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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트 유호상의 여행만상] 어떤 한심한 사람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3.03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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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끼어 유난히 북적대는 인천공항. 출국하려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X선 검색대에 짐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붐비니까 짐 통과조차 오래 걸린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여권을 들이밀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동출입국심사를 해놓아 본인은 마지막 관문인 출국심사대의 긴 줄에 서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뭐, 어차피 면세점도 들러야 하니, 그럼 먼저 가라고 했다. 여권을 갱신하고 나서 자동출입국심사 등록을 제때 다시 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하며. 

짐을 찾아 출국심사대의 긴 줄들 사이에 자리 잡은 지 5분쯤 지났을까. 뒤쪽 어디선가 여직원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짐 놓고 가신 분, 짐 놓고 가신 분 안 계세요?” 평소 짐은커녕 여행 중 10원 한 푼도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 나로서는 짐을 놓고 다니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 원래 내 일이 아니면 관심도 안 갖는 편인데, 오늘따라 ‘여행도 가기 전에 짐을 놓고 다니는 한심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상당히 익숙한 디자인의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어, 우리 것과 똑같은 캐리어네…’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손잡이 부분에 달린 노란색 리본이 눈에 띄었다. 음, 노란색 리본이라면…, 우리 캐리어?!!!

맙소사!!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캐리어를 가지고 있던 아내가 X선 검색대를 통과하는 중에 갑자기 자동출입국심사기 생각이 나자 급한 마음에 후다닥 자리를 떠 버린 것. 내 짐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미처 캐리어를 챙기지 못했고, 그 바람에 가방은 미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남의 일이었다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을 사건이지만 내 일일 때는 항상 이유가 있다. 

도저히 맨 얼굴로는 주인이라고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손을 들고 “제 껀데요”라고 말하자 그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졌다. 빨리 짐을 받아 이 순간을 수습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데 더 잔인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 직원이 “본인 게 맞나요?”라며 신분 증명을 요구한 것. 하지만 캐리어의 이름표에 씌어 있는 아내의 이름과 내 여권의 이름이 다르니 이게 우리 짐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미심쩍어하는 눈길의 직원에게 그저 우길 수밖에. 

“이거 우리 짐 맞아요. 엉엉 ㅠㅠ”  

2015년, 인천공항, Korea
 
글을 쓴 유호상은 낯선 곳, 낯선 문화에 던져지는 것을 즐기는 타고난 여행가다. 현재 여행 커뮤니티 ‘클럽 테라노바’를 운영 중이다.

▶tip
다행히도 보안 검색대 지역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나마 이 정도 해프닝으로 끝났다. 만약 공항 내 다른 구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 주인 없는 짐은 일단 테러범이 놓고 간 잠재적인 ‘폭발물’로 취급되기 때문. 특히나 테러에 아주 민감한 미국, 유럽 등지의 공항, 쇼핑몰 등지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짐을 ‘방치’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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