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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column] 여행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 Editor. 손고은
  • 입력 2015.08.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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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빅토리아주에는 골드러시 시대를 대변하는 역사박물관, 소버린 힐Sovereign Hill이 있다. 얼마 전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 마케팅 담당자는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를 유독 반가워했다. 지난해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이 방영된 이후 소버린 힐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며 말이다.

지난 몇년간 예능프로그램의 방송 효과는 분명하게,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꽃보다> 시리즈의 여파는 상당했다. 2014년 바르셀로나가 속한 스페인 카탈루냐주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전년대비 19.4% 증가했고, 크로아티아 시장은 3년 사이 6배 이상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타이완에서는 현지 가이드들이 갑작스럽게 증가한 여행객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라오스는 어떤가. 항공좌석 증편은 물론 저가항공사의 취항 소식과 함께 루앙프라방까지 잇는 새로운 노선도 개설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국의 관광청들이 방송 섭외에 나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2015년 상반기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가이드>, <테이스티 로드>, <나 혼자 산다> 등 예능프로그램들의 해외촬영이 잇따랐다. 여행사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가 방송에 뜬다’고 하면 너도나도 해당 지역 상품을 기획전으로 내놓았다. 항공 좌석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뜨거운 관심은 구매로 이어졌다. 

그런데 방송 마케팅의 열기 속에 관광청 홍보 담당자들의 얼굴에는 희비가 엇갈렸다. 방송은 효과가 큰 만큼 비용이 만만치 않다. A관광청은 프로그램 섭외와 함께 4억원 지원, B관광청은 방송 이후 국내 대형 여행사에게 마케팅 지원금으로 예산 1억원을 할애했단다. ‘억!’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일부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이야기지만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만큼 이제 소위 ‘돈 없는’ 관광청은 방송 마케팅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방송 홍보 효과를 본 이후 자꾸만 좋은 프로그램을 섭외해 오라’는 지시 때문에 방송국이라도 차려야 할 판이라던 어느 관광청 홍보 담당자의 하소연까지, 왠지 씁쓸해진다. 

방송에서 비춰지는 여행지는 아름답다. 덕분에 관광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본에 의해 여행 영감을 얻고 있었다는 사실은 회의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는 여행마저도 자본의 흐름에 따라, 나도 모르게 선택권을 좌지우지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마저 든다. 천편일률적인 패키지 여행이 싫어 자유여행을 떠난다는 사람들. 이들이 만들어 인터넷에 공유한 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은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자유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패키지 여행처럼 보인다. 유재석이 벌벌 떨었던 번지점프, 송지효가 먹었다던 마카롱, 할배들이 사랑했던 망고빙수를 쫓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어느 항공사의 광고 카피처럼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여행’이 있으므로. 내가 걷고 싶은 길이 가장 좋은 여행길이다.  
 
글 손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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