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풍경 후난湖南
무르익은 풍경 후난湖南
  • 트래비
  • 승인 2015.11.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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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성湖南省·호남성에서는 시간을 잊는다. 
원초적인 경관을 지닌 장자제張家界·장가계와 
고대도시 펑황鳳凰·봉황, 그리고 남쪽 화이화懷化·회화에 
머무는 동안 신선과 속인의 경계를 무수히 넘나들었다. 
무르익어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이 그곳에 있다. 
 
후난성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에 자리한 봉황고성의 풍경. 타강 주변으로 위락시설 대부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삭계욕자연보호구의 보봉호는 장자제 유일의 수변풍광을 간직한 곳이다. 10여분간 유람선을 타고 풍광을 감상한다
백룡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 승강장 앞에 펼쳐진 위안자제의 풍경

●장자제張家界
놀랍고 놀라운, 장자제 

장자제를 직접 본 이라면 풍광과 맞닥뜨린 순간, 표현할 단어를 몰라 멍한 표정을 짓거나 외마디 감탄사를 쏟아낼 수밖에 없다. 장자제는 기이하고 묘하다. 스케일도 다르다. 적당한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사람이 태어나 장자제를 가보지 않았다면 백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人生不到張家界, 白歲豈能稱老翁’라는 단골 중국 고사로 대신하는 편이 낫겠다. 3억8,000년 전 장자제는 바다였다. 오랜 시간 지구의 변화와 중력에 붕괴되면서 바다가 육지로 올라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후난성 북서부에 자리한 장자제시市는 영정구와 무릉원구로 나뉜다. 중국인들은 장자제를 흔히 무릉원武陵源이라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무릉원국가중점풍경명승구다. 무릉원은 크게 장자제국가삼림공원, 천자산자연보호구, 삭계욕자연보호구로 나뉘고 그 안에 또 여러 개의 절경이 있다. 통상 장자제라 부를 때는 총 면적 369km2에 이르는 이 세 곳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다. 

아열대 기후인 장자제는 200m 이상이 되는 돌기둥들이 촘촘히 솟아 숲을 이룬다. 산 위로 구름이 머물러 수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높은 바위에도 나무가 자라고, 풍광 속에는 3,000여 종의 식물과 국가에서 보호하는 28종의 동물이 또한 살아간다. 

장자제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2002년이다. 장자제국가삼림공원이 1982년 중국 최초로 삼림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92년에는 무릉원구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자제는 기원전 200년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장량張良이 그를 처단하려는 황후 여후呂后의 모략을 피해 가족과 함께 숨어든 곳이다. 한고조는 군대를 보내 장량을 없애려 했지만 험준한 지형에 익숙한 토가족의 도움으로 한고조의 군대를 퇴치한다. 그 후 이 지역은 장량의 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물러났다는 뜻에서 ‘장씨의 땅’, 장자제라 불렸다. 

삭계욕에 있는 황룡동黃龍洞부터 찾았다. 1983년 군사훈련 중 우연히 발견된 이 석회동굴은 전체 15km 중 공개된 곳이 3km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구불구불 회랑이 이어져 지하마궁이라고도 불리는데, 지하수를 보트를 타고 건너기도 한다. 수많은 종유석과 석순, 석주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19.6m의 가늘고 긴 석순, 정해신침定海神針이다. 이렇게 자라기까지 20만년이 흘렀는데 6m를 더 자라 천장에 닿으려면 앞으로 6억년이 더 걸린다니. 그 귀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40년간 180억원의 보험까지 가입시켰다. 

보봉호寶峰湖에서는 뱃놀이를 즐겼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에 눈길을 주는 동안 이따금 배가 멈추는 자리에서 바람소리 같은 목소리의 토가족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장자제에서 가장 늦게 개방된 곳은 천자산天子山쪽이다. 1,250m인 주봉에서도 가장 붐비는 장소는 선녀가 꽃을 뿌리는 형상을 한 ‘선녀산화仙女散花’와 세 개의 걸출한   봉우리가 솟은 어필봉御筆峰. 어필봉에는 전쟁에 패한 황제가 홧김에 붓을 던지니 땅에 거꾸로 꽂혔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장자제국가삼림공원 내 위안자제袁家界, 원가계로 가는 데는 백룡 엘리베이터가 명물이다. 순식간에 355m의 절벽을 수직으로 오르는데 1분30초밖에 안 걸린다. 위안자제는 2009년 상영된 영화 <아바타Avatar>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봉우리들이 경쟁하듯 도열해 있는 풍경은 혼을 잃을 만큼 아름답다 해서 미혼대迷魂台라 부른다. 그 혼미한 돌 숲 사이에서 영화에 등장했던 건곤주乾坤柱를 찾기란 웬일인지 쉽지 않았다. 그것이 영화에 나오는 할렐루야 바위가 틀림없다고 누군가 몇 번을 말해 주어도 고개만 갸우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가 자라서 가느다란 돌기둥 아래를 모조리 뒤덮은 탓이다. 멈춘 듯 보이는 이 신선의 세계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던 모양이다. 
 
천문산 케이블카의 흐린 차창으로 내다본 천문산. 실제 느껴지는 높이감은 현기증이 날 만큼 아찔하다
999개의 가파른 계단, 상천제는 성스러운 천문동에 이르는 관문이다
천문산의 잔도에서 본 풍경. 아래로 장자제 시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장자제의 혼, 천문산

해발 1,517m의 천문산天門山은 ‘장자제의 혼’이라 불린다. 천문산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오른다. 도심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케이블카의 길이는 7,445m.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이른 아침인데도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은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마침내 올라탄 케이블카는 30여 분간 천천히 놀라운 풍광을 차창 너머로 보여 주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아찔해서 현기증이 인다. 

케이블카가 멈추는 곳에서 트레킹 코스가 천 길 낭떠러지 위로 길을 낸 600m의 유리잔도로 이어진다. 강화유리라 일반 유리보다 25배 강하다고 하지만 900m 상공에서 아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위를 걷는다는 게 달갑지는 않다. 유리보호를 위해 마련된 덧신을 껴 신고서 무심히 걷다가도,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면 몸이 절로 바위 쪽으로 붙는다. 

아슬아슬한 유리잔도가 끝나면 이번에는 산세가 험해 귀신도 다니기 힘들다는 귀곡잔도鬼谷棧道가 1.6km 이어진다. 으스스한 이름처럼 나무마다 소원을 적은 수많은 붉은 천 조각이 휘날려 분위기가 묘하다. 

명明대에 창건된 화려한 천문산사天門山寺를 지나고 7개로 연결된 산체관통 에스컬레이터로 한참을 내려온 후에야 천문산의 상징인 천문동天門洞에 이르렀다. 높이 131m에 너비가 57m의 거대한 바위구멍, 천문동은 말 그대로 하늘에 이르는 신성한 관문이다. 천문동에서 아래까지는 999개의 하늘로 오르는 계단, 상천제上天悌로 이어져 있다. 1,000은 하늘을 뜻하니 하나를 뺐다. 내려갈 때는 가파르고 올라설 때는 까마득해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마지막 관문은 아흔아홉 구비로 휘감은 골짜기 통천대도通天大道다. 기막힌 운전솜씨의 셔틀버스 기사 옆에 앉아 안전벨트를 움켜쥔 채 10여 킬로미터의 굽이굽이 내내 숫자만 내려 세었다. 꼬리를 물고 줄을 서야 하고, 셔틀버스를 갈아타는 수고도 견뎌야 하고, 오금이 저리는 다리와 멀미마저 감수해야 하지만 장자제를 접할 기회가 또 온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늘과 통하는 그 길 위에 펼쳐진 세상은 모든 힘든 것들을 한순간에 잊게 하니까. 
 
독특한 볼거리를 품고 있는 봉황고성은 또한 묘족과 토가족의 터전이다
고성 내 북문과 동문을 연결하며 유일하게 남은 성벽. 옆계단 위로 아기가 앉아 있다  
 
●펑황鳳凰
오래된 수채화, 봉황고성

장자제에서 차로 3시간 30분, 후난성의 서쪽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湘西土家族苗族自治州에 있는 펑황鳳凰, 봉황으로 간다. 봉황이 성곽에 깃들었다는 마을 봉황고성鳳凰古城을 보기 위해서다. 펑황현은 토가족과 묘족이 치우천왕을 모시고 4,000년을 살아온 터전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초나라의 땅으로, 당나라 때는 웨이양渭陽으로 불리고 청나라에 와서야 펑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옛 모습 그대로의 고성은 여행자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동문 성루로 이어진 거리에는 특산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이어지고, 고성의 중심에는 어머니의 강이라는 타강沱江이 무심히 흐른다. 북쪽 벽휘문璧輝門에는 강을 유람하는 나룻배가 정박된 나루터가 있다. 

고성의 아름다움은 아픈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청明淸왕조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묘족을 견제해 왔는데, 명나라 조정은 정권을 유지하고 묘족을 억압하기 위해 190km에 달하는 변성을 쌓았다. 1615년부터 시작해 1622년에 마무리된 그 성이 봉황고성의 서쪽에 자리한 남방장성南方長城이다. 남방장성은 묘족을 한족과 가까운 숙묘熟苗와 융화를 거부한 생묘生苗로 갈라놓고, 생묘족의 발전을 막아 순응하도록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 장성의 중심에 지어진 봉황고성은 남방장성을 행정적으로 관리했다. 

봉황고성은 청나라 강희 39년에 와서야 돌을 쌓아 동서남북으로 성문을 쌓고 누각을 만드는 등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제 옛 성벽의 대부분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강을 따라 북문과 동문을 연결하는 일부 성벽뿐이다. 명나라 태조 때 창건해 1670년 강희 9년에 보수한 홍교虹橋는 1층은 기념품점, 2층은 전망대와 찻집으로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밤이 깃들고 조명이 켜지는 순간부터 고성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화려한 네온은 성곽과 다리, 가옥 할 것 없이 타강 주변을 휘황찬란하게 뒤덮는다. 카페나 바bar로 개조된 가옥에서는 음악을 쏟아내며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다. 전망이 좋다 싶은 곳은 어김없이 ‘가배咖啡·coffee’라는 간판을 내건 카페들의 차지다. 

노신魯迅과 함께 중국현대문학을 대표하고, 1988년 노벨문학상 최종후보로 올랐으나 그해 안타깝게 사망한 심종문沈從文·1902~1988은 소설 <변성邊城>을 통해 봉황고성의 풍광을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고성에는 그가 15세까지 머물던 생가, <변성>의 결말을 형상화한 동상, 그리고 그의 유골 일부를 묻은 소박한 묘지도 남아 있다. 

걷고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강가의 바람을 맞고, 묘족 할머니들이 손수 바느질한 공예품을 흥정하거나 3,000원짜리 국수 한 그릇에 만족하며 야경을 감상하는 일. 상업화의 물결이 예외 없이 이곳에 깃들었다 해도 하루 혹은 이틀을 머무는 여행자의 마음은 봉황고성의 이 여유가 아직 고마울 따름이다. 
 
타강에서 배를 타면 묘족 가옥들의 독특한 건축방법을 볼 수 있다. 뒤로 보이는 홍교는 봉황고성의 랜드마크다
타강 상류의 대교 아래로 사람들이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화이화懷化
화려한 날은 가고. 검양고성

봉황고성의 남서쪽 화이화懷化, 회화시에서 가장 먼저 만난것은 포도다. 중팡中方, 중방현 통무桐木, 동목진에 자리한 남방 포도구는 약 165k㎡의 어마어마한 포도밭으로 차라리 ‘포해葡海·포도의 바다’라 불린다. 그것도 순수 토종 품종인 검은색을 띠는 자포도紫葡萄만 재배한다니.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는 120년을 견뎌내 그 줄기의 크기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 농가 입구에서부터 999m로 이어진 길은 때마침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가득 달려 있었다. 중국의 와인 역사는 이미 100년이 넘는다. 껍질이 두껍고 당도가 비교적 약한 자포도는 와인을 만드는 데는 적격이라 와인은 이곳 특산품으로 빠지지 않는다. 

달콤함을 뒤로하고 훙장洪江, 홍강으로 향했다. 훙장은 1997년 새로운 훙장시로 바뀌기 전까지는 첸양현黔陽, 검양으로 알려져 있었다. 원강과 우수강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한 포구마을 훙장은 그래서 ‘검양고성黔陽古城’ 혹은 ‘홍강고상성洪江古商城’으로 불린다. 

훙장은 춘추전국시대를 시작으로 당나라 때 모습이 갖춰져 특히 청나라 말기에 가장 번성했던 고대 상업도시다. 대륙의 서남쪽으로 통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물자가 활발하게 거래될 수 있었다. 한창 때는 전국 18개 성과 24개 주부州府, 80여 개 현에서 이곳에 상업회관을 짓고 활동하면서 가문을 번창시켜 나갔다. 상인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그들이 객고를 푸는 환락가도 생겨 호황을 누렸다. 

훙장 상인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귀주와 운남으로 건너가 미얀마와 인도를 거쳐 유럽까지 교역을 넓혔다. 비단과 목재, 도자기, 기름을 주로 팔았다. 훙장은 또한 아편의 집산지였다. 당시 200여 곳의 아편굴이 성행했다는데, 1952년 신중국 선포 후 아편은 이곳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고성에서는 거부들이 아편을 피던 화려한 침대를 볼 수 있다. 

옛 건물들 속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청淸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음자옥窨子屋이다. 음자옥은 주로 부유한 상인과 명사들이 거주한 집을 말하는데 1층은 점포, 2층은 창고, 3층은 방으로 쓰이거나 2층은 대청이나 창고, 3층은 거실로 사용했다. 외부에선 실내를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침입도 불가능해서 통풍과 채광을 위해 지붕에 사각형 모양의 천정天井을 만들었다. 
지금의 검양고성은 상업도시라기보다는 오래된 거주지의 느낌이다. 집 마당을 비질하고 오리를 잡거나 카드놀이를 즐기는 주민들의 일상은 아주 태연해 보인다. 

‘겉은 부드러우나 속은 엄격하고, 의로운 방법은 엄히 지키며, 먹을 수 있음이 곧 복이요, 어짐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믿음을 토대로 공공의 이익에 보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는 옛 훙장 거상들의 흔적은 이제 선조들의 자취를 힘주어 자랑하는 노옹의 얼굴에서 유추해 볼 밖에 도리가 없다. 
 
검양고성에는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다. 공자의 묘를 둘러 친 이끼낀 담장 아래에서 견학 온 아이들을 만났다.
오래되고, 새로울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검양고성의 매력이다
 
▶travel info
후난성
중국 남동부에 위치해 있는 후난성의 성도는 창사长沙, 장사. 동정호洞庭湖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후난湖南, 호남이라 하고, 약칭하여 ‘샹湘’이라 부른다. 13개 시와 1개의 자치주를 가지고 인구는 2010년 현재, 약 6,500만명이다. 장자제는 9~11월이 가장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기다. 날씨변화가 심하고 비가 잦기 때문에 대비해서 옷을 잘 챙겨야 한다. 

AIRLINE
인천에서 출발해 창사까지 직항을 이용하고 창사에서 장자제까지는 버스나 국내선을 이용한다. 인천에서 창사까지는 약 3시간이다. 창사에서 장자제까지는 버스로 약 2시간 30분 거리. 대한항공, 중국동방항공, 중국남방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대한항공으로 오전 9시에 출발하면 11시20분에 창사에 도착한다. 
 

MUSICAL
뮤지컬 천문호선天門狐仙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예모 감독이 연출에 참여한 대규모 뮤지컬이다. 후난에 전해 오는 ‘유해감초’라는 설화를 원작으로 나무꾼 ‘유해’와 천년을 산 흰 여우의 사랑이야기를 그렸다. 호왕선지, 선산기우, 월야상사, 배판선풍, 천년수망 등 총 5장으로 약 1시간 45분의 공연에는 500여 명의 배우와 100여 명의 토가족 합창단의 노래와 무용이 펼쳐진다. 특히 천문산을 자연 그대로 배경으로 활용한 무대연출은 웅장한 극에 신비감을 더한다. 공연은 매일 저녁 8시20분에 시작에 10시에 끝나고 야외무대인 만큼 3월부터 12월까지만 펼쳐진다. 바위에 중국어와 함께 한국어 자막이 표시되는데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 하지만 가사와 대사의 감정이입에는 문제될 것이 없다. 지정석이고 무대가 야외이니만큼 따뜻한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티켓은 일반석이 238위안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irter 이세미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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