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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트 유호상의 여행만상] 기억의 배반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2.0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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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때가 왔다! 홍콩이 처음이라 들뜬 아내를 데리고 저녁 식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이전 홍콩 출장 때 주재원이 맛집이라며 직접 데리고 갔던, 스파이시 크랩Spicy crab을 파는 식당이 목적지였다. 바삭한 마늘튀김과 매콤한 게맛이 인상적이어서 한자로 된 식당 이름까지 적어 달라고 해서 여태껏 보관해 왔던 터였다. 몇년이 흘렀지만 생생한 기억을 붙잡고 구룡반도로 건너가 마천루가 내다보이는 육교를 건너 그곳으로 향했다. 
 
빅토리아만을 건너 화려한 야경의 도심을 지나 익숙한(?) 이면도로로 들어설 때까지는 분위기 절정이었다. 잘 찾아온 것 같았지만 문제는 도무지 스파이시 크랩 식당이 나타나지 않는 것. 혹시나 싶어 주변 골목길까지 다 둘러봤지만 허사였다. 시간은 이미 풀코스 식사의 디저트까지 끝났어야 할 만큼 흘러가 있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의 분위기가 아내의 얼굴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눈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들어왔다. 맛있긴 했지만 그 작고 허름한 식당을 인포 센터 같은 곳에서 알고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橋底辣蟹Under Bridge Spicy Crab’이라는 상호가 적힌 메모지를 건넸다. 

“한 시간째 찾고 있는 식당인데, 혹시?”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 여기요? 유명한 집인데, 여기가 아니고, 건너편에서 트램을 타고 4정거장을 간 후… (이후 어쩌고 저쩌고 긴 설명)” 직원은 친절하게 지도 위에 펜으로 위치를 표시해 주기까지 했다. 아, 이 충격! 안내해 준 식당의 장소는 현재 위치와 정반대 방향인 코즈웨이 베이 지역이었다. 게다가 분점(대부분 몰려 있긴 했지만)까지 몇 군데가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그곳’에서 기다리는 또 하나의 반전은 식당 그 자체였다. 위치는 잘못 기억할 수 있다 해도 식당에 다다르면 ‘아항, 바로 여기였구나~’ 할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는 것!  
 
2008년, Hong Kong

*글을 쓴 유호상은 낯선 곳, 낯선 문화에 던져지는 것을 즐기는 타고난 여행가다. 현재 여행 커뮤니티 ‘클럽 테라노바’를 운영 중이다.

▶memo
인간의 기억은 정말이지 믿을 만하지 않다. 조각나기 쉬운 데다가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편집해 내는 습성이 있지 않은가. 여행에서는 기억에만 의존하지 말고 메모하자. 그리고 또 하나! 내 눈에 아무리 허름해 보여도 현지 맛집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다. 괜히 혼자 전전긍긍하지 말고 밑져야 본전으로 길 가는 행인, 지하철 역무원 등 누구에게든 일단 물어 보자. 대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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