 것’이란 목적이 생겼고, ‘공개’라는 과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한다.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때로는 실제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노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여행기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방금 셀카를 찍어서 SNS에 올린 당신도 마찬가지. 보여 주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런 면에서 비비안 마이어와 우리는 대척점에 있는 셈이다.

미스터리는 해결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매혹적으로 관람객들을 사진 안으로 끌어들인다. 필름 발견자인 존 말루프는 그녀의 사진을 수집하는 동안 사진에 매력을 느껴 사진작가가 됐다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올해 영국과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다. 나 또한 영화관을 나오면서 다시 아카이브를 만들겠다 다짐했다. 공개하든, 공개하지 않든.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Finding Vivian Maier
감독 존 말루프John Maloof, 찰리 시스켈Charlie Siskel
미스터리 사진 다큐 | 84분 |  전체 관람가
2015년 4월30일 개봉
출연 존 말루프, 비비안 마이어
 
 
글 차민경 기자  사진제공 오드(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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