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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column] 우리가 계속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

  • Editor. 손고은
  • 입력 2015.12.03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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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지? 지금이라도 여행을 취소해야 할까?”
로마 신혼여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그녀의 걱정은 당연했다. 파리를 핏빛으로 물들인 연쇄 테러 이후 유럽 전역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으니까. 더군다나 IS이슬람 국가가 다음 테러 목적지로 워싱턴D.C.와 런던을 비롯해 로마까지 콕 짚어 언급하면서 그녀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됐다. 실제로 테러 이후 일주일 사이에만 여행을 취소하거나 일정을 변경한 이들이 700여 명에 달했다. 이마저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여행사 몇 곳의 통계일 뿐이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베르사유궁에서 전쟁을 선포하고 무자비하고 반인륜적인 이들의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다짐했다. 9·11 테러 이후 지금까지 테러와 전쟁 중인 미국도, 러시아 항공기 폭탄 테러를 확인한 러시아 당국도 이에 가세했다. 언론에서는 IS의 주요 지역 공습에 대한 뉴스를 연일 보도하고 현장을 ‘21세기 판 십자군전쟁’에 비유했다. 

그리고 보복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무시무시하다.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IS의 행위를 생각한다면 응징은 당연하다. 평화적 용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민간인들이 숭고한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오래 전 200년 동안 무차별했던 폭력과 약탈, 강간, 방화 등을 저지른 십자군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이미 배웠다. 게다가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전투기와 폭탄만이 해결책은 아니란 걸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다. 최근 호주 경제평화연구소IEP가 발표한 세계 테러리즘 보고서가 숫자로 증명한다. 지난해 테러로 인한 인명과 경제적 피해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목숨을 잃은 이들은 3만3,658명으로 15년 전보다 약 10배가 증가했고 경제적 피해도 역대 최고치인 529억 달러로 집계됐다. 특히 민간인 사망률이 172%나 증가했다는 점에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실행해 오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의 의중이 빗나갔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결국 필요한 건 근본적인 치료다. 인종, 성별, 종교 등 모든 유형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같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 이상 테러 박멸은커녕 또 다른 조직의 발원을 부추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계속 여행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타인의 문화를 경험한다.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는 행위이자 기회다. 갈등 한 번 없는 유토피아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타자와의 다름을 인정할 때 평화는 찾아오지 않을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그대를 내몰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여행이 안전을 이유로 제약받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친구는 예정대로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까지도 걱정을 하는 그녀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넌 지구의 평화를 위한 여행을 떠난 거야.’ 
 
글 손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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