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CH POINT 특별한 여행을 만드는 결정적 한 수] 호주에서 가장 센 욕
[MATCH POINT 특별한 여행을 만드는 결정적 한 수] 호주에서 가장 센 욕
  • 트래비
  • 승인 2016.02.0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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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떠나게 된 호주 여행의 목적지는 시드니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생물이라는 산호섬과 세계의 배꼽 울룰루를 쏙 뺀 호주 여행이라니, 다소 김이 빠졌다. 대자연에 비하면 이 나라의 도시들은 하나같이 너무 싱거운데 말이다. 고작 250년 역사의 도시에 나를 매혹시킬 만한 게 있을까.

만약 시드니까지의 비행시간이 10시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시드니는 내게 여전히 맨송맨송한 도시로 기억됐을 것이다.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바로 호주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결정적 한 수다. 

이 책에서 가장 이상한 이야기는 호주에 처음 정착한 영국 사람들 이야기다. 영국의 항해가 제임스 쿡 선장은 1770년 봄 딱 한 번, 호주 대륙 동북부 해안에 상륙했고 자랑스레 영국 국기를 꽂았다. 이때 그가 호주에 대해 본 것과 안 것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진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1787년, 영국은 배 한 척에 죄수들을 가득 실어 호주로 보낸다. 단 한 번 가 본, 거대한 미지의 땅에 영원히 살라고 말이다. 호주는 그렇게 영국의 감옥으로 역사가 시작된 유일한 국가가 됐다.

그렇게 호주에 온 영국 죄수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 바로 시드니의 록스Rocks다. 이 사람들이 무슨 엄청난 흉악범이라 영국에서 추방된 게 아니다. 그들 중에는 고작 오이를 훔쳐서 온 사람도 있었다(장발장은 이 동네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 시드니는 이들의 노역으로 만들어진 도시고, 그 후손이 바로 지금의 호주 사람들이다. 호주 사람들에겐 농담으로라도 이런 얘길 꺼내선 안 된다고 한다. 박물관이든 관광지 안내서든 어디에도 자신들의 선조가 좀도둑이나 범죄자라는 얘기는 없다. 만약 호주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 욕을 실컷 해주고 싶다면 ‘손 오브 비치Son of bitch’보다는 ‘손 오브 버글러Son of burglar’라고 외치는 것이 효과적일지도. 

이런 히스토리를 알고 나서 흥미가 생겼다면 반드시 가 봐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록스에 있는 수잔나 플레이스 뮤지엄Susannah Place Museum. 4개의 집이 하나로 된 낡은 다세대 주택으로 1844년부터 48세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해 온 곳이다. 미리 가이드 투어를 예약하면 1층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방과 부엌, 침실로 안내하며 나긋나긋 천천히 여기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어떻게 호주에 왔으며, 무슨 일을 했고, 지금 그 후손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말이다. 아, 물론 여기서도 절대 좀도둑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빌 브라이슨에 따르면 1998년 <타임스>가 호주에 대해 실은 기사는 단 6개뿐이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접하는 호주 소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떻게 이 광활한 남쪽 대륙을 이해해야 할까?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이 책 한 권이라는 건 무척이나 다행이 아닌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밤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펼쳐라. 이제부터 당신의 호주 여행은 꽤 대단해질 것이다. 
 
시드니의 명물인 하버브릿지가 올려다보이는 도스 포인트 파크
시드니 록스는 영국의 죄수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다. 그 역사가 수잔나 플레이스 뮤지엄에 보관되어 있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을 쓴 도선미 작가는 여행하고 글쓰는 사람. 인생이 조금 망가졌다고 생각될 때 여행을 떠난다. 놀랍도록 간단하게 행복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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