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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어디에도 없을 초록 위로②멘도시노 카운티-당신과 헤어지면 이곳에 살고 싶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5.11.11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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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도시노 카운티Mendocino County
당신과 헤어지면 이곳에 살고 싶다 
 
낮 동안 태양은 지구상의 모든 습기를 말리겠다는 기세로 뜨거웠다. 아침과 저녁의 공기에는 태평양의 습기가 몰고 온 안개와 한기가 가득했다. 인디안 서머가 한창인 멘도시노는 묘한 매력으로 마음을 홀렸다. 한낮에는 명암의 대비가 극명했고, 이른 아침과 해지기 전에는 그림자가 사라진 세상이 됐다. 풍경은 때때로 미국 현대 사진의 거장, 조엘 메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의 사진집을 보는 것 같았다. 이질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온했다. 다분히 미국적이라고 느꼈는데, 미국적인 게 뭔지 모를 사람이라도 이곳에선 그 어감의 실체를 고스란히 깨우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라이브 쓰루 샹들리에 트리

마음을 묵묵히 꿰매 줄 도시 

마린 카운티에서 자동차를 타고 세 시간 거리, 별 기대 없이 도착한 멘도시노에 살고 싶어졌다. 동행한 남자와 여자는 각각의 시차를 두고 내게 물었다. “여기 헤어지고 혼자 오면 정말 좋을 것 같지 않아요?” 토시 하나 다르지 않은 그들의 말에(남자와 여자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웃음이 번졌다. 여긴 정말 그럴 것 같으니까. 이곳은 상처받고 찢긴 마음을 묵묵히 꿰매 줄 것 같고, 삶의 한 단락을 정리할 힘을 주고, 많은 사람들 틈에 홀로 끼어도 처절한 외로움보다 즐길 만한 무게의 고독이 먼저 마음에 들어앉을 것 같았다. 다양한 감상이 교차하는 만큼 즐길 거리도 풍성하다. 

먼저 와인. 멘도시노는 미국을 대표하는 와인 생산지다. 멘도시노의 앤더슨 밸리에서는 수많은 와이너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훌륭한 와인을 생산한다. 알자스 버라이탈, 피노누아, 스파클링 와인이 대표적이며 매년 2월과 5월에 와인 페스티벌이 열릴 만큼 규모가 크다. 목가적인 풍경을 따라 취향에 맞는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것도 좋겠지만, 시간이 촉박하다면 마드론스The Madrones에 들러 보자. 

유럽의 정취가 풍기는 고풍스러운 외관이 인상적인 이곳은 부티크 호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네 개의 와인 테이스팅 룸을 갖추고 있다. 앤더슨 밸리를 대표하는 와이너리인 빙크Bink, 드류Drew, 시그널 리지Signal Ridge, 네즈Knez의 와인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멘도시노는 1850년대 뉴잉글랜드 지역의 사람들이 이주해 형성한 도시다. 당시 지었던 건물의 흔적은 멘도시노 빌리지Mendocino Village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멘도시노 빌리지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건축물은 1882년 집주인이 딸의 결혼 선물로 지은 맥컬럼하우스Macclum House. 현재는 멘도시노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이며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멘도시노 최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호텔에 투숙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건물 사이를 잇는 정원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큼 아름답다. 맥컬럼하우스 주변으로 동시대에 건축한 은행, 프리메이슨이 모였다는 집회 장소 등 유서 깊은 볼거리가 많고 아기자기한 숍들도 많아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도보로 5분 거리에 압도적인 풍광의 해안 절벽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 것!
 
글라스 비치를 가득 메운 보석 같은 유리알들
멘도시노 빌리지에 위치한 맥칼럼하우스의 외관, 클래식하고 목가적인 풍경이 아름답다
앤더슨 밸리의 마드론스에 위치한 네즈 와이너리의 테이스팅 룸, 피노누아가 특히 맛 좋다
칙칙폭폭! 스컹크 기차가 북부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산길을 달린다 
 
 
칙칙폭폭 리듬에 유쾌해지는 심장박동 

멘도시노 빌리지에 거대하게 펼쳐진 해안절벽이 있다면 포트 브래그Fort Bragg에는 아기자기한 크기의 글라스 비치Glass Beach가 있다. 멘도시노에서 가장 사랑받는 해변이지만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이곳은 1906년, 배수 처리장으로 지정된 이후 1943년부터 1969년까지 쓰레기 매립지로 이용되다가 이후 폐쇄된 채 시간이 흘렀다. 유리병의 모서리는 오랜 시간 동안 파도의 물살에 마모됐고 반짝반짝 빛나는 색색의 보석처럼 모양새를 바꿨다. 해변에 머무는 사람들은 바다를 보는 시간보다 발밑을 보는 시간이 길다. 사람이 망가뜨린 자연을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기간 동안 묵묵히 다듬어 예술품처럼 만들어 낸 자연의 힘 앞에 고개 숙여 사과하듯, 모두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둥글게 빛나는 유리알들을 매만진다. 

글라스 비치 인근에는 벌목한 레드우드 목재를 운반하기 위해 달리던 증기기차의 역사가 자리해 있다. 129년간 달려온 스컹크 기차는 이제 여행자들을 싣고 레드우드가 빽빽이 자라난 숲과 아름다운 녹음, 계곡을        누비는 멘도시노의 아이콘이 됐다. 연료 타는 냄새가 스컹크 냄새만큼 지독하다고 해서 스컹크 기차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열차가 지나는 길목의 공기가 상쾌하니 별 상관없다. 경적을 울리며 기차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은 절로 환호성이 터질 정도로 유쾌하다. 얼마나 즐거운지 기차의 진폭에 맞춰 뛰는 심장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클래식한 기차를 타고 북부 캘리포니아의 절경 속을 달리는 낭만을 만끽하고 싶다면 절대 놓치지 말자. 팝콘과 맥주를 무한대로 먹고 마실 수 있는 패키지부터, 중간 기착지에 내려 일몰을 바라보며 바비큐를 하고, 노요강Noyo River 계곡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니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하든, 얼마나 기차를 타든 내릴 땐 분명 아쉬운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역사에는 스컹크 기차와 관련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숍이 있다. 작은 기념품을 손에 들고 아쉬움을 달래는 것도 좋겠다. 
 

"여정이 시작됐다. 안개 낀 공기는 흙과 풀 내음으로 
가득했고 사방은 고요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말발굽 소리들이 뒤섞여 허공에 울렸다. 
동물과 교감하며 숲길과 해안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매순간은 자욱한 안개 덕분에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오, 나의 말레카!

스컹크 기차의 여운을 완전히 잊게 만들 또 하나의 액티비티, 바로 승마다. 스컹크 기차 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리코세 리지 랜치Ricochet Ridge Ranch에 도착했다. 말을 타다 다쳐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여러 장의 서약서를 쓰고 나서야 각각의 수준에 맞는 간단한 교육이 시작됐다. 가이드는 다소 엄격하고 딱딱한 말투로 타는 법, 고삐 잡는 법, 내리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말을 타는 동안 문제가 생기면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손을 들면 동행한 기수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말은 예민한 동물이라 카메라 셔터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다는 말에 살짝 긴장했다. 내게 배정된 말은 말레카Maleka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갈색 말이었다. 

목장에서 나와 왕복 2차선의 도로를 건너 맥케리처MacKerricher 주립공원의 숲길로 들어서는 풍경은 동화 속 그림과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출발해서 숲길 중간에 다다랐을 무렵, 말레카가 길을 벗어나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사이가 좋지 않은 앞말이 꼬리로 자꾸 얼굴을 치는 통에 신경질이 난 탓이다. 조용히 손을 들자 기수는 내게 고삐를 쥐고 말레카의 몸통을 발로 치라고 지시한 후 말레카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가 달래는 방법 그대로 말레카의 머리를 토닥이며 천천히 해안가로 향했다. 살고 싶어진 멘도시노를 아쉽게 뒤로하고 훔볼트 카운티로 향했다. 중도에 멘도시노 카운티의 자치구인 레겟Legett에 들렀다. 드라이브 쓰루 샹들리에 트리Drive thru Chandelier Tree를 보기 위해서다. 불에 탄 레드우드의 구멍 사이로 중형차 크기의 자동차가 통과할 수 있어 드라이브 쓰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의 행동은 한결같다. 차를 타고 조심스럽게 나무 사이로 진입한다. 차를 세우고 완전히 열리지 않는 자동차 문의 비좁은 틈 사이를 헤집고 내린다. 거대한 레드우드와 한몸이 된 듯한 차를 사진 찍고 다시 올라타 나무 주변을 돌아나간다. 밤이 되면 숲의 정령이 될 것 같은 나무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달렸다. 
 
에디터 김기남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취재협조 미국관광청 한국사무소 www.discoveramerica.co.kr,
캘리포니아관광청 한국사무소 www.visitcalifornia.com/kr, 아시아나항공 flyasi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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