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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트 유호상의 여행만상] 이상한 상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5.12.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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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한적한 이스탄불 중심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알게 된 한국인 배낭족들과 반나절 시내 구경을 함께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대학생인 K군, L양과 셋이서 그 유명한 고등어 케밥을 먹어 보기로 결의하고 부둣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지 10여 분쯤 지났을까. 척 봐도 ‘나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써 있는 듯한 아저씨 한 분이 맞은편에서 말을 걸어 왔다. 

“어이, 한국 학생들인 것 같은데 어디 가?” 인상이 딱히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아저씨. 스타일로 미루어 보아 인생을 즐기는 자유 여행자도, 그렇다고 패키지로 온 럭셔리 관광객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개인 사업차 왔다가 시간이 남아 시내 한 번 대충 둘러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 네…, 맛있는 것 사 먹으러 돌아다니고 있어요.”

언제 어디서 왔느냐부터 시작해 이 동네는 이러쿵저러쿵 시시콜콜…, 길가에 서서 말을 참 많이도 했다. 그러고도 아저씨는 우리를 따라오며 또 이런저런 말을 걸어 왔다. 도대체 끝날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대화의 와중에 난 이 아저씨가 L양을 몇 번이나 흘깃흘깃 심상치 않게 쳐다보는 것을 감지했다.

딸뻘 되는 어린 여학생에게 관심을 갖는 건가, 왜 자꾸…? 의문이 모락모락 피어 오를 즈음 마침 L양도 이런 분위기를 슬슬 눈치챈 듯한 분위기! 그때였다. 아저씨가 L양에게 슬그머니 묻는다. “그런데 혹시…, 저 알지 않아요?” 잠시 알 수 없는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곧이어 L양이 내뱉는 말.
 
“어머, 작은 아버지?
우와, 어쩐지 어디서 본 사람 같다 했어요!” 
 
2003년, Istanbul, Turkey
 
▶tip
여행 역사상 가장 웃기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어이없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가만히 보면 우리의 모든 행동 양식은 ‘당연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당연함’의 기반이 사라질 때 우리는 너무도 뻔한 상황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마련. 여행에서도 언제나 ‘당연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트래비스트 유호상의 여행만상
낯선 곳, 낯선 문화에 던져지는 것을 즐기는 타고난 여행가. 현재 여행 커뮤니티 ‘클럽 테라노바’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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