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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경 기자의 On Air]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모든 것이 아름다움이었다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5.12.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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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니 모레티Nanni Moretti 감독의 <아들의 방The Son‘s Room>에는 주인공 가족이 차를 타고 가며 ‘살아간다는 건 조금씩 죽어 간다는 것’이란 가사의 음악을 듣는 씬이 나온다. 1년을 ‘산다’고 말하는 것보다 ‘죽는다’고 말하니 더욱 삶이 절박하다. 그럼에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으니 또 1년만큼 죽어 간 셈이다. 1년을 되짚어 무엇을 해왔나 생각해 본다. 조금 욕심을 냈고, 고됐다. 그뿐인 것 같다. 

이 회의감 앞에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를 내려놓는다. 주인공 젭은 로마의 최상류층. 누군가 꿈꿀 법한 모든 것들을 누린다. 좋은 옷, 화려한 파티, 유명한 예술, 아름다운 여자. 그러나 이것들은 젭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 작가지만 40년 전부터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지 못해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호화로운 일상이 삶의 이유가 되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대변한다. 젭이 찾고 있던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레이트 뷰티>의 모든 장면들은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다. 단편적인 예로, 140분의 러닝타임 내내 젭이 방황하는 땅은 이탈리아 로마다. 우아한 유적지와 애수가 넘치는 거리를 헤맨다. 아름다움 사이를 거닐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그것을 찾지 못해서 글을 쓸 수 없다는 젭의 회의감이 관람객인 나의 시선과 부딪치는 부분이다.
 
연관성 없는 이야기들이 영화 내내 흩뿌려져 있지만, 도식화 한다면 생각보다 답은 간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일 큰 힌트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수녀의 말, ‘뿌리의 중요성’에 있다. 달콤한 열매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뿌리를 대조해 보자. 이 간단한 은유 덕분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선명해진다. ‘죽음 이전에 삶이 있었다’는 젭의 되뇌임도 마찬가지 힌트다. 젭이 경멸했던 현재의 로마 예술들 이전에 젭이 계속 거닐고 있었던 로마 유적지가 있었다. 마지못해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 이전에 젭이 사랑했던 첫사랑이 있었다. 화려한 것을 좇다 놓친 작은 것, 사소한 모든 것들이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다움에 ‘진정한’을 붙이고 나니 비교해야 하고 재단해야 한다. 당장 아름다움이어도 앞으로 진짜 진정한 아름다움이 나타날지 모르니 기다려야만 한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기다렸던 젭이나, 가장 좋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나나 다르지 않다. 헛되이 보낸 시간이 많았으리라.

가지고 싶었던 것이 많은 해였다. 12월이 되고 나니 그것이 왜 가지고 싶었었는지 동기조차 흐릿하다. 1년만큼 죽어 가는 동안 단 열매를 맛보느라 아름다움을 수없이 놓치고 말았다. 바라건대 부디 또 다른 한 해를 의미 없이 죽어 가지 않기를. 내 곁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살 수 있기를.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Paolo Sorrentino
코미디, 드라마 | 141분 | 청소년 관람불가  2014년 6월12일 개봉
출연 토니 세르빌로Toni Servillo
       사브리나 페릴리Sabrina Ferilli
       세레나 그랜디Serena Grandi
 
글 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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