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령 기자의 Honeymoon Dream] 우리, 신혼집에선 로열델프트에 커피 마실까?
[고서령 기자의 Honeymoon Dream] 우리, 신혼집에선 로열델프트에 커피 마실까?
  • 고서령
  • 승인 2015.12.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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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파란색은 모두 ‘델프트블루’

요즘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들은 색깔 이름을 참 예쁘게도 짓는다. 얼마 전 매니큐어를 사러 간 곳에서 본 파란색만 해도 한여름 소나기, 파랑새 날갯짓, 철썩철썩 파도, 바람 머무는 깊은 바다, 새벽 2시같이 매력적인 이름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각각의 색을 보면 이름을 왜 그렇게 붙였는지 납득이 갔다. 한여름의 소나기에, 파랑새의 날갯짓에 색이 있다면 왠지 그런 색일 것 같았다.

영어권에서도 수많은 파란색에 이름을 붙여 부른다. 인디고블루, 코발트블루, 마린블루, 터키블루 등 블루의 종류만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네덜란드 소도시 ‘델프트Delft’의 이름을 딴 ‘델프트블루’도 그중 하나다. 유럽에서 흰 도자기를 꾸밀 때 사용하는 청색 안료의 이름인데, 아마 델프트를 모르는 사람은 ‘한여름 소나기’나 ‘파랑새 날갯짓’보다도 그 이름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델프트는 세계적인 도자기 브랜드인 ‘로열델프트Royal Delft·정식 명칭은 로열도자기항아리회사’가 탄생한 도시다. 오늘날 유럽 명품 도자기의 대명사인 델프트 도자기에는 사실 출생의 비밀(?)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대규모 동인도 회사를 설립해 동서양 간의 무역을 주도하던 부국이었는데, 그때 유럽에 수입된 중국의 청화백자가 바로 델프트 도자기의 모태다. 당시 중국산 청화백자는 매우 고가였음에도 유럽 부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내 전쟁이 발발하면서 무역이 끊겼고 더 이상 청화백자를 수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16세기부터 이탈리아의 기술을 배워 와 도기를 만들던 델프트의 도공들이 중국의 청화백자를 모방한 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 처음엔 베끼기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델프트 도자기만의 색깔과 특징을 갖추면서 명품 도자기로 거듭났다. 이후로 델프트가 아닌 네덜란드 다른 지역에서 구운 도기까지도 모두 ‘델프트 도자기Delft Ware’라고 불렸고, 유럽의 흰 도자기에 사용하는 파란색은 모두 ‘델프트블루’라고 불렸다.

델프트 도자기의 전성기였던 18세기엔 델프트에 총 32개의 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도자기 공장은 1653년에 설립된 로열델프트가 유일하다. 19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변국에서도 뛰어난 도자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경쟁력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로열델프트만은 전통기법을 지키며 델프트 도자기의 명맥을 이어 왔고, 1919년 네덜란드 여왕으로부터 ‘로열’이란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받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로열델프트 공장까지 찾아 갔다면 찻잔세트 하나쯤은 구입해 오는 것이 두고두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방법이다.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명품 도자기이니 ‘새댁’의 그릇욕심을 내세워 눈 꼭 감고 장만할 만하다. 신혼집에서 남편과 로열델프트에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질 것 같다.
 
운하가 흐르는 델프트의 풍경  
로얄델프트 도자기 전문판매점 ⓒwww.flickr.com/photos/dierkschaefer
 
델프트 태생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그려진 도자기 ⓒwww.flickr.com/photos/bertknot
 
진주 귀걸이 소녀가 살았던 마을

델프트는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고향이기도 하다. 베르메르는 델프트에서 태어나 델프트에서 그림을 그리다 델프트에서 생을 마감했다. 델프트의 화가답게 그의 그림에는 유독 파란색이 많이 등장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머리에 파란색 터번을 두르고 있고, ‘우유 따르는 여인’, ‘물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 ‘연애편지’ 속 여인들은 모두 파란색 치마를 입고 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가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의 영감을 얻은 것 역시 그림 속 파란색에서였다고 한다. 슈발리에는 ‘소녀가 머리에 쓴 파란 터번이 하녀의 것이라면 어떻게 값비싼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 질문은 화가 베르메르와 타일도공의 딸 그리트의 안타깝고도 절제된 사랑 이야기로 풀어졌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선 스칼렛 요한슨이 그리트 역을 맡았다. 영화에는 델프트 구시가지의 시청사와 광장의 모습도 등장한다.

지금도 델프트에는 베르메르의 생가와 무덤이 남아 있다. 생가는 그가 1632년부터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1675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베르메르는 3층짜리 집에 아내와 11명의 아이들, 장모와 함께 살았는데, 꼭대기 층에 작업실을 마련해 두고 그곳에서 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신교회와 구교회의 대립이 치열했던 델프트에는 개신교의 신교회와 가톨릭의 구교회, 두 개의 큰 교회가 있다. 베르메르는 구교회 지하에 묻혀 있다.

델프트에는 베르메르 박물관이 있지만 그곳에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진품을 만날 수 없다. 진품은 헤이그Hague의 마우리츠호이스Mauritshuis 왕립미술관에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1907년 고종황제가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주권회복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던 ‘헤이그 특사 사건’의 그 헤이그다. 델프트에서 헤이그까지는 기차로 10분 거리니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 
 
델프트 가는 길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로 약 1시간 20분 거리다. 델프트 기차역에서 조금만 걸으면 운하를 따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델프트 구시가지가 나오는데, 이곳에 시청사와 광장 등 주요 볼거리가 모여 있다. 인포메이션센터에 가면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관련된 관광지가 나타나 있는 지도를 구할 수 있다. 토요일엔 구시가지 광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
 
KLM의 ‘델프트블루하우스’
KLM네덜란드항공은 1952년부터 비즈니스클래스 탑승객들에게 로열델프트에서 제작한 ‘델프트블루하우스’ 미니어처 도자기를 선물로 주고 있다. 델프트블루하우스는 네덜란드 각 지역에 실제로 있는 집을 모델로 삼아 만드는 것으로, 도자기 안에는 네덜란드 술 ‘예네버르Jenever’가 담겨 있다. KLM 창립기념일인 10월7일마다 새로운 델프트블루하우스를 발표하는데, 2015년까지 총 96개 종류가 제작되었다. KLM 블루하우스 홈페이지www.klmhouses.com에서 지금까지 제작된 모든 델프트블루하우스를 볼 수 있고, 그 도자기의 모델이 된 실제 집의 위치도 확인 가능하다.
 
글 고서령 기자  사진제공 주소은, 플리커 www.flicker.com
 
*일생에 단 한 번, 가장 로맨틱한 여행을 꿈꾸는 커플에게 추천하는 유럽의 소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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