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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고아원과 동물원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6.03.0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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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집어 온 걸까? 미얀마에서 허겁지겁 챙겨 온 브로슈어 더미에서 낱장의 종이가 떨어졌다. 유니세프 마크가 선명한 안내장이었다. ‘미얀마에는 아름답고 이국적이고 흥미로운 곳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아원은 그런 곳 중 하나가 아닙니다.’ 미얀마 여행 중에 고아원 방문이나 자원봉사, 그리고 기부금을 요청받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런데 그게 뭐가 나쁘다는 것인가? 계속 읽어 봐야 했다. ‘미얀마 고아원에 살고 있는 아이 중 73퍼센트가 부모가 있는 아이들입니다.’ 

73퍼센트라니! 2011년 미얀마 유니세프 사회복지분과가 내놓은 자료가 근거였다. 글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후원을 유도하기 위해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비루한 상황에 방치하기도 합니다. 고아원을 방문해 후원하는 일이 아이들을 착취하는 이 시스템을 돕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억은 10년 전 캄보디아 시엠레아프로 옮겨 갔다. ‘원 달러’를 외치며 거리에서 열쇠고리를 파는 아이들은 종종 보았지만 그렇게 달리는 차를 죽어라 쫓아오는 아이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교통체증이나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출 때까지 추격을 계속됐다. 이윽고 차가 멈추고,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채 숨을 헐떡이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주머니에서 뭐라도 꺼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돌아와 내가 들은 이야기는 ‘절대로 돈을 주지 말라’는 냉정한 경고였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앞으로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뙤약볕에서 달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도 높다고 했다. 유니세프의 안내장이 담고 있는 이야기도 비슷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꺼내 놓을 수 있는 연민의 마음이 아이들의 착취에 조력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알아서 병이 됐다. 움츠러들었다. 고아원이나 거리의 아이들만 문제가 아니었다. 동물과 자연까지, 연민이 느껴지는 모든 대상 앞에서 나는 혼란스러워지곤 했다. 지금 이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인가? 누구를 이롭게 할 것인가? 등등 미얀마의 육교 위에서 내가 건넸던 작은 돈에 두 손을 모았던 여인과 젖먹이 아이에게 내가 한 행동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끝까지 진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을 보살피는 마음, 그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는 일이 내가 누려야 할 인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문제는 ‘어떻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도에서 만난 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녀는 가방 속에 팬티 몇 장을 넣고 다니다 발가벗은 거리의 아이들을 보면 입혀 준다고 했다. 손바닥만한 천이 아이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까지 감싸 주었을 것이다. 
 
안내장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만약 당신의 나라에서라면 고아원을 방문하시겠습니까? 고아원은 아이들의 집이지 동물원이 아닙니다. 그들도 자신의 공간에서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온 나라의 아이들과 똑같이 인권을 누리고 보호받아야 합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인권처럼 도와주는 사람의 인권과 마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아직도 연민을 사고파는 악한들에게 묻고도 싶다. “당신이 낸 기부금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냐고.”
 
글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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