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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 귀신이 사람잡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5.07.30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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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 귀신 바람이 불었다.
누구는 가위에 눌렸고, 
누구는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며 
공포에 휩싸였다. 
여기자들이 다시는 혼자 여행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만든
너는, 대체 누구냐. 

●Bathroom 
물이 떨어진다, 똑. 똑. 똑.
차민경 기자
 
눈이야 가리면 된다지만 귀는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소리가 무섭다. 귓속을 파고드는 작은 소리는 머리 속에서 상상을 덧입고 나를 무시무시한 공포의 세계로 끌고 간다. 
동남아의 어느 우림 근처에서 묵었을 때다. 우림 속에 있는 오래된 호텔이었는데, 비수기였던지라 투숙객도 많지 않았고 호텔 시설도 썩 좋지 않았다. 어두침침한 것은 그럭저럭 참았다. 숙면에는 어둠만큼 좋은 것도 없지 않나. 

똑. 똑. 똑. 잠이 들려던 찰나였다. 샤워를 하고 수도꼭지를 잘 잠그지 않았던 것인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찮은 마음을 다잡고 샤워실로 향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건만 개수대는 건조했다. 샤워부스도 마찬가지. 수도꼭지를 꼭꼭 잠갔다. 안 보이는 곳에 떨어졌겠지.

다시 침대에 누워 조명을 껐다. 베개에 얼굴을 묻는 순간, 다시 똑. 똑. 똑. 등골이 서늘해졌다. 온 힘을 다해 수도꼭지를 잠그고 오지 않았나. 말릴 새도 없이 불안이 고개를 쳐들었다. 공포영화는 이런 식으로 시작되던데, 물귀신이 있는 건가, 눈을 떠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용기를 냈다. 다시 샤워실에 들어가 확인. 물이 떨어진 흔적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으스스한 기분에 바닥만 보며 달려 침대로 뛰어들었다. 무시하고 잠드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리는 피할 수가 없다. 물귀신이 침대 옆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똑. 똑. 똑.

웅크리고 누웠던 그대로 잠에서 깼다. 공포에 떨었던 밤이 지나갔다. 엉망진창인 심신을 달래러 창가를 향하는데, 이게 웬걸. 의자 밑, 바닥에 물이 흥건하네? 
전날 손빨래한 수영복을 걸어둔 의자였다. 허탈함과 분노가 밀려왔다. 밤새 나를 괴롭혔던 게 다름 아닌 내가 빨아둔 수영복이었다니. 엄한 물귀신한테 날렸던 욕지거리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잠을 설쳐 몸은 천근만근이었으니 짜증도 한껏 치솟아 올랐다. 그래서 손빨래는 물기 짜기가 생명. 괜한 공포에 잠 설치고 다음날 일정까지 망치면 다 내 손해니까.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공포 영화라면 응당 화장실이 등장해야 제맛이다. 거울 달린 선반을 열었다 닫는 순간 등장하는 귀신, 핏물이 흐르는 수도꼭지, 주인공 대신 머리를 감겨 주는 까만 손…. 집 안의 여러 공간 중에서도 화장실이 무서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누군가 들어가면 완벽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변하게 되는 폐쇄성을 꼽을 수 있겠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마저 비출 것 같은 냉랭한 거울도 공포를 자아낸다. 그리고 물이다. 자고로 물은 예로부터 ‘음양陰陽’의 ‘음’을 대표하는 물질이 아니었던가, 풍수지리상으로 화장실은 음한 기운이 스미기 좋은 곳이다. 배설의 공간이니 기가 빠져나가는 곳이기도 하고.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귀신에 대비해 화장실에 야구 방망이라도 가져다 둬야겠다.
 
 
●Water & Death 
강에 빠져 죽은‘첩 귀신’이 들려
김선주 기자
 
히토요시는 일본 구마모토현의 정감 어린 소도시다. 마을을 가르는 구마강이 운치를 더한다. 소도시의 강이지만 일본 3대 급류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물길 험하고 물살 세다. 자연스레 목선 급류 타기가 유명해졌다. 

2010년 가을쯤이었던가, 이곳의 공무원 두어 명과 함께 구마강 급류 타기를 위해 한배를 탔다. 가만히 있어도 물에 젖기 십상인데 도중에 물장난까지 쳐대니 일행 대부분 비 맞은 생쥐 꼴을 피하기 어려웠다. 누군가 여자 공무원더러 “에이코쿠 절의 유령 같다”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에이코쿠 절의 유령이라…. 

600년 전쯤인가, 한 여자가 구마강에 스스로 빠져 죽었단다. 사연인즉, 어느 남자의 첩으로 사랑을 받았는데 그럴수록 본처의 시기와 질투, 해코지도 심해져 끝내 참지 못하고 강에 투신했다. 그야말로 한입골수! 원한이 뼈에 사무치니 저승으로도 갈 수가 없었나 보다. 매일 밤마다 물에 빠져 죽은 흉측한 모습으로 나타나 본처를 괴롭히고 앙갚음했다. 축 늘어진 물 젖은 긴 생머리 끝으로 핏물처럼 강물은 뚝뚝 떨어지고 치켜뜬 눈은 뒤집혀 흰자만 보인 채…. 졸지에 ‘첩 귀신’의 노리개로 전락한 본처는 절의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물에 빠져 죽어서인지 절 안의 연못에서 출몰해서였다. 스님은 귀신 모습을 그려 그 주인공에게 보여 줬다. 자신의 흉측한 몰골에 놀랐는지 귀신은 그 뒤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키득 웃었더니 대뜸 절로 데려갔다. 별 싱거운 얘기 다 듣겠다는 투로 키득거렸던 터라 혼자 남겨진 상황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텅 빈 사찰은 적막했다. 하이라이트는 본당 한 편에 세워져 있는 당시 스님이 그렸다는 귀신 그림! 모른 채 얼결에 마주쳤다면 소스라쳤겠지만 미리 마음을 다졌던 터라 무덤덤했다. 너무 방심했던 탓일까, 느닷없이 스피커에서 터져 나온 경전 읊는 녹음소리가 섬뜩하고 축축했다. 그 소리는 뭐랄까 귀신 쫓는 주문이라도 되는 양 끈적거리고 간절했다. 연못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복도의 나무 바닥은 왜 그리 끼~익 삐~익 음산하고 을씨년스럽던지….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게 더 무서웠다. 
 
수영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
파도나 급류에 휩쓸려 익사할 뻔했던 이들한테서 자주 듣는 얘기는 무언가가 물속에서 다리를 끌어당겼다는 것이다. 사람이 익사하면 귀신이 돼 물속에서 다른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우리네 미신과도 상통한다. 존재하지만 형태가 없는 물의 무정형성, 보이지만 온전히 알 수 없는 수중의 불가해성은 유령 또는 귀신의 특성과 맞닿는다. 원혼 또는 원령의 유배지로서 물에 대한 공포감은 옛날부터 존재했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으면 굿을 하고 제사를 지내 달래지 않는가!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진다’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보면 달래지지 않는 경우도 많나 보다. 
 

●Hotel
행복한 귀신이 가득한 호텔?
고서령 기자
 
콜로라도 에스테스공원Estes Park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어둑한 밤이 찾아올 때쯤 스탠리호텔Stanley Hotel을 찾아갔다. 1909년에 문을 열어 10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역사적인 호텔이었다. 고풍스러운 건축미보다 ‘귀신 나오는 호텔’로 더 유명하다는 말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스탠리호텔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증기자동차 기업 ‘스탠리 스티머Stanley Steamer’의 설립자인 프리랜 오스카 스탠리Freelan Oscar Stanley와 그의 아내 플로라 스탠리Flora Stanley가 지었다. 순전히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에 반해 첩첩산중에 그랜드 호텔을 만든 것이다. 부부는 호텔을 끔찍이 아꼈다. 어느 한 구석도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부부가 세상을 떠난 뒤로 호텔에서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호텔을 너무 아낀 나머지 죽어서도 떠나지 못한 걸까? 리셉션데스크 직원의 등 뒤를 맴도는 프리랜 오스카와, 한밤중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플로라를 봤다는 이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객실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가방 안의 옷이 흐트러져 있고, 물건들이 자기 마음대로 위치를 바꾸고, 조명이 저절로 켜졌다 꺼지는 등의 일이 이 방 저 방에서 생겼다. 특히 4층에선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아이들이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한다.

소설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세계적인 호러소설 <샤이닝The Shining>도 스티븐호텔에서 탄생했다. 1973년, 아내와 첫 부부여행을 떠난 그가 체크인을 했을 때 다른 투숙객들이 모두 체크아웃을 해 버리는 바람에 호텔 전체에 단둘이 묵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하룻밤 동안 스티븐 킹은 자신과 아내 외에도 누군가 함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고, 그때 받은 영감으로 한 번에 호러소설을 써 내려갔다.

이쯤 되면 스탠리호텔에 묵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호텔 직원의 말에 따르면 스탠리호텔에서 귀신이 포착된 적은 많아도 나쁜 사건이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스탠리호텔에는 행복한 귀신만 있기 때문’이라고.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100년 넘게 끊임없이 투숙객들이 찾아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고스트 투어’ 해 주는 호텔
스탠리호텔에선 방문객들을 위해 ‘고스트 투어Ghost Tour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 가이드가 호텔에서 귀신이 가장 많이 포착되는 곳들로 안내하며 귀신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스트 투어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10살 이상 참여 가능한 ‘나이트 고스트 투어Night Ghost Tours’(투어시간 90분, 1인당 28USD), 전 연령이 참여할 수 있는 ‘고스트 스토리Ghost Stories’(투어시간 60분, 1인당 10USD), 성인만 참여 가능하고 전문 심령 조사팀과 동행하는 ‘스탠리 파라노말 인베스티게이션Stanley Paranormal Investigations’(투어시간 5시간, 1인당 60USD)이 있다. 참고로 스탠리호텔에서 가장 귀신이 많이 나오는 객실은 217호다. 401호, 407호, 428호, 1302호도 귀신 출몰이 잦은 객실로 유명하다. 
 

●Phobia 
오늘 밤, 잘 자요~
손고은 기자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날 밤. 누군가 찾아왔다. 나는 휴대폰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 작은 키. 어린 아이 같았다. 온몸의 세포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움직임을 쫓았다.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며 방 안을 휘젓고 다니더니 의자에 걸터앉아 발까지 동동 구른다.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아이는 이내 사라졌다. 

지난달 마카오 출장에서는 이랬다. 세나도 광장 근처의 호텔에 묵었는데, 객실에 있는 더블베드 사이즈가 유난히 컸다. 아니, 넓었다. 한쪽 이불만 살짝 열고 쏙 들어가 잠을 청했다. 첫날은 누군가 내 옆자리에 함께 누웠고, 둘째 날은 등을 돌리고 누운 나를 쿡쿡 찌르기까지. 

소리를 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분명 눈은 감고 있는데 눈을 떠야만 보이는 것들이 생생하게 재생됐다. 가위에 눌린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혹자는 ‘영혼의 기氣가 인간의 기보다 강할 때, 영혼에 의해 압도당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대부분 가위 눌림을 당해 본 사람들은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극심하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주 겪는다고 증언한다. 나 역시 그렇다. 혼자 가는 출장이 두려운 이유다. 피곤함과 스트레스는 당연하고 낯선 공간에서 ‘혼자’라는 사실까지, 삼박자가 딱딱 들어맞지 않는가. 

가위 눌림을 피하기 위한 예방책은 명확치 않다. 누군가는 머리맡에 가위를 두고 잔다는 둥, 또 누군가는 태운 고춧가루를 방 안에 둔다는 둥…. 저마다의 부적을 만든다. 나는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날 밤 이후 방에서 절대 음악을 틀지 않는다. 의자도 깊숙이 집어넣거나 창문을 향해 앉을 수 있도록 방향을 돌려놓는다. 누군가 앉지 못하도록 말이다. 열린 커튼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숨바꼭질을 하자고 했던 아이 귀신 때문에 커튼은 언제나 빈틈없이 닫는다. 두려움은 오히려 공포를 낳는다. 눕기만 하면 일전에 출몰했던(?) 귀신들이 떠올라 이리저리 발악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위 눌리는 현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낯선 곳에서 극대화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걷어내고 ‘잘 자기’ 위한 유일한 수단일 뿐이다. 출장이 잦아지면서 잠들기 전 수행하는 규칙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지만. 
 
가위에 눌린다는 것
잠을 자던 중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수면 상태. 우리는 이런 현상을 두고 ‘가위에 눌렸다’고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렘수면* 상태로 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수면 상태라고 분석한다. 몸은 자고 있지만 뇌는 깨어 있는 상태니 그래, 움직이지 못하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귀에 들리는 웃음소리, 선명하게 느껴지는 누군가의 움직임은 어찌 설명할 텐가! 
* 렘수면 | 신체적으로는 잠이 들어 있는 상태지만 뇌는 활동하는, 깨어 있는 수면 상태. 
 
●Metro
그녀는 정말 자고 있었을까
신지훈 기자
 
2006년. 홀로 떠난 파리 여행 셋째 날, 하루 일정을 마치자 지하철 막차시간이 다되어 갔다. 서둘러 샤틀레역에서 메트로 7호선에 올랐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도 몇 명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깜빡 잠이 들었고, 잠시 후 눈을 떴을 땐 맞은편에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자는 가운데 앉아 왼쪽 남자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어 있다. 남자 둘은 아무 말 없이 힐끗힐끗 날 쳐다보며 의식했다. 분위기는 무거웠고 괜스레 무서워진 난 눈을 길게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조는 척을 했다.

남은 역은 세 정거장. 메트로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탔다. 메트로 안을 살피고는 내가 앉아 있는 자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앉는다. 맞은편 남자들은 나와 여자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내 옆에 앉은 여자도 그들을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여자는 갑자기 내 옆으로 바짝 붙는다. “Excuse me”라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번에 내릴 역에 괜찮은 커피숍이 있으니 느닷없이 커피 한잔을 하자고 한다. 괜찮다고 했다. 소용없었다. 계속해서 붙는다. 

그 사이 다음 역에 도착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급하게 내려 버렸다. 어차피 한 정거장 남았겠다, 걸어가지 싶었다. 출구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친다. 뒤돌아보니 그 여자였다. 놀라는 표정을 짓자, “I am very sorry”라며 아까 메트로 안에서 불쾌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녀를 봤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자신은 사실 의산데, 메트로 안의 분위기가 싸늘한 것이 이상해 맞은편 남녀를 유심히 봤고, 가운데 여자가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직감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임을 감지하고는 나를 데리고 내리려 했다는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을 전하고는 다음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운데 여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알아챘음을 그 남자들이 느꼈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까.’ 남은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웠다. 포기하다시피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뒤 지하철을 탈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곤 한다.
 
‘폐쇄’, ‘음침’, ‘끝 모를 어둠’…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어 주는 지하철. ‘지하’라는 단어에서부터 이미 음침하다. ‘지하철 저 어딘가에는 비밀의 장소가 있지는 않을까’, ‘지하의 습하고 차가운 기운은 꺼림직해’, ‘이 어둠의 끝은 어디일까’. 연상되는 공포만 해도 끝없다. 거기다 현실감도 높다. 폐가, 폐교 이런 곳들은 웃고 말 수 있지만, 지하철 괴담은 꼭 나에게 일어날 것만 같다. 그것이 지하철을 떠올리는 순간! 괜히 한기가 도는 이유다. 
 
 
●Picture & Ghost 
너도 느껴지니? 
천소현 기자
 
지난해 멕시코 서부 산악 지대의 작은 마을 타팔파Tapalpa에 갔다. 1700~1800년대에 지었다는 돌집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역사 도시. 그중에서 현재 타팔파 문화의 집Casa de la Cultura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저택을 방문했다.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가이드 헤수스Jesus씨는 불쑥 불과 두어 달 전에 찍은 것이라며 휴대폰 속에 간직하고 있던 희미한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어둠 속에 찍힌 희미한 형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헤수스씨의 확고한 믿음 앞에 미심쩍은 반응을 보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어진 대저택의 스토리는 점점 그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 갔다. 1520년대에 세워진 저택은 원래 멕시코를 침략한 스페인 출신의 거부인 갈베즈Galvez의 소유였다. 늙은 집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사시였기에 항상 검은 안경을 쓰고 다녔다는 갈베즈와 재산 때문에 결혼을 했다는 젊은 아내의 초상화는 심령화처럼 스산하고, 부수지 않고 여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해 여전히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금고도 미스터리하다. 방문한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 주던 헤수스씨가 사진 속에서 희미한 귀신의 형상을 발견했다는 장소는 지붕 아래 망루 공간이었다. 외부 감시용 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은 실낱 같은 빛줄기뿐, 망루는 창고처럼 휑하고 어두웠다. 이곳은 용병들이 마을을 감시하던 장소다. 

갈베즈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 용병들을 고용했는데, 그들의 잔혹함은 마을 사람들을 벌벌 떨게 했다고 한다. 특히 금괴를 운반하는 날은 마을 전체에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는데, 이를 어기는 사람은 즉시 말을 탄 용병들에 의해 긴 창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창에 쓰러졌다고 했다. 확실히 원한이 떠돌고도 남을 만한 장소이긴 했다. 아래층 사무실에는 그들이 사용했던 창들이 전시되어 있고, 당시 그려진 초상화도 걸려 있다. 일행 중 한 사람은 그 그림을 보더니 잔혹함이 느껴진다면서 몸서리를 쳤다.
 
이날 얻은 큰 깨달음은 따로 있다. 사진보다 더 오싹했던 것은 ‘초상화에서 기가 느껴진다는 사람’,  ‘휴대폰 속 귀신 사진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과 몇날 며칠을 여행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전시된 창을 만져 보며 속으로 ‘창이 참 길구나’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등 뒤에서 다가와 이렇게 묻는 일 말이다. 

‘너도 느껴지니?’ 원한 품은 사진들
사진처럼 정확한 기록매체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실상은 그 반대다. 사진만큼 왜곡이 자유로운 매체가 또 있을까? 포토샵 교육 몇 시간이면 간단한 수정은 물론 합성, 심지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까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귀신님이 친히 사진까지 찍혀 주셔도 ‘합성 아님’ 인증을 받기 전까지는(혹은 그 후에도) 실존 논쟁을 벗기가 어려우니 현대 귀신의 원한은 날로 깊어만 간다. 포토샵은커녕 컴퓨터도 잘 만지지 않을 것 같은 헤수스씨의 억울함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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